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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적 재일동포 입국거부 0->7->279...도대체 왜?

정지영 기자 jjy@vop.co.kr

입력 2010-10-19 16:42:02 l 수정 2010-10-19 17:20:51

“일본 사람들에게도 한류 관광상품 엄청 팔아먹지 않나. 일본과 한국 사이에 비자 있어야 왔다 갔다 하던 것도 다 풀렸고... 그러면서 가장 오랫동안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 고통 받았던 조선적 재일동포에 대해 지금 시대에 ‘딱지’를 붙여 못 들어오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언론을 통해 알려져왔듯 재일동포 중에는 ‘조선적’이 있다. 일본 정부는 1947년 재일조선인들에게 일괄적으로 ‘조선’ 국적을 부여했고, 이들 중 남쪽과 북쪽 어느 하나를 택하지 않은 이들이 ‘조선적’으로 구분된다.

정부는 아주 오랫동안 이들의 입국을 막아왔지만, 1990년 남북교류협력법이 제정된 후 조선적 동포들은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비교적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해왔다. 남북교류협력법은 ‘외국국적을 보유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여권을 소지하지 아니한 외국거주 동포가 남한에 왕래하려면 여행증명서를 소지해야 한다’며 이들의 입국을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현 정부 들어 조선적 동포들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8->0->7->279...왜?= 18일 민주당 최재성 의원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조선적 동포의 여행증명서 발급이 거부당한 건수는 2006년 8건, 2007년 0건, 2008년 7건으로 거의 미미한 숫자였다가 2009년 279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더 이전까지 거슬러가 보면 이 여행증명서는 1999년~2004년 사이 1만1천819건이나 발행되는 동안 단 4건만 거부됐었다. 10여 년 동안 조선적 동포들은 사실상 한국 방문에 어려움을 느껴본 일이 없었던 셈이다.

정부가 입국을 ‘거부’한 사례도 급증했지만, 더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이 입국을 신청한 건수 자체가 2009년 확 줄었다는 것이다. 2006년 2천957건, 2007년 2천229건, 2008년 2천37건으로 고르게 유지되다가 2009년에는 1천497건으로 줄었다.

신청 자체를 하는 건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이들 사이에서 ‘신청해도 허가가 나질 않으니 당분간 한국 방문은 힘들 것 같다’는 분위기가 퍼져있기 때문이라고 재일동포들은 전한다.

이로 인해 조선적 동포들이 겪고 있는 피해는 극심하다.

이전 정부에서 몇 차례 참가했던 동일한 행사를 준비해오다가 난데없이 증명서가 나오지 않아 준비해온 시간과 노력은 물론이고 비행기표, 숙소예약비까지 다 날리게 된 사례는 태반이고, 국내 대학을 다니다가 증명서 발급이 되지 않아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던 경우도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졌듯 지난 10월 10일 한국 국적 김익 씨와 결혼한 조선적 리정애 씨는 결혼 한달여 만인 11월 12일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인데, 여행증명서가 잘 나오지 않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시 입국하는 것도 쉬워 보이진 않는다.

◆"갑자기 이유도 대지 않고 입국 거부라니..."= 문제는 조선적 재일동포의 입국 문제가 역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 다뤄졌으며, 현재에도 다분히 정치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데 있다.

외교부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당국자는 “2009년 거부 건수가 급증한 이유는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2009년 4월 북한의 2차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금년 천안함 사건 등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고려해 지침 해석을 다소 엄격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남북협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 방한 목적이 불분명한 사람, 과거 방한했을 때 반한 활동을 한 사람 등” 나름의 ‘기준’에 따라 건별로 판단을 한다고 덧붙였다. 신청을 한 사람에게 나름의 ‘결격사유’가 있는 것이지 외교부가 무리하게, 또는 무원칙하게 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조선적 재일동포들은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한다.
특히 이들은 이전 정부에서 문제가 없다가 왜 갑자기 문제가 된다는 건지, 입국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왜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지를 답답해하고 있다.

지구촌동포연대의 배덕호 대표는 “이전 정부에서 수만 명이 문제없이 여행증명서를 받으면서 왔다 갔다 하다가 갑자기 아무 이유도 대지 않고 고국을 방문하는 사람들한테 입국을 사실상 거부하니 참 갑갑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배 대표는 “정부의 재량권을 이해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이전 정부에서도 그랬고, 총련 관계자거나 한통련 관련된 분들이라든지 첨예한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는 건 이해한다”면서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조선적을 가진 동포를 상대로, 아무 이유 없이 지침을 내려서 증명서 발급을 못하게 한 건 정말 처음 겪는 일”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강요에 의해 정체성 버릴수 없어"= 이와 관련, 더 심각한 문제는 조선적 재일동포에 대한 ‘낙인찍기’이며 이는 결국 이들에게 정체성을 포기하라는 압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 대표는 “안보 문제를 얘기하는데, 조선적은 한국 국적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또 일본 국적을 취득해서 왔다 갔다 하는 게 훨씬 편하다. 그럼에도 조선적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안보 딱지를 붙이는 건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방문을 가로막는 행위 자체가 조선적을 포기하라는 강요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한국에 유학 왔다가 결혼하게 되면서 조선적을 포기한 사례, 한국을 왕래하며 사업을 하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조선적을 포기하는 사례들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는 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영사관 측에서 국적 변경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년 12월 12일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조선적 재일동포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시 국적 전환을 강요하거나 종용하는 것을 ‘인권침해’로 보고 이러한 관행을 바로잡으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7만여 명의 동포들은 이를 ‘정체성’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오히려 한국 국적을 택하는 게 ‘쉽고 편한 길’인데도 불구하고 감수하는건,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게 분단된 조국의 상황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리정애 씨도 “‘조선’이라는 국적을 지켜온 사람들은 통일을 바라며 온갖 고난에도 지켜온 것이다. 그걸 버린다는 건 정체성을 버린다는 것”이라면서 “특히 다른 민족도 아니고 한 민족인데 ‘국적을 바꾸지 않으면 여기서 제대로 살 수 없다. 그러니 바꿔라’ 이런 식으로 강요하는 것에 굴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건 재외동포로서의 권리"= 현 정부 들어 이러한 문제가 계속되자 관련한 재판도 진행 중이다.

조선적 재일동포 정아무개씨는 지난해 4월 국내에서 열리는 한일 공동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증명서를 신청했으나 발급을 거부당하자 ‘국적 변경 의사를 확인한 뒤 변경할 뜻이 없다고 한 것이 거부 처분의 실질적 이유이며, 이는 불합리한 차별’이라면서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 31일 서울행정법원 14부(재판장 성지용)는 “주일 오사카 한국총영사관이 정씨의 임시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것은 그 사유가 존재하지 않거나 합리적인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한 처분”이라고 판결했다.

일련의 상황은 조선적 재일동포들에게 한 줄기 빛을 안겨줬지만, 올해 9월 30일 서울고법 행정1부(김용덕 부장판사)는 1심을 뒤집고 정씨에 대해 패소 판결했다.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한 영사관의 처분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관련한 대법원 상고가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대법원 판결까지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엔 여행증명서 발급 거부가 현실의 문제로 부각됐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조선적 동포들이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안'(재외동포법)에 따르면 재외동포 규정에서 조선적 재일동포나 사할린 한인 등 '무국적'으로 돼있는 동포들은 제외돼있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이 부분에 위헌 소지는 없는지 등 관련한 대안 마련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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