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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터뜨린 김선동 "서민들 앞에 거짓으로라도 눈물 흘려라"

홍민철 기자
날치기 중단하라 외치는 김선동 의원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당의 한미FTA 비준안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발언대에 올라가 의장석에 앉아 있던 정의화 국회부의장 앞에 최루 가루를 뿌린뒤 국회경위들한데 끌러나오며 날치기 중단을 외치고 있다.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22일 한미FTA 비준동의안 국회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기 위해 이날 오후 3시 55분께 본회의장 발언대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김선동 의원은 최루탄을 터뜨린 뒤에도 한미FTA비준안이 한나라당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되자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쏘는 안중근의 심정으로, 윤봉길 의사의 심정으로 우리 대한민국 서민을 짓밟고 서민의 운명을 깔아뭉개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고 묵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선동 의원은 "무력한 소수야당의 한 사람의 국회의원으로서 도저히 역사와 국민 앞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매국적이고 망국적인 저 날치기 도적행위를 어떻게 참고 어떻게 두 눈 부릅뜨고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저의 심정은 이보다 더한 일도 하고 싶습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 한미FTA 무효화시킬 수만 있다면 기꺼이 제 목숨도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선동 의원은 이날 저녁 7시께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한미FTA저지 집회에서도 최루탄을 터뜨린 이유에 대해 "서민들 피눈물 흘리게 할 협정문을 처리하면서 국회의원들도 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루탄을 터뜨렸다"며 "서민들 앞에서 거짓으로라도 눈물 흘리고 처리하라는 심정으로 했다"고 말했다.

김선동 의원은 올해 4월 전남 순천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에 진입했다.

김 의원은 전남 고흥군 도화면 발포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해 물리학자를 꿈꿨으나 1988년 미문화원 점거 투쟁으로 구속과 제적을 당한 후 노동현장에 투신했다.
1997년 '국민승리21'을 거쳐 1999년 진보정당 창당이 추진될 때 김 의원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합류했으며,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 광주시지부 조직국장 맡아 광주에서 당을 건설하는데 산파역할을 맡았다.

이후 김선동 의원은 2000년 전남 여수와 순천의 노동자들이 대거 당에 가입하자 순천에서 민주노총 정치위 간사로 활동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김 의원은 순천에서 2년간 순천시당을 비롯한 여러 지구당을 개척하고 광주시지부에 이어 전남도지부를 건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2006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등 요직을 맡았다.

2007년 사무총장을 사임한 다시 고향으로 내려간 김 의원은 국회의원 후보가 되기 한달 전까지 노동현장에서 건설 배관공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현장 중심의 노동운동을 온몸으로 실천한 차세대 지도자라는 평을 받았다.

국회에 입성한 김선동 의원은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이번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상임위원회 회의장 점거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