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보]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충남세종지부장 우의정
‘여장군’ 우의정, 길바닥에 눕다
[만민보] ‘설장고’ 명인 이부산
이 몸안에 ‘농악’의 역사가 흐른다
[만민보]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이정훈
이정훈, 내 스스로를 향한 진혼곡, ‘쏘가리, 호랑이’
[만민보] 조현실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비서관
“제가 하고 싶은 일이요? 동지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만민보]‘참수리상’ 수상한 서울지방경찰청 정보통신계장
경찰계의 에디슨, ‘발명왕’ 조풍현 경정

+ 더보기



리정애-김익 부부

리정애-김익 부부


"통일될 때까지 아이는 안 낳을 거에요"

리정애(36)씨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말에 곁에 있던 김익(36)씨는 "저야 빨리 낳고 싶죠"라며 계면쩍게 웃었다. 정애씨는 반공교육과 경쟁이데올로기로 가득찬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마뜩찮은 모양이었다.

정애씨의 국적은 '조선'이다. '조선'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라지만 일본 땅에는 아직 이 '조선'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포들이 칠 만 여 명 가량 있다. 일제시대 때 타의로, 일부는 자의로 일본땅으로 건너갔다가 그곳에 남게 된 이들과 그들의 후손들 중 일부는 아직 '조선'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북도 남도 조국이기에 통일이 돼서 하나의 국적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조선이라는 국적을 지니고 살아가겠다고 하는 이들이다.

지난 10월 10일 결혼식을 올린 정애씨와 김익씨는 조선적을 가진 동포와 한국 국적을 가진 이의 '1호 부부'다.

하지만 정애씨는 11월 12일 일본으로 출국을 해야 돼, 이들은 결혼을 하자마자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야 하는 처지다. 정부에서 조선적을 가진 재일교포들은 3개월 이상 체류하는 것을 허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여행허가서가 나오지 않아 입국 자체가 힘들기도 하다.

정애씨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면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정애 씨는 왜 그런 길을 택하지 않을까.

"사실 말로 뭐라고 딱 하긴 힘들지만, 정체성의 문제에요, '조선'이라는 국적을 지켜온 사람들은 통일을 바라며 온갖 고난에도 지켜온 거에요. 그걸 버린다는 건 저의 정체성을 버린다는 거에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한국 남자와 결혼하면서 조선적을 버렸는데, 3개월을 매일 같이 울었어요"

이 얘기를 하면서 정애 씨는 조금 흥분하는 듯 했다.

"특히 강요에 의해서 국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동남아에서 온 분들도 이 땅에서 잘 살잖아요. 그런데 제가 다른 민족도 아니고 한 민족인데, '국적을 바꾸지 않으면 여기서 제대로 살 수 없다. 그러니 바꿔라' 이런 식으로 강요하는 것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요. 조금 거창하고 비유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장기수 선생님들이 예전에 모진 전향공작에도 끝까지 버티셨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런 것이지 않나 싶기도 해요"

정애 씨는 실제로 장기수 선생님들을 만나 볼 기회도 제법 있었다며 "너무 예뻐해주세요. 아무래도 조선적 여성과 한국 남성의 결혼이니까 통일에 한 걸음 다가가는 느낌이어서 그렇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정애 씨는 지난 2004년 처음 한국에 발을 디뎠다. 조부의 고향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당시는 6.15공동선언이 있고 난 이후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때라 그동안 총련계라며 한국 입국이 쉽지 않았던 조선적을 가진 동포들도 입국이 많이 자유로워지던 때였다. 이후 정애씨는 1년에 한두차례씩 한국을 오가게 됐고 통일운동단체와도 접촉하고 815민족공동행사 등에도 참석하게 됐다. 정애씨는 월간 '민족21'에 '리정애의 서울 체류기' 만화의 주인공으로 소개되는 등 통일운동 관련 신문과 잡지에도 자주 등장하게 됐다.

남편이 된 김익씨와는 그런 와중에 만나게 됐다.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으로 당시 수감생활을 하던 김익씨는 감옥에서 지면으로 정애씨를 알게 됐다고 한다. 김익 씨는 "글에서 정애 씨가 상투머리에 한복이 잘 어울리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하길래 바로 나를 보고 그러는 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출소한 후 후배들을 통해 수소문해 만나게 됐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정애 씨는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긴장이 고조된 남북관계를 피부로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자유롭게 오가던 것이 현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 너무 어려워 졌어요. 이번 결혼식도 1년여만에 입국이 이루어져서 진행됐구요. 하마터면 결혼식도 제대로 못 올릴 뻔 했어요. 날은 잡아 놓은 거라 화상결혼식이라고 올려야 하나 그런 고민도 실제로 했구요"

정애씨는 일본에서 대학 졸업 후에 무역회사에 취직해 일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느라 안정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번역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게 꿈이에요. 남과 북이 같이 공존하는 그 곳에서 통일을 만들어 가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요.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는 제가 일본어는 전공인데다 일본 무역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으니 개성공단에서 무역일을 하면 잘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극도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는 최근 조금씩 풀리고 기미가 보이긴 하지만,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싶다는 정애 씨의 바람이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가늠키 힘들다. 그리고 그 이전에 당장 결혼식을 올린 지 한달 만에 강제 출국을 당해야 하는 사정에 놓여 있다. 60년전 일어났었던 분단은 지금도 여전히 다시금 '생성중'이다.

<정성일 기자 soultrane@vop.co.kr>
저작권자© 한국의 대표 진보언론 민중의소리
  • 기사입력 : 2010-10-19 14:46:00
  • 최종업데이트 : 2010-10-21 10:06:42

맨위로

  • 트위터로 보내기
  • 프린트하기

Copyright ⓒ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