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속기록으로 보는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39분'

본회의 비공개 사전 준비...야당 의원 토론 요구도 묵살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입력 2011-11-24 14:32:38l수정 2011-11-24 15:03:14
직권상정 정의화 부의장에게 항의하는 야당의원들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 한미fta 기습처리 하자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현장이 생생하게 기록된 국회 본회의 속기록이 24일 공개됐다. 국회 의정기록과에서 작성한 속기록은 25일부터 국회 홈페이지에서 일반인도 확인이 가능하다. 그에 앞서 '속기록으로 보는 한미FTA 비준안 처리 현장'을 지면을 통해 전한다.

한나라당은 22일 본회의에서 한미FTA 비준안을 날치기하면서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하려 했다. 하지만 경위들의 제지를 뚫고 본회의장 기자석에 입장한 기자들이 "비공개 회의니 나가달라"는 정의화 국회부의장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회의는 공개됐다.

그러나 회의를 비공개하기로 의결함에 따라, 국회방송을 통한 본회의 생중계는 이뤄지지 않았고, 경위들의 제지로 본회의 취재를 봉쇄당한 기자들도 많았다. 이에따라 비준안을 날치기 하면서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주고받은 공방은 자세하게 알 수 없었다.

속기록에는 여야 의원들이 주고받은 말들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안과 14개 이행법안을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했는지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 대법관 김용덕, 박보영 임명동의안 까지 날치기 하려다가 야당의 반발이 거세자 포기한 상황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4시24분 개의 선언...야당 "날치기 하지 마라"
한나라당 본회의 비공개 사전 준비...황영철 의원 외 12명 서면동의로 '비공개 동의 건' 제출

속기록에는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루탄을 터뜨리고 나서 경위들이 의장석 주변을 정리한 후, 4시24분 개의해서 5시3분 산회할때까지 '39분'을 담고 있다.

박희태 국회의장 대신 의장석에서 의사봉을 잡은 정의화 부의장은 4시 24분 "성원이 되었으므로 13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김재윤 민주당 의원이 단상에서 "날치기 한미FTA 즉각 중단해야 됩니다. 날치기 처리하지 마십시오.이 나라에 고통을 주는 날치기 처리 반대합니다"라고 외쳤다. 이어 야당 의원들이 여기저기서 "날치기 처리하지 마라"고 외치면서 장내가 소란해 졌다.

정의화 부의장은 먼저 "회의 비공개와 중계방송 불허에 대한 서면동의가 발의됐으므로 먼저 의결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황영철 의원 외 12인의 서면동의로 '본회의 비공개 동의의 건'을 제출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비준안을 단독 강행처리 하기로 결정하면서 본회의 비공개도 사전에 준비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의화 부의장은 "국회법 75조 2항에 따라서 이 안건에 대해서는 토론없이 표결할 것을 선포한다"고 말하면서 투표를 주문했다. 야당 의석에서 "중단하라", "공개하라"는 고성이 터져나왔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대한민국 국민이 불쌍하다"고 외쳤다.

마스크하고 한미FTA 투표하는 박근혜 전 대표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 점거 한미fta 기습처리 하자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최루가루를 뿌린 후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의원들이 마스크와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투표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그러자 정의화 부의장은 "지금 보십시오. 이런 모습을 보이니까 공개를 안 하는 거예요"라고 말했고, 한 야당 의원이 "강행처리 합니까? 강행처리 하니까 그러지요"라고 받아쳤다. 야당 의원들은 "말이 됩니까 이게", "공개하세요", "이것이 민주국회입니까, 독재국회지"라고 항의했다.

야당 의원들의 항의속에서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석에 앉아 일사분란하게 전자투표 버튼을 눌렀다. '회의 비공개 동의의 건'에 재석의원 167명 중 154명이 찬성하면서 유례없는 본회의 비공개가 결정됐다.

자유선진당 권선택, 김낙성, 류근찬, 박선영, 이진삼, 임영호 의원과 창조한국당 이용경 이원 등 7명의 의원은 본회의 비공개에 반대했고, 한나라당 김성식, 남경필, 이두아, 임해규, 정태근, 현기환 의원 등 6명은 기권했다.

전광판에 표결결과가 집계되고 정의화 부의장이 가결을 선포했다. 야당 의원들은 "왜 중계방송도 안 해", "뭐가 두려워서 방송 안 한다는 거예요. 뭐가 두려워서"라고 외쳤다.

정의화 부의장은 "아무것도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대한민국 국회가 이런 추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줘서..."라고 말했다. 이어 고개를 들어 기자들이 발 디딜틈 없이 들어찬 기자석을 보면서 "언론인들께서는 의사진행에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야당 의원들은 "나가지 마, 나가지 마세요", "역사가 심판하도록 공개해", "야, 이놈들아 공개해야 돼"라고 외쳤다.

