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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의 나보이 공항 프로젝트, 사막의 신기루로 끝나나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입력 2011-07-06 18:28:58 l 수정 2011-07-12 09:36:46

한진그룹-나보이 프로젝트

지난 2008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루프탐 아지모프 당시 우즈벡 부총리 등과 함께 나보이 국제공항 건설계획과 관련한 설명을 듣고 있다.



"나보이 공항은 앞으로 10년 안에 중앙아시아의 두바이 공항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중앙아시아 전체와 연결된 물류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중소도시 '나보이(Navoi)' 공항 위탁 경영권을 따 낸 한진그룹 대한항공의 노명철 나보이공항장이 언론을 통해 수차례 한 말이다. 이처럼 야심차게 시작한 나보이 공항 프로젝트는 3년여가 지난 지금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여 있다.

대한항공은 2008년 8월부터 우즈벡 정부의 지원 아래 우즈벡 항공과 공항 공동개발에 나섰고, 그해 12월 1일자로 나보이 공항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그해 말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나보이 공항은 한진그룹이 우즈벡 정부와 공동으로 중앙아시아 '물류 허브' 구축을 추진 중이며, 지난 12월 10일 한진그룹과 우즈벡 정부는 '나보이 국제공항 공동개발 프로젝트 협약식'을 갖고 2013년까지 화물터미널 시설확충.연계 교통망 건설 등 공항 인프라 구축작업을 진행하며, 2018년까지는 항공화물확대.글로벌 물류업체 유치 등 공항개발을 추진키로 함"이라고 나와 있다.

대한항공이 나보이 공항 경영권을 넘겨받은지 약 5개월 후 이명박 대통령은 우즈벡을 국빈 방문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무역 루트 교두보인 우즈베키스탄의 물류 분야와 한국의 IT 분야를 기반으로 '21세기 신 실크로드'를 구축해야 한다"며 양국의 '윈-윈 전략'을 강조했다.

당시 양국 정부는 인프라, 물류, 에너지 분야 등과 관련한 양해각서(MOU) 6건을 체결했다. MOU 6건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건 나보이 특구 조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대한항공 화물기

대한항공 화물기.



나보이 공항, 사실상 미군의 아프간 병참기지 역할 충실히 하고 있어

대한항공이 나보이 공항 경영권을 따 낸 것과 관련해 당시 쏟아졌던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는 전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매우 고무적인 성과이며, 동북아의 인천공항처럼 중앙아시아의 물류 허브를 10년 내에 구축하게 되는 비전있는 사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겉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나보이 공항 프로젝트의 이면에는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나보이 공항이 미군의 아프간 전쟁물자 보급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숨겨져 있다. 대한항공은 나보이 공항이 갖는 미군의 병참 역할을 민감한 사안으로 인식,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화물사업본부 우즈벡사업총괄팀 관계자는 "그쪽(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물량이 있다"면서도 "자세한 내용은 말하기가 곤란하다다.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성질의 사안이 아니"라고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모회사인 한진그룹은 대한항공이 나보이 공항을 위탁 경영하기 시작한 시점인 2009년 회계연도(2008년 10월 1일~2009년 9월 30일) 미국 정부 계약 수주액이 전년에 비해 무려 503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기간 한진그룹 계열사인 'HANJIN TRANSPORTATION CO., LTD'가 미 국방부 등 미국정부를 상대로 따 낸 수송 수주액은 8천60여만 달러 규모였다. 2008년 회계연도 수주액인 16만2백여달러에 비해 무려 503배 증가한 수치다.

미국정부 예산집행 내역을 확인한 결과 'HANJIN TRANSPORTATION CO., LTD'는 당해 4월부터 9월까지 모두 6건의 아프간 군수 물자 수송 계약을 따낸 것으로 나타났으며, 한진은 아프간에 3만명의 미군이 증파되자 6월 40피트 컨테이너트럭 22대를 동원해 1만1천개의 침대를 수송하는 등 아프간 미군 군수물자 수송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 물자는 화물선에 실려 벨기에 안트베르펜이나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지로 옮겨진 뒤 브뤼셀 공항으로 이송돼 대한항공 화물기로 옮겨진 뒤, 나보이 공항에서 하역돼 아프간 내 미군 주둔지까지 한진그룹 계열 업체를 통해 운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유럽-나보이-아프간'으로 연결되는 군수 물자 전 수송라인을 한진이 책임지고 있다는 것.

대한항공이 대외적으로는 나보이 공항을 '물류 허브'로 구축한다고 밝혔지만, 실제 경영권 수주 단계에는 미-아프간 전쟁 물자 보급 경로로써의 역할을 비중 있게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5월 유라시아넷의 한 리포트('미국이 우즈벡에서 공군기지를 얻다')는 "나보이 공항 계약이 대외적으로는 한국과 우즈벡 정부 관리들, 민간회사의 중역들에 의해 체결됐지만, 미국 군대가 계약 체결에 관련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유라시아넷 리포트가 인용한 대한항공의 비공개 문서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한진그룹의 미군 물자 수송 라인과 딱 맞아떨어진다. 이 리포트가 소개한 대한항공 문서에는 '나보이를 통해 항공수송과 육상수송은 결합된다. 나보이에 도착하는 모든 항공-해상 수송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트럭과 철도 수송으로 전환된다. 미국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오는 물자들은 대한항공 보잉에 의해 운송된다. 나보이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는 일류신-76이 수송한다'고 쓰여져 있다.

