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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란제재 압박에 대응한 '좋은예'와 '나쁜예'

멜라트은행 제재요구에 말레이시아는 'No', 영국은 'Yes'

정지영 기자 jjy@vop.co.kr

입력 2010-09-03 08:36:20 l 수정 2010-09-03 09:26:08

미국이 우리 정부에 이란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핵심 요구는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을 폐쇄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 은행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져 우려를 낳고 있다.

멜라트은행은 이란의 2위 은행으로 자산은 50조원에 달한다. 이 은행은 영국의 런던과 말레이시아 라부안, 한국의 서울 그리고 터키와 아르메니아 등에 해외 지점을 두고 있다. 미국은 이란 핵프로그램과 연관된 자금 거래가 이곳을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 은행을 제재하면 이란에 대한 제재효과가 크게 나타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은행의 '불법행위 여부'를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멜라트은행 서울지점.



모하마드 레자 바크티아리 주한 이란대사는 국내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멜라트은행이 서울에 지점을 개설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국내 규정과 국제적 기준을 지키며 영업해왔다"면서 "불법행위에 연관된 적이 한번도 없었으며 만약 그랬다면 훨씬 진작부터 거래가 중단됐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에 앞서 미국의 폐쇄 압박을 받았던 영국과 말레이시아의 사례를 돌아보는 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해법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美요구 일축=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1월 5일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소재한 멜라트은행의 지점인 FEEB(First East Export Bank)를 제재대상으로 지정했다.

이유는 미국의 행정명령과 유엔 결의안 등에 의해 제재대상으로 지정된 이란원자력에너지기구(AEOI)와 노빈에너지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이란 핵활동과 연계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이같은 조치를 통해 "FEEB가 사실은 금지된 이란 핵프로그램 활동을 지원해온 기관으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제재대상인 멜라트은행의 부문이라는 것을 인지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FEEB는 2008년 말 말레이시아 금융당국의 허가 하에 라부안에 세워진 은행이다. 이 은행이 세워진 라부안은 인구 8만5천명의 작은 섬으로 1990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유무역지대로 지정하고 역외금융센터(IOFC)를 설립한 바 있다. IOFC를 관리하는 라부안역외금융서비스당국(LOFSA)은 라부안을 이슬람권 최대 금융중심지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재무부의 이같은 발표 하루 뒤인 11월 6일 LOFSA는 보도자료를 내고 "라부안 국제산업금융센터(Labuan International Business and Financial Centre, Labuan IBFC)는 합법적이고 건전한 산업활동을 해왔다"면서 이 지역에서의 모든 활동은 국제기준에 근거한 규제와 감독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의 압박이 있은지 하룻만에 '우리가 관리하는 지역에서 불법행위가 있을 리 없다. 우리가 충분히 잘 감독하고 있다'고 일축한 것이다.

LOSFA 보도자료

말레이시아 라부안 금융당국은 미 재무부의 멜라트은행 폐쇄 요구 직후 보도자료에서 '우리는 합법적이고 건전한 산업활동을 해왔다'고 일축했다.



이어 11월 10일에는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총재가 자국에 있는 멜라트은행의 활동은 합법적이며 "말레이시아에서 모든 은행업무 및 금융거래는 국제기준에 따라 감독되고 있다"면서 "만일 외국의 은행이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활동한다면 중앙은행은 이 은행의 활동을 중지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의 아스하르 아볼하사니 재무부 부장관도 "멜라트은행 말레이시아 지점에 제재를 가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조사해왔지만 합당한 이유는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LOFSA의 고위 당국자도 비슷한 시기 AFP통신에 "미국의 제재는 (멜라트은행) 라부안 지점의 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제재는 단지 미국과 이 지점간의 거래에만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 "은행 거래에 불법 혐의가 없다"는 이유로 이 은행에 대한 제재를 거부했고 현재까지 이 은행은 영업 중이다.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는 이같은 말레이시아 당국의 결정에 대해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라는 부분이 정치적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라면서도 그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자체 조사를 했는데 조사결과 미국이 주장하는 불법행위들이 증명되지 않았고, 미 국무부에서 제시한 자료도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폐쇄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멜라트와 법정 다툼중=반면 영국은 멜라트은행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했다가 법정 소송을 진행중이다.

영국 재무부는 지난해 10월 멜라트은행 영국지점이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했다며 지점 직원들에 대해 금융거래 자격을 정지했다. 사실상 은행 영업을 정지시킨 것이었다. 그러자 멜라트은행은 이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정식 소장을 접수하고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올해 2월 26일 이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지방법원은 양자 간의 소송에서 유럽인권협정 조항에 따라 민간 소유의 멜라트은행에 승소판결을 내렸다. 유럽인권협정에 따라 국가에 대해 이의제기하는 데 있어 은행은 개인과 동등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

이에 따라 법원은 재무부의 기소유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멜라트은행이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 재무부의 기소 요지에 대해서 충분한 정보를 얻을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당시 판결을 했던 존 미팅 대법관은 하지만 재무부가 영업정지 명령에 대해 제시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주주들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영업 제한은 불법이며 인권침해라는 것이다.

당시 언론은 이 같은 판결을 10여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무자헤딘 칼(Mojahedin-e Khalq) 사건과 유사하다고 풀이했다. 당시 미국 국무부는 무자헤진 칼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했으나 미국 법원은 국무부가 무자헤딘 칼 측에 증거를 제시하고 반론을 제기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영국 재무부의 명령이 멜라트은행 법인이 아닌 은행 영업직원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라 소송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재무부의 주장에 대해 '소피스트의 궤변과 같다'고 반박했다. 다만 법원이 재무부에 항소 기회를 부여해 아직 멜라트은행에 대한 제재는 해제되지 않았다.

유달승 교수는 "우리도 영국과 같은 수순을 밟게 되면 법정 소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 법정 소송이 진행된다면 아직까지 찾아지지 않은 멜라트은행의 '불법행위'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몫이 된다.

이란제재에 있어서 미국이 제시한 불법행위에 대한 증거가 없다면서 멜라트은행 제재를 거부한 말레이시아와 불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제재를 했다가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는 영국. 과연 어떤 것이 '좋은예'이고 어떤 것이 '나쁜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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