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누르고 민중의소리를 페이스북으로 구독하세요

전주 버스노조, 민주노조와 인간존엄 지키기 위한 140일간의 투쟁

지역사회 지지 획득·노조 요구안 관철 성과...복수노조 관계 정립은 과제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입력 2011-04-27 17:07:03 l 수정 2011-04-28 10:30:47

전북 버스파업 타결

전북 버스파업 타결



140일 간의 파업투쟁으로 전북지역 버스노동자들은 노조 인정과 성실교섭 보장 등 소중한 성과를 거뒀다.

전북지역의 버스노동자들의 처우는 다른 곳보다 열악했다.

편하게 밥먹을 시간도 없이 버스를 몰아도 한 달 월급은 140~160만원이 고작이었고, 전북고속은 최저임금법 위반 논란까지 일어났다. 노동자들은 쉬는 날 사장 조상의 묘지를 정리하는 일에도 동원됐다. 한국노총 소속의 노조는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이런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체불임금 문제, 노동자 가슴에 기름을 끼얹다

지난해 민주노총 소속의 노조가 전북지역에 들어서면서 노동자들 안에서 변화의 불씨가 일어났다. 여기에 ‘체불임금’이라는 기름이 끼얹어졌다.

회사와의 불화 끝에 퇴직한 8명의 노동자가 퇴직금을 청구하다 임금 체불 사실을 발견했다. 회사 측은 그간 통상임금에 포함돼야 할 몇 가지 수당을 빼고 계산하는 방법으로 급여를 줄여서 지급했다. 청구시효인 3년 동안의 체불임금이 개인마다 1~2천만 원에 달했다.

퇴직금 소송 끝에 8명의 노동자는 지난해 2월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를 본 다른 노동자 내에서도 ‘떼인 돈’을 받자는 기운이 퍼져나가자 업주들은 당황했다.

업주들은 한국노총 노조와 ‘100만원을 받고 소송을 취소하겠다’는 합의를 부랴부랴 맺었다. 한 마디로 ‘100만원으로 퉁치자’는 이 합의에 수십 년 동안 쌓였던 노동자의 설움과 울분이 폭발했다.

6월부터 8월까지 전북고속 170명, 호남고속 210명을 비롯해 7개 업체의 노동자 다수는 민주노총 버스노조에 가입했다. 노조는 절차에 따라 교섭을 요구했지만 한국노총만을 인정하겠다는 업주들은 교섭을 거부했다. 법원에서 연이어 민주노총 버스노조가 합법이며 사용자 측은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도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 8일 전면 파업에 돌입했고 이로부터 140일간의 극한적인 투쟁이 시작됐다.

불평하던 시민들, 버스 업주에 비난 화살...시민단체, 중재 추진

12m 높이의 망루에 오른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이 19일 오후 전북 전주시 공설운동장 사거리 전교조 옥상에 설치된 버스파업 망루를 방문해 버스파업 지도부와 파업 해결을 위한 이야기를 나눈 뒤 망루를 내려오고 있다.

노조의 요구는 단순했다. 노조를 인정하고 교섭에 응하며 한국노총 노조와 동등하게 대우해달라는 것이었다. 파업 일주일 만에 노사 간의 첫 대화가 이뤄졌지만 업주들은 끝내 공식 교섭을 거부했다.

파업 초기 버스 운행 중단으로 시민 불편이 빚어지자 지역 여론은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버스업체와 뿌리깊은 유착 관계를 맺고 있던 지역 관료과 정치인들은 불법 파업 운운하며 업주들을 두둔했다. 버스업체는 적자라고 지자체에 보조금을 받고, 업주들은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내는 구조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파업 대오를 완강하게 유지하면서, 파업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전주시민들에게 알려나갔다.

이에 따라 지역여론은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지역의 노조와 시민단체는 파업 노동자들을 지원하며 노사 중재를 추진했다. 시민들은 불편함과 불만을 업주와 이들을 두둔해온 도지사, 시장 등에게 쏟아냈다.

버스노조는 '호남의 집권당'인 민주당에게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성을 보이라며 압력을 가했다. 정동영 의원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이 수차례 해결을 약속했으나 사태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단식과 고공농성 끝에 결국 노사는 지난 26일 △노조 인정 △징계 철회 △쌍방 간 고소고발 취하 △단체협약 체결 시까지 한국노총 단체협약 준용 △업무 복귀와 월 3회 이상 성실교섭 등 5개 항에 합의했고, 버스노조의 투쟁은 큰 고비를 넘겼다.

대부분의 노동계 인사들과 언론은 이번 노사합의가 노조의 승리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법적 다툼에서 연이어 승소 판결을 이끌어내고 지역사회에서 지지여론을 만든 것이 노조 승리의 바탕이 됐다. 반면 버스 업주들은 시민단체의 합리적 중재안까지 거부해 고립을 자초했다.

결과적으로 노조는 업주들의 노조 탄압을 막아내고 최소한의 활동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단체협약 체결, 양대노총 노조의 관계정립 등 과제도

투쟁하는 전북 버스 노동자

투쟁하는 전북 버스 노동자

그러나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노사 간에 ‘교섭을 하기로’ 합의했을 뿐 임금도, 단체협약도 새로 논의해 합의해야 한다. 체불임금도 해결이 만만치 않다. 또 한번 장기간 줄다리기가 불기피할 전망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관계 설정도 문제다. 한 사업장에 두 노조가 있다보니 선명성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버스노조와 업주들이 의견 접근을 이루자 한국노총 노조는 기습적인 승무거부를 벌이며 합의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치권과 지자체가 버스 업주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넣어 사실상 특혜를 주려 한다고 주장했다. 버스노조의 완승으로 투쟁이 끝날 경우 노동자들의 마음이 급속히 민주노총 쪽으로 기울 것을 우려한 행동으로 분석됐다.

일각에서는 7얼 1일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많은 사업장에서 버스노조와 같은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점차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양대노총 공조가 복수노조라는 걸림돌로 적지 않은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시내버스 제도의 개선도 노조의 중요한 과제다. 버스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개선과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 향상도 버스 업체의 운영을 정상화하고 지자체 보조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 이번 파업의 중요한 교훈 중 하나다.

투쟁을 이끌어온 박사훈 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장은 “지역의 독점적 집권세력인 민주당의 한계가 시내버스 문제에서 그대로 드러났다”며 “이후 노동자의 권익 개선은 물론, 지역의 시민사회와 연대해 시내버스 바로세우기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