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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올 때마다 더 괴로울 것 같아요"

삼성LCD 故김주현 유가족들의 명절

구도희 기자 dohee@vop.co.kr

입력 2011-02-04 17:00:14 l 수정 2011-02-05 10:53:52

고 김주현 빈소

2일 고 김주현 씨 빈소의 조화가 시들어있는 모습.



“올 설은 연휴가 길어서 주현이랑 다 함께 괜찮게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지난 12월에는 주현이 고아주려고 소꼬리도 좋은 걸로 샀는데... 앞으로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더 괴로울 것 같아요.”

지난달 11일 충남 탕정 삼성전자 LCD공장 내 기숙사에서 투신 자살한 고(故) 김주현 씨의 아버지 김명복 씨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설 연휴가 시작된 지난 2일 오후 고인의 빈소는 적막했다. 넓은 ‘특실’ 빈소에는 단 한명의 문상객만이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활동가이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상임활동가인 이훈구 씨였다.

투신 이후 23일째, 고인의 시신은 여전히 냉동고 안에 있었고, 가족들은 말없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적막한 빈소 안에는 고인이 생전 좋아한다던 애니메이션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있었고 영정사진을 장식하는 흰 국화는 생기를 잃은 채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김 씨는 “그나마 중간에 많이 시들었기에 조화를 한 번 바꿨다”고 말했다. 시든 조화에 적막함까지 더해져 빈소에는 명절마저 비켜가는 듯 보였다.

김 씨는 “주현이가 지난 추석에도 일하느라 못 온 대신 추석 전 평일에 와서 3일 정도 쉬고 가고 지난해 설에도 명절이 지나고 이틀 후에 왔어요. 그런데 평일에 오다 보니 제가 일하느라 주현이와 못 놀아줬어요”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반도체나 LCD 등 장치산업의 특성상 생산직 노동자들은 명절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라인을 24시간 ‘풀가동’ 한다. 누군가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에 간다면 다른 누군가는 남아서 라인을 가동시켜야 하는 것이다. 김 씨는 아들의 죽음 이후 지난 17일부터 삼성전자 공장 앞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지만 이날만큼은 빈소를 지켰다. 김 씨는 “마음 같아서는 오늘도 1인 시위를 하고 싶었지만 고향에 가고 절반만 남았다는 말을 들었다”며 빈소를 지키는 것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천주교 신자인 김 씨는 아들을 위해 이날 오전 성당에 가서 ‘위령미사’를 드리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내일도 미사 봉헌 드리러 갈 겁니다. 집안에 사정이 있어 부모님 제사를 안 지내고 위령미사를 드리거든요. 그래도 명절마다 부모님 산소에 갔는데 올해는 못 갈 것 같네요”라고 나직이 말했다.

고 김주현 빈소

설을 앞둔 2일 고 김주현 씨의 빈소가 적막하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돌아왔지만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있어 이번 명절은 그저 달력 속 ‘빨간 날’로만 여겨지는 듯 했다. 유가족들은 벌써 23일 째 인천의 집을 두고 빈소에서 생활 중이다.

김 씨는 “숙식 문제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고충을 토로하면서도 “처음에는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이제는 주현이 배고플까봐 우리 식사할 때마다 빈소 위에 음식을 똑같이 차려준다”고 애끓는 부정을 드러냈다. 빈소 안 고인의 영정 앞에는 김 씨의 말대로 밥 한 그릇과 김, 귤 등의 음식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숙식 문제의 어려움은 유가족들에게 닥친 현실의 일부분일 뿐이다. 늘어만 가는 장례비용과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현실은 김 씨의 낯빛을 점차 어둡게 만들었다.

김 씨는 “며칠 전에는 장례식장 측에서 중간 정산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마련한 고인의 특실 빈소는 하루 사용료만 48만 8천원이다. 음식 비용을 제외하고 장례식장 대여비만 어느새 1천만원을 훌쩍 넘은 셈이다.

김 씨가 답답하다는 듯 한 숨을 내쉬며 “장례식장 이사가 빈소 안까지 들어와 중간 정산을 요구하더라구요. 삼성전자 담당자 번호를 알려달라기에 번호를 알려줬더니 그 자리에서 통화를 하고 ‘알았다’고 답하더니 다시는 중간 정산 요구를 하지 않네요”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장례식장 비용 부담과 관련, <민중의소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살이라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유가족들과 비용 문제에 대해 협의할 것”이라면서 극도로 조심스러운 입장임을 내비쳤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장례 날짜를 잡지 못했다. 과도한 근무시간과 자살 방치 등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진상 규명 조사가 진행 중인데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삼성전자의 공식 사과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가 “삼성이 ‘공식 사과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저런 일로 주현군이 죽음에 이르렀으니 아버님이 양해해 달라’고 한다면 이해는 해 볼텐데...”라며 탄식했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짙은 그리움은 계속 이어졌다. 장례 날짜조차 잡지 못했지만 장례식 후 고인의 유골을 집에 두기로 결정 내린 것.

“힘들 것이란 생각은 하는데 지인이 유품을 다 태우고도 잊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분 말이 ‘이렇게 생각날 줄 알았으면 괜히 유품을 다 태웠다’며 너무 아쉽대요. 그래서 주현이가 쓰던 이불을 깨끗이 빨고 방에 다 그대로 뒀어요. 생각은 나겠지만 그게 마음에 편할 것 같아요. 커튼도 못 해줬는데 조만간 커튼도 달아주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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