"73년 석유파동 때 이란 덕분에 큰 타격 안 입었는데..."
[인터뷰] 장병옥 외대 중동연구소장(이란어과)
정지영 기자 jjy@vop.co.kr
입력 2010-09-01 19:30:50 수정 2011-02-25 23:04:15
미국의 요구에 의해 한국이 이란에 대한 독자 제재를 준비하면서, 연일 언론지상이 뜨겁다. 한국과 이란과의 교역규모는 얼마나 되는지, 우리 경제에 미칠 타격은 얼마나 될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은 폐쇄될지 등 다양한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미국은 왜 이란제재를 한국에 요구했을까. 미국과 이란은 왜 대립해왔을까.
이란학자이자 외대 중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장병옥 교수는 1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그 ‘원죄(original sin)’를 서방의 제국주의로 짚었다.
민족주의 지도자로 1951년 국민의 지지를 받아 수상이 됐던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영국이 가지고 있던 석유를 국유화하는 조치를 취하자, 이에 영국 정보기관과 미국 CIA가 협력해서 1953년 8월 정권을 무너뜨렸던 일을 언급한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선거를 통해 뽑힌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정부’를 만들면서 이란 내에서 민족주의, 반미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이란학자들은 이를 ‘원죄’라고 설명한다는 것.
그는 “이란은 알려졌듯이 시아파 종주국인데 어찌 보면 ‘정치적 이슬람’이라 할 만큼 정치의식이 강한 게 시아파의 특징이다. 도전적이고 ‘민중의 항의, 저항’ 이런 개념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이슬람 성직자들은 반정부, 반미운동에 많이 참여했다는 것. 특히 호메이니를 구심으로 민중들의 저항이 강하게 이어졌고 이는 1979년 이란이슬람혁명을 통해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세우는 데로 나아갔다. 장 교수는 “이때부터 완전한 반미, 반이스라엘의 길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란은 왜 핵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을까. 장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란은 장래에 석유가 고갈될 때를 대비해 70년대 독일 지멘스사와 함께 부쉐르 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짓기 시작했지만,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지자 이스라엘 공군기가 부쉐르 지역을 폭격한 것.
전쟁 이후 이란의 상황이 안정화되면서 9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서방 언론은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보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2년 이란 반체제 인사들이 이란핵시설을 폭로하면서 이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특히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이 된 후 2006년 4월 11일 이란이 농축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했고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더불어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등장한 미국 부시 행정부는 “공격의 카드는 항상 테이블 위에 있다”면서 이란을 압박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2006년과 2007년, 2008년에 이어 2010년 6월 9일 유엔 안보리가 네 번째로 이란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기까지 이란과 미국 등 서방국 사이의 대립은 수년째 계속돼온 것이다.
서방국들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 야욕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고 이란 정부는 항상 핵프로그램 개발은 자주권 차원의 문제이며 평화적인 이용을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장 교수는 이란핵문제와 관련, “지정학적으로 볼 때 이란은 수니파 파키스탄, 종교가 완전히 다른 인도, 바로 옆의 핵강국 러시아, 걸프만에 있는 미군, 최대 적국인 이스라엘 등 핵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권 뿐 아니라 국가의 안보를 위해 핵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아니겠나”라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의 경우 지금까지도 ‘미국이 이란을 안치면 우리라도 치겠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식으로 나오는 상황”이라면서 “이란은 미국과 국제사회가 강하게 나오면 평화적으로 대화로 풀자고 했다가 또 안 된다고 하고 몇 년 째 강온 양면전략으로 지연작전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후세인 때리듯 때리면 시원하겠는데 이란이 만약 중동 석유의 80%가 나오는 걸프만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석유 공급의 대동맥을 잘라버리는 셈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칠 수 없다”면서 “이 같은 상황이 몇 년 째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북한을 축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한.미.일 3각동맹과 각축을 이루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서 “중동에서는 이란과 중국 러시아가 삼각 우방동맹을 이루어 미국의 일방주의, 세계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모양새”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비스마르크가 살아돌아온다고 해도...”
