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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회? 왕재산?...이름조차 오락가락하는 반국가단체

언론마다 제각각, 같은 신문에서 다른 이름 쓰기도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입력 2011-07-30 12:47:32 l 수정 2011-07-30 17:22:23

왕재산? 일진회? '반국가단체' 이름조차 혼선

위로부터 동아일보의 왕재산 조직도. 두번째와 세번째는 같은 조선일보 보도로 각기 '왕재산'과 '일진회'가 섞여 있다.



29일 밤부터 언론들은 일제히 국정원이 최근 적발했다는 반국가단체 즉, ‘간첩단’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단체의 이름조차 헷갈리고 있어 과연 조직사건의 실체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일고 있다.

당초 국정원이 이번에 적발했다는 반국가단체의 이름은 ‘일진회’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지난 7월 4~6일, 9일, 24일에 총 15명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이중 총책으로 알려진 김 모 씨를 포함한 5명을 구속했다. 그 이후 국정원으로부터 소환조사를 받았거나 조사를 통보받은 사람은 이보다 많은 3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진회’라는 사건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도 이 과정에서다.

<민중의소리>의 취재 결과 ‘일진회’라는 조직 사건 이름은 압수수색을 하는 국정원 수사관들의 입에서 처음 흘러나왔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사건 관련자들은 공통적으로 ‘일진회’라는 조직사건 이름을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들었다고 말하며 “일진회라는 말도 처음 들어본다”며 반발했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번 사건은 ‘일진회’ 사건으로 규정됐다.

그러나 30일자 신문들은 이번 사건을 ‘일진회’ 사건이 아닌 ‘왕재산’ 사건으로 보도했다. 검찰 관계자가 브리핑을 하면서 이 사건 이름을 ‘왕재산’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왕재산’이 이번 사건의 단체명이라는 검찰 발표에 사건을 알고 있던 당사자들은 황당하다는 분위기다. 국정원의 조사과정에서 흘러나온 소식에 따르면 ‘왕재산’은 당초 조직 총책이라는 사업가 김모씨의 대호명(암호명)이었으나 검찰 발표에서는 ‘왕재산’이 조직 이름으로 둔갑했다. ‘왕재산당’이라는 자못 어색한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국가를 변란할 반국가단체 이름이 '왕재산'(?)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 및 그 하부조직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법률이다. 국가보안법 2조는 "이 법에서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서 가장 대표적으로는 ‘북한’이 지목된다.

법조계에서는 통상적으로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겠다는 뚜렷한 목적 △조직적이고 일사분란한 지휘통솔체계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구체적 활동 등을 반국가단체의 구체적 징표로 거론하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이 반국가단체를 적발했다고 공표했고, 이를 근거로 일부 언론보도에서는 ‘민혁당’ 사건 이후 12년 만에 또는 ‘구국전위’ 사건 이후 17년만에 적발된 반국가단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반국가단체의 초보적 ‘신상명세’라 할 단체명조차 헷갈리고 있다. 즉 대한민국을 체제를 전복할 '어마어마한' 조직을 적발했는데 이 조직의 이름이 헷갈린다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이지고 있다.

비유하자면 007이라는 공작원이 반국가단체를 결성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하다 느닷없이 ‘007 ’이 조직 이름이라고 발표한 셈이다. 이번처럼 국정원이 조직명조차 확정하지 못해 혼선을 빚은 것은 반국가단체 사건 역사상 유례가 없다는 게 법조계의 반응이다.

‘도대체 적발한 조직의 명칭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거세지자 국정원은 ‘일진회’를 조직명으로 거론한 바가 없다고 발을 빼는 분위기다. 그러나 애초 사건 관련자들이 국정원을 통해서 말고는 조직 명칭을 들을 수 없고 공통적으로 ‘일진회’라는 사건에 대해 ‘처음 들었다’고 반발한데 비추어보면 그럼 ‘일진회는 어디서 튀어나왔냐’는 의문에 국정원이 답을 해야 할 처지다.

사건 조직 명칭조차 오락가락하는 국정원의 혼선은 그대로 언론으로 옮겨갔다.

29일과 30일 일제히 언론에 사건이 보도됐지만 매체마다 ‘일진회’ 사건과 ‘왕재산’ 사건이 혼재돼 있다. 일부 매체는 아예 ‘지하당’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심지어 조선일보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놓고 기사마다 ‘왕재산’ 사건과 ‘일진회’ 사건을 따로 쓰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사건에 오랫동안 관여해온 인권법률단체 관계자는 “숱한 국가보안법 사건을 보지만 반국단체라는 무시무시한 사건을 발표하며 국정원이 명칭도 헷갈리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어이없어 했다.

한 야당 당직자는 “뭔가에 쫓기듯 서둘러 반국가단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는 했지만 조직이 있기는 했는지 불분명하다”며 “이름조차 헷갈리는 것을 보니 다른 공안사건처럼 용두사미로 끝나는 게 아니냐”며 ‘날림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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