이 리포트는 위 내용을 종합해 "나보이 허브는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미군의 수송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집적된 상업기지를 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나보이 프로젝트는 한-미-우즈벡 정부의 공동기획?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물자 보급로를 구축하는 데 대한항공이 기인하게 된 시점은 미국이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전쟁 물자 보급로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미국은 2001년부터 우즈벡 공항을 보급 기지로 이용하다 파키스탄 공항까지 보급로를 확대했다. 미국이 중앙아시아를 아프간 전쟁 보급로로 이용하는 데 차질을 빚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2005년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자국 내 안디잔 지역의 유혈시위 진압 사태를 두고 미국 정부가 강하게 비난했고, 이로 인해 양국 정부는 외교적으로 마찰했다. 마찰이 극대화되면서 우즈벡 정부는 미국이 사용해 온 공항을 폐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75%에 달하는 미군 물자가 이동하는 경로인 파키스탄 보급로마저 파키스탄 정국 혼란으로 차단됐으며, 마지막 보루였던 키르기스스탄에서 사용하던 또다른 공항도 2009년 문을 닫았다.

미국과 우즈벡은 여전히 외교적으로 서먹한 관계이며, 양국간 직접적인 접촉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대한항공이 나보이 공항을 맡을 수 있게 중개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고 '신동아'는 주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 있다.

실제 대한항공이 나보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 한국 정부의 권유에 의한 것이라고 노명철 대한항공 나보이공항장에 의해 알려졌다. 노명철 공항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대한항공이 적극적으로 나선 건 아니다. 우즈벡 정부 요청에 따라 한국정부가 권유를 해서 시작됐다"고 말한 바 있다.

마침 2009년 5월 한국 정부는 우즈벡 정부와 ▲나보이 특구 관리.운영 협력 ▲나보이 특구 상하수도 지원 MOU(수출입은행 17.6백만불) ▲철도분야 포괄적 협력 MOU ▲국제교통분야 협력 MOU(국제교통노선망, 국제물류센터 등) 등 나보이 특구 조성과 관련된 MOU를 맺었다.

한진그룹의 나보이 프로젝트가 양국의 경제 협력 체결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으나, 실제로는 한국 정부가 우즈벡 정부와의 경제 협력을 체결하면서 나보이 프로젝트에 날개를 달아주게 됐다. 대한항공은 당시 경제 협력 직후 기존 인천-나보이-밀라노 항공화물노선(주 3회)에 이어 오는 27일부터 인천-나보이-브뤼셀 화물노선(주 3회)을 신설했다. 대한항공은 이와 함께 우즈베키스탄 지역본부를 신설해 현지 주재 인력을 배치했다. 한진그룹도 100여대 트럭을 이용해 중앙아시아 지역 트러킹 노선망을 강화했다.

이 같은 한국의 중개로 미국은 물자 보급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됐고, 우즈벡은 자국에 투자 유치 기회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아프간 전쟁 종식과 함께 대한항공 '허브화' 계획도 물거품 될 가능성

문제는 아프간으로 가는 미군 물자 보급로 역할을 하고 있는 나보이 공항이 아프간 전쟁 종식과 동시에 '물류 허브'로서의 역할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 초 아프간, 이라크와의 전쟁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전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지난 6월 아프간 미군 철수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미군은 7월부터 5천명, 연말에 5천명, 내년 7월까지 2만 명을 철수하고, 2014년까지 나머지 7만명을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올해부터 미군이 아프간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함에 따라 한진그룹-미 정부 간 물류 수송 계약 규모도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한진그룹이 나보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현재 나보이 공항은 미군 물자 보급 외엔 '물류 허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물류 허브 조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애초 나보이 프로젝트에 손을 대면서 내걸었던 목표 달성은 불투명해 보인다.

대한항공 화물사업본부 우즈벡사업총괄팀 관계자는 "워낙 자체 산업기관이 전무한 지역이라 지금은 (허브화 조성과 관련해) 가시적 성과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물류허브가 되려면 국제항공을 많이 취급할 수 있어야 하지만 생산 기반이 없고, 외국 항공사들의 취항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나보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미국계 항공사를 비롯해한 외국 항공사가 취항하는 것이 관건인데, 이에 대해 우즈벡 정부가 매우 폐쇄적이고, 외국 항공사들도 취항을 꺼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보이 프로젝트와 연계해 추진하려 했던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현지 SOC 사업 진행 사항은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철도분야 포괄적 협력'과 관련, 철도시설공단 해외사업개발처 관계자는 "나보이 지역과 관련해서는 MOU 체결 이후 진행되고 있는 것도 없고, 우즈벡 정부와 접촉하지도 않았다"고 했고, '국제교통분야 협력'과 관련해서도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사업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정부의 근시안적 설계로 미국의 아프간 전쟁 종식과 함께 대한항공의 나보이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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