제안설명, 토론 생략 일사천리..."최악의 독재정권이다", "의장님, 토론신청했어요"
야당 의원 "당신은 매국노다"...정의화 "역사가 판단합니다"

속기록에는 4시27분부터 비공개회의가 개시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기자들이 나가지 않으면서 본회의는 사실상 공개됐다. 물론 제한적 공개였다. 본회의장 밖 기자석 출입구에서는 비공개 본회의라면서 경위들이 기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4시28분 한미FTA 비준동의안이 상정됐고, 정의화 부의장은 "외교통상부 장관 나오셔서 제안설명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이 "생략하세요"라고 주문했고, 야당 의원은 "여야 합의해서 하세요. 뭘 일방적으로 강행처리 합니까"라고 항의했다.

회의장이 계속 소란스럽자 정의화 부의장은 "지금 회의장이 소란하여서 제안설명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상정될 안건들의 제안설명은 단말기의 회의자료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면으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제안설명을 생략했다.

야당 의원들은 "뭐가 단말기야. 토론해. 토론", "이게 무슨 짓거리야. 날치기, 날치기 하지마", "이명박 정권이 독재정권인가", "최악의 독재정권이다"라고 외쳤다.

정의화 부의장은 "투표 다 하셨습니까?"라고 물었고, 이정희 대표는 "토론 신청했잖아요. 토론 안 하면 이 투표는 무효입니다. 위법이라고 이미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의장님, 토론 신청했잖아요. 의장님, 토론 신청했어요"라고 외쳤다.

비준안은 재석 170명 중 찬성 151명, 반대 7명, 기권 12명으로 통과됐다. 야당 의석에서는 "무효다", "야! 이 강도 같은 놈아"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한 야당 의원은 "당신은 매국노다"라고 외쳤고, 정의화 부의장은 "역사가 판단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14개 한미FTA 이행법안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14개 법안을 처리하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행법안 처리가 계속되자 야당 의원들은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해 가지고 와", "청와대에 최류탄을"이라고 항의했다.

강행처리 저지를 위해 몸을 날리는 야당 의원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당의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강행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발언대에 올라간 민주당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항의하는 가운데 의장석에 앉아 있던 정의화 국회부의장 앞 민주당 최규성 의원과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의사봉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정의화 "대법관 임명동의안 투표 시작하겠습니다"
야당 "한나라당 날치기는 뭐든지 다 해요?", "여러분이 조폭이지 정치인입니까?"


4시56분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마지막으로 이행법안을 모두 통과시킨 후, 정의화 부의장은 대법관 김용덕, 박보영 임명동의안도 상정했다. 야당은 "어떻게 임명동의안까지 날치기를 하냐고, 임명동의안까지!"라고 항의했다.

정의화 부의장은 인사에 관한 사항은 무기명투표로 한다는 국회법에 따라 무기명투표 표결을 선언했고, 감표위원 8명도 지명했다. 정 부의장은 "의사국장으로부터 투표 방법에 관한 설명을 해야 됩니다마는...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투표개시를 선언했다.

야당 의원들은 "대법관 임명동의안까지 이러기예요?", "한나라당 날치기는 뭐든지 다 해요?",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여러분이 조폭이지 정치인입니까?"라고 항의했다. 한 야당 의원은 "정의화 부의장님, 대한민국 국회인 걸 포기한 겁니다. 지금 당신은. 어떻게 대법관 인사동의안까지 날치기를 합니까? 한나라당 의원들, 양식이 있으면 투표하지 마세요!"라고 외쳤다.

야당 의원들이 투표함을 뒤엎는 등 반발하자, 정의화 부의장은 여당 지도부와 상의해서 투표 중단을 선언했다. 정 부의장은 "투표를 중단고 다음에 다시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습처리 후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한나라당 의원들

22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한나라당이 기습 처리한 후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김철수 기자



5시3분 산회...김선동 "정의화 부의장! 역사의 죄인이 될 거야"

정 부의장은 이어 "오늘의 현실은 아직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요원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쉽고 정치가 우리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아서 의장의 한 사람으로서 비통하고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몸싸움하는 모습이 국민 여러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또 방송을 통해서 전세계로 알려져서 우리의 후진적인 모습이 세계인들의 조소거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비공개를 하였습니다. 협조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말씀 드리고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본회의 시작에 앞서 의장석 아래 발언대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던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은 단상에서 "정의화 부의장! 역사의 죄인이 될 거야!"라고 외쳤다.

김 의원의 외침이 본회의장에 울려퍼지고, 정의화 부의장은 산회를 선포했다. 본회의장 시계는 5시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미FTA 비준안과 14개 이행법안을 처리하는데 불과 39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찬반토론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법안 제안설명 조차도 생략했다. 의석에 앉아 쉴새 없이 찬성 버튼을 누른 한나라당 의원들은 법안의 내용은 알고 투표를 한 걸까?

  • 1
  • 2
  • 3
  • 4
  • 5
  • 6
  • 7

  • 1
  • 2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