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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내내 'MB바라기', 부실 예산안 날치기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 중심의 국정운영 문제점 그대로 드러나

정웅재 기자

입력 2010-12-14 08:51:59 l 수정 2010-12-14 09:45:26

새해 예산안 날치기 통과 이후 한나라당은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날치기도 문제지만 통과된 예산안이 부실투성이라는 것이 속속 밝혀지면서 여론은 악화되고 당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그러자 당 내부에서도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통과시킨 이유가 뭐냐'는 불만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날치기 사태'를 불러온 원인이 'MB친위대'에 장악된 '수직적 당청관계'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번 예산안 파동을 기화로 MB정권 수립 이후 지속적으로 비판받아왔던 수직적 당청관계를 재정립해야한다는 주장들이 터져나올 기세다.

예산안 날치기를 위한 의장석 쟁탈전

내년도 예산을 통과를 두고 여,야가 충돌하는 가운데 8일 오후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의 의장석을 점거한 가운데 한나라당 의원들이 몸싸움을 하면서 의장석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당이 독자성을 상실했다는 점"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3일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예산파동의 책임자로 고흥길 정책위의장이 사퇴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당이 독자성을 상실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홍 최고위원은 이어 "고 정책위의장의 사퇴 결정을 마치 청와대가 한 것처럼 보도되고 있다. 고 의장 사퇴 여부는 당이 정해야 하는 것"이라며 청와대에 끌려가는 한나라당의 모습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친박계 이한구 의원도 같은 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고지 점령식 예산안 처리, 서민예산 누락에 대해 국민 여론이 나빠진 것을 핵심이라고 본다면 고흥길 의장의 사퇴는 약간 어색하다"면서 "직접적인 책임을 (그에게) 묻는다고 하면 엉뚱하다"고 말했다. 예산안 처리 후폭풍의 책임을 청와대에 묻는 동시에 청와대에 좌지우지되는 당에 대한 비난섞인 발언으로 해석된다.

한나라당 내 소장파와 친박계를 중심으로 터져나오고 있는 이같은 비난 목소리는 친이계에 장악된 현재의 당 지도부가 '수평적 당청관계'는 뒷전이고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하기에 바빠 작금의 사태를 일으켰다는 인식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인 적이 한번도 없었던 당청관계

사실 예산안 날치기 통과는 친이계 중에서도 '돌격대장'으로 꼽히는 안상수 대표 체제가 들어설 때부터 이미 예견돼 왔던 일이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나라당은 선거 직후 '수평적 당청 관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셌었다. "집권 후반기 여론의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청와대를 옹호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 당내의 대체적인 기류"라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초선의원 51명이 당정청 쇄신을 요구하며 연판장에 서명하기도 했었다.

안상수 의원의 당 대표 출마에 대해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청와대와 당 사이의 이완이 발생할 기미가 보이자, 청와대가 자신의 이해를 적극 대변할 수 있는 안 대표를 전면에 내세워 국정 주도권을 이어가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게 아니냐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이런 관측은 이번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총대'를 맨 안 대표의 행보를 통해 확인됐다.

한나라당이 청와대에 끌려다닌다는 지적은 MB정권이 들어서고 난 이후 끊임없이 제기됐던 사항이다. 현 정부가 들어선 후 이명박 대통령은 정무적 판단보다 행정 중심의 '탈 여의도' 국정운영을 표방하면서 당은 찬밥신세가 됐고, 한나라당에서는 여론이 당을 통해 청와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했었다. 정권 초기 '촛불정국'으로 인해 큰 위기를 겪었던 것도 이런 왜곡된 당청관계에 기인한다는 것이 상당수 여권관계자들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왜곡된 당청관계는 이후에도 정상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심화됐다. 강재섭 전 대표에 이어 2008년 8월 취임한 박희태 전 대표는 당선 직후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 "당은 대통령을 위해, 대통령은 당을 위해"라는 발언을 해 친박계 등 한나라당 내부에서 "당이 청와대 거수기냐"는 거센 반발이 터져나오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이 실질적인 '상왕' 아니냐"는 의혹은 2010년 들어서 이른바 '영포라인'이 정권을 사조직화하고 있다는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더욱 심화됐다. 일방적 당청관계라는 문제를 넘어 당이 존재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이 된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

일각에서는 현행 헌법에 따른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는 87년 이후 정치 경험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3당 합당으로 형성된 1990년 이후 집권 민자당의 경우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 최고위원의 관계로 인해 수직적 지휘와는 거리가 멀었다. 김영삼 당시 대표최고위원은 당무 거부 등 강력한 반발을 통해 노 대통령이 추진하던 내각제 개헌을 무산시켰고, 독자적으로 여의도 정치를 이끌었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거론된 것은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절이었는데, 이 때도 지금처럼 연이어 3년간 예산안이 여당의 단독 처리로 끝날 정도는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당청의 분리가 너무 심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올 만큼 청와대와 국회는 서로 독자적인 관계에 있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여의도 정치가 실종되고 청와대의 '오더'에 따라 국정이 운영되는 현상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한나라당의 지도부 인사들이 보이는 굴종적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당청의 '수직적' 관계가 오래 갈 수 없다는 데 있다.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정당과 임기 내 성과를 보려고 하는 단임제 대통령의 이해관계는 어긋나기 쉽기 때문이다.

이번 예산안 처리 파동을 기화로 당청관계 재정립 요구는 이전과 다른 수준으로 터져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차기 대권주자들이 인기를 잃어버린 청와대를 공격하면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고 했던 것이 정권 말기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물론이고 친이계의 대권주자들도 차츰 청와대를 향해 거리를 두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허용치 않으려는 청와대와의 갈등은 여권 내부의 분란을 더욱 가속화시켜 정권 말기의 혼란상은 더욱 극심해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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