장 교수는 이란과 미국이 대립해온 과정을 소개한 데 이어 현실의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이란 제재를 할 경우 입게 될 경제적 타격 때문에 현명한 해법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그는 “경제제재를 가하면 우리는 100억불, 15만 여명의 종사자가 타격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란은 한국 석유 수입량의 10%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원유 공급 중단까지 가게 된다면 유가는 몇 배 뛰고 우리가 입게 될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모하마드 레자 바크티아리 주한 이란대사는 이달 초<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제재에 동참하면 이란과의 관계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란은 한국의 4번째 원유 수입국”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장 교수는 “73년 석유파동 당시 아랍 국가들은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가까운 국가들에 석유를 끊었지만 이란만 우리를 도와줬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그 때 타격을 심하게 받지 않았다”면서 그 일이 계기가 돼서 “우정의 상징으로 서울에 테헤란로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란이 일종의 ‘의리’ 차원에서도 한국의 제재 참여에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란이 제재 국가들에 대해 정말 보복할 가능성이 있는지 묻자 “이란은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라 그런지 그대로 실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2005년 우리가 직접 제재를 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한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이란 결의에 찬성하자 금수조치를 취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장금’을 이란인 90%가 봤다고 하고 ‘주몽’ 하는 날 길거리에 차가 없다고 하지 않나. 가전제품 LG나 삼성이 인기고 자동차도 반 이상이 우리 것이라고 하고...... 무엇보다 외세의 압박을 많이 받았던 쓰라린 역사적 경험 때문에 민족 정서가 닮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면서 이란과 한국의 관계가 문화적,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던 상황이라 이란이 느끼는 실망감은 더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믿었는데 형님 말만 듣고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지 않겠냐는 것.
장 교수는 다른 것보다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 처리에 있어서는 특히 신중을 당부했다.
그는 “미국이 여러 제재를 가해본 결과 제일 효과적인 게 은행을 통해 돈줄을 막는 것이라고 판단해서 몇 년 전부터 이란의 큰 은행들을 차례로 폐쇄시켜왔다. 이번에는 한국에 있는 멜라트 은행 폐쇄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뚜렷한 증거도 없고 핵개발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니까 가능하면 놔두고 잠정적으로 폐쇄하더라도 완전 폐쇄는 피하는 게 나을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을 통해서 대부분의 무역이 이루어지는데 미국이 하라는 대로 멜라트 은행을 폐쇄하면 아예 끊겠다는 소리”라고 걱정하면서 “제자들 중에도 멜라트 은행에 진출한 친구들이 있는데 실업자가 되게 생겼다”고 덧붙여 말했다.
장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 “정말 답이 안 나온다. 비스마르크가 환생을 해도, 솔로몬의 지혜가 있어도 미국의 요구와 이란을 둘 다 만족시키긴 힘들다. 참 답답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정치나 안보 면에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저자세로 미국 일변도로 나가다보니 어려운 상황이 생겼다”면서 “정부가 한편으론 이란을 달래면서 다른 한편으론 한국이 입을 경제적 타격에 대해 미국을 설득하는 등 외교력을 발휘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미국은 왜 이란제재를 한국에 요구했을까. 미국과 이란은 왜 대립해왔을까.
이란학자이자 외대 중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장병옥 교수는 1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그 ‘원죄(original sin)’를 서방의 제국주의로 짚었다.
ⓒ양지웅 기자
장병옥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
'); }민족주의 지도자로 1951년 국민의 지지를 받아 수상이 됐던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영국이 가지고 있던 석유를 국유화하는 조치를 취하자, 이에 영국 정보기관과 미국 CIA가 협력해서 1953년 8월 정권을 무너뜨렸던 일을 언급한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선거를 통해 뽑힌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정부’를 만들면서 이란 내에서 민족주의, 반미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이란학자들은 이를 ‘원죄’라고 설명한다는 것.
그는 “이란은 알려졌듯이 시아파 종주국인데 어찌 보면 ‘정치적 이슬람’이라 할 만큼 정치의식이 강한 게 시아파의 특징이다. 도전적이고 ‘민중의 항의, 저항’ 이런 개념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이슬람 성직자들은 반정부, 반미운동에 많이 참여했다는 것. 특히 호메이니를 구심으로 민중들의 저항이 강하게 이어졌고 이는 1979년 이란이슬람혁명을 통해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세우는 데로 나아갔다. 장 교수는 “이때부터 완전한 반미, 반이스라엘의 길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란은 왜 핵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을까. 장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이란은 장래에 석유가 고갈될 때를 대비해 70년대 독일 지멘스사와 함께 부쉐르 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짓기 시작했지만,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지자 이스라엘 공군기가 부쉐르 지역을 폭격한 것.
전쟁 이후 이란의 상황이 안정화되면서 9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서방 언론은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보도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2년 이란 반체제 인사들이 이란핵시설을 폭로하면서 이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특히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이 된 후 2006년 4월 11일 이란이 농축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했고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더불어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등장한 미국 부시 행정부는 “공격의 카드는 항상 테이블 위에 있다”면서 이란을 압박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2006년과 2007년, 2008년에 이어 2010년 6월 9일 유엔 안보리가 네 번째로 이란 제재 결의안을 채택하기까지 이란과 미국 등 서방국 사이의 대립은 수년째 계속돼온 것이다.
