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

고기잡이 나가, 칠흑의 밤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작은 배를 위해
절벽 위에 법당과 부처까지 꼬실라버린 노승이 있었다지
백련꽃 백만 송이보다
이름도 없는 꽃을 받들던 아 잎없는 잎들

늘 가슴 가운데가 허전해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이 직지사 산문을 나오다
상사화를 보았다
유월에 잎이 지고 팔월에 꽃이 피어
잎과 꽃이 한 번을 만나지 못하고 평생 그리워만 한다면
공백이란 얼마나 아픈 자리일까
그래 늘 마음 한 구석이 비어
그대에게 가던 길도 텅텅 빈 그대로

이대로 깐죽깐죽 젖다 마는 것인가
세상에 뚝 떨어진 듯 말뚝처럼 서서
싹이 난다 잎이 난다 배꼽을 옹이처럼 활활 비빈 두 손바닥
나는 두 잎의 새순을 가진 길가의 새로운 나무다
이 잎 달린 잎으로 받드는, 한 꽃송이 붉은 해 같은 넓은 사랑을

유종순 시인의 감상노트
만날 수 없는 운명처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까. 상사화의 잎과 꽃이 그렇다. 한 몸에서 피고 자라지만, 상사화의 잎과 꽃은 평생 서로를 볼 수 없다. 잎들은 새순으로 태어나면서 질 때까지 묵묵히 광합성으로 양분을 생산해낸다. 꽃이 필 수 있도록 제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피워낸 꽃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이 기막힌 이유 때문에 꽃이름도 ‘서로 그리뤄 하는’ 상사화相思花다. 그래서 시인은 이 애처로운 그리움에 목이 매어 스스로 자신의 두 손을 잎사귀로 하는 새로운 나무가 되리라고 노래한다. 상사화의 잎새들처럼 묵묵히 제 한몸을 태워 세상의 꽃들을 피워보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