서방국들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 야욕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고 이란 정부는 항상 핵프로그램 개발은 자주권 차원의 문제이며 평화적인 이용을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양지웅 기자
장병옥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
'); }특히 그는 “이스라엘의 경우 지금까지도 ‘미국이 이란을 안치면 우리라도 치겠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식으로 나오는 상황”이라면서 “이란은 미국과 국제사회가 강하게 나오면 평화적으로 대화로 풀자고 했다가 또 안 된다고 하고 몇 년 째 강온 양면전략으로 지연작전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후세인 때리듯 때리면 시원하겠는데 이란이 만약 중동 석유의 80%가 나오는 걸프만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석유 공급의 대동맥을 잘라버리는 셈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칠 수 없다”면서 “이 같은 상황이 몇 년 째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북한을 축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한.미.일 3각동맹과 각축을 이루고 있는 것에 비교하면서 “중동에서는 이란과 중국 러시아가 삼각 우방동맹을 이루어 미국의 일방주의, 세계 패권주의에 대항하는 모양새”라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비스마르크가 살아돌아온다고 해도...”
장 교수는 이란과 미국이 대립해온 과정을 소개한 데 이어 현실의 문제에서, 한국 정부가 이란 제재를 할 경우 입게 될 경제적 타격 때문에 현명한 해법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그는 “경제제재를 가하면 우리는 100억불, 15만 여명의 종사자가 타격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란은 한국 석유 수입량의 10%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원유 공급 중단까지 가게 된다면 유가는 몇 배 뛰고 우리가 입게 될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모하마드 레자 바크티아리 주한 이란대사는 이달 초<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제재에 동참하면 이란과의 관계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라면서 “이란은 한국의 4번째 원유 수입국”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장 교수는 “73년 석유파동 당시 아랍 국가들은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가까운 국가들에 석유를 끊었지만 이란만 우리를 도와줬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그 때 타격을 심하게 받지 않았다”면서 그 일이 계기가 돼서 “우정의 상징으로 서울에 테헤란로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란이 일종의 ‘의리’ 차원에서도 한국의 제재 참여에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란이 제재 국가들에 대해 정말 보복할 가능성이 있는지 묻자 “이란은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라 그런지 그대로 실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2005년 우리가 직접 제재를 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한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이란 결의에 찬성하자 금수조치를 취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장금’을 이란인 90%가 봤다고 하고 ‘주몽’ 하는 날 길거리에 차가 없다고 하지 않나. 가전제품 LG나 삼성이 인기고 자동차도 반 이상이 우리 것이라고 하고...... 무엇보다 외세의 압박을 많이 받았던 쓰라린 역사적 경험 때문에 민족 정서가 닮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면서 이란과 한국의 관계가 문화적,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던 상황이라 이란이 느끼는 실망감은 더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믿었는데 형님 말만 듣고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지 않겠냐는 것.
ⓒ양지웅 기자
장병옥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
'); }장 교수는 다른 것보다 멜라트 은행 서울지점 처리에 있어서는 특히 신중을 당부했다.
그는 “미국이 여러 제재를 가해본 결과 제일 효과적인 게 은행을 통해 돈줄을 막는 것이라고 판단해서 몇 년 전부터 이란의 큰 은행들을 차례로 폐쇄시켜왔다. 이번에는 한국에 있는 멜라트 은행 폐쇄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뚜렷한 증거도 없고 핵개발의 결정적 요인이 아니니까 가능하면 놔두고 잠정적으로 폐쇄하더라도 완전 폐쇄는 피하는 게 나을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을 통해서 대부분의 무역이 이루어지는데 미국이 하라는 대로 멜라트 은행을 폐쇄하면 아예 끊겠다는 소리”라고 걱정하면서 “제자들 중에도 멜라트 은행에 진출한 친구들이 있는데 실업자가 되게 생겼다”고 덧붙여 말했다.
장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 “정말 답이 안 나온다. 비스마르크가 환생을 해도, 솔로몬의 지혜가 있어도 미국의 요구와 이란을 둘 다 만족시키긴 힘들다. 참 답답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정치나 안보 면에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저자세로 미국 일변도로 나가다보니 어려운 상황이 생겼다”면서 “정부가 한편으론 이란을 달래면서 다른 한편으론 한국이 입을 경제적 타격에 대해 미국을 설득하는 등 외교력을 발휘할 때”라고 덧붙였다.
정지영 기자jjy@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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