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 진보당과 '구석기 공룡' 민주당
[이젠 국유화다⑦-마지막] 대중적 합의도, 모범답안도 다 있지만…
문형구 기자 munhyungu@daum.net
입력 2012-01-27 18:48:24 수정 2012-01-28 11:33:28
2000년 1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집행위)는 85개 다국적 기업의 연합단체인 '유럽서비스포럼'에 은밀한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서 EU집행위는 다국적기업들의 '소원 목록'을 받아 WTO 내의 GATS 협상에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소원 목록의 두 가지 항목 가운데 하나는, 다국적기업이 진입을 원하는 분야 즉 민영화를 원하는 분야였다. EU집행위가 이 소원 목록을 받아 엮은, 109개국 150개 서비스 분야를 포괄하는 1,000페이지 분량의 극비 문서는 2002년 7월 WTO에 전달되기 직전에 유출되었다.(미헬 라이몬 외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 참조)
이 사건은 민영화의 '속살'을 잘 보여준다. 권력과 거대기업들의 결탁, 그리고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공공의 이익을 거대기업의 손에 넘기는 지를.
무한 이윤 추구에, 교도소·전쟁도 민영화
민영화의 대상에는 한계가 없다. 오직 무한한 이윤 추구라는 사적기업의 목적에 종사할 뿐이다. 기업가들의 '지상낙원'인 미국에서는 교도소가 민영화되어, 다국적 교도소 기업인 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의 경우 미국 내 63개 교도소에 6만 9000명을 수감하고 있다. 국방과 치안도 예외가 아니다. 다국적 용병회사인 '블랙워터' '다인코프' 같은 회사들은 콜롬비아, 이라크, 아프간 등 전세계를 누비며 살상을 자행한다. 2010년 3월 기준으로 미국 국방부의 '민간위탁'을 받고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용병 규모는 6만8천여명, 전체 병력의 57%로 정규군을 압도했다.
상수도 민영화나 의료 민영화로 인한 폐해는 새롭지도 않은 뉴스다. 베올리아, 쉬에즈, RWE, 맥쿼리(템즈워터) 같은 거대 물 기업들은 각국에서 수도요금을 수백 % 폭등시키고 지역민들의 개별적인 우물 사용조차 금지시킨다. 의료민영화 선진국인 미국에선 보험이 없거나, 보험이 있어도 해당 병원엔 적용이 안된다는 이유로 병원 앞 잔디밭과 병상 위에서 치료를 거부당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한국의 민영화 수준도 어느 '선진국' 못지 않다. 민영화 대상에 올라있는 우리은행을 포함한 4대 은행과 통신, 철강, 정유 등 핵심 기간산업들이 민영화 이후 실질적인 외국인 소유가 됐고, 현 정부에 의해 KTX 민영화도 추진중이다. 지난 2010년엔 최초의 민영교도소인 '아가페소망교도소'가 문을 열었고, 한미 FTA로 상수도가 사실상 개방되면서 베올리아, 맥쿼리 같은 다국적 물 기업들이 한국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가는 대중, 국유화 찬성이 2/3
잦은 말썽을 일으키는 기계장치(메커니즘)가 있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기존의 기계를 수리해서 계속 쓰는 것과, 새 제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국가 개입을 강화해 통신비를 제한한다든지 석유제품 원가를 공개하는 등의 조치는 전자에 해당한다. 당장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선 이런 '수리'도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또한 이 기계가 당초부터 불량품이었다면 적절한 해법은 정상제품으로 바꾸는 것 뿐이다.
민영화가 공적 소유의 영역을 사기업에 내맡긴 것이고 보면, 국유화는 사실 이를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는 대중의 불만이 안내할 것이다. 국민들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면서 독점이 불가피한 통신이나 정유 같은 산업이 왜 민영기업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들 산업이 독점에서 나오는 초과이익을 사적 주주들에게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학 교과서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어디까지 할 것인지는 대중의 합의를 따르면 된다. 대중들의 인식은 정치권보다 앞서가고 있다. 올해 초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일보가 공동실시한 '국민의식 조사'에선 기간산업을 정부가 운영해야 한다는 답변이 대중교통 67.9% 전력 80.3%, 금융55.9%, 병원 49%에 달했다.
기간산업을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는 답변은 2004년에 실시된 같은 조사에 비해 10% 이상 크게 늘어났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민영화의 폐해를 경험한 국민들에게 '국유화는 비효율적'이라는 통념이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복지정책의 성패도 결국은 기간산업의 국유화 여부에 달려 있다.
민주당과 같이 세금만으로 뒷받침되는 복지는 전통적인 재정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대중적 추진력을 잃고 '국가냐 시장이냐'의 도돌이표에 갇히게 될 것이다. 낡은 케인즈주의는 이 대목에서 실패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 문제를 '세출 구조조정'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바 있다. 즉 "복지 지출의 증가가 '밑 빠진 독의 물 붓기'가 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질의 고용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은 이미 마련돼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면서, 취업유발효과도 큰 공공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이 그것인데 여기서도 핵심고리는 국유화다. 고용을 민간에만 맡겨놓는 한 이런 선순환은 불가능하다. 또한 기간산업 국유화는 독점기업들의 초과이윤을 국민의 몫으로 되찾아옴으로써 장기적으로 가능한 복지 재원이 될 것이다.
'난쟁이' 진보당, '구석기 공룡' 민주당
대중의 요구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은 진보진영의 과제다. 다음 정부를 운영하게 될 민주통합당이 당 강령이나 정책 수준에서 국유화 의지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민주당은 '좌클릭'의 중심 내용인 무상복지와 관련된 서비스공급기관의 국유화 및 사회화 방안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상복지의 두 가지 요건 중 한 가지만을 갖춘 것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무상복지로 보기 힘들다"며 "사회복지 공급자가 과도하게 이윤추구 행위를 하게 되면 필요 이상의 재원이 들어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강령이나 정책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소속 의원들의 보수성이다. 김진표 원내대표의 경우 재경부 차관 시절부터 은행소유제한 완화를 지지해왔고,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엔 재경부 장관으로 있었다.
유종일 민주당 경제민주화특위장은 "당 강령은 상당히 진보적으로 바뀌었지만 그에 비해 의원들 성향은 다소 보수적인 게 사실"이라며 "한나라당도 개혁을 얘기하는 분위기이니 그 분들(의원들)도 공공성 강화에 동의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물, 에너지(전력·가스), 교육, 통신, 금융 등 5대 국유화 강령이 있지만 이를 정치 의제화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난쟁이' 진보당과 '구석기 공룡' 민주당 사이에서 대중이 느끼는 답답함이 여기에도 존재하는 셈이다.
소수정당이 가진 이슈 주도력의 한계와 제도권 언론의 외면이 큰 제약요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상급식, 무상의료 정책에서도 이미 드러났듯이, 진보진영은 좋은 정책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짜임새있게 디자인하고 단순명쾌한 전략공약으로 연결시키는 데는 약점을 보여왔다. 요컨대 정책 디자인 기능이 취약한 것이다.
이 사건은 민영화의 '속살'을 잘 보여준다. 권력과 거대기업들의 결탁, 그리고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공공의 이익을 거대기업의 손에 넘기는 지를.
무한 이윤 추구에, 교도소·전쟁도 민영화
민영화의 대상에는 한계가 없다. 오직 무한한 이윤 추구라는 사적기업의 목적에 종사할 뿐이다. 기업가들의 '지상낙원'인 미국에서는 교도소가 민영화되어, 다국적 교도소 기업인 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의 경우 미국 내 63개 교도소에 6만 9000명을 수감하고 있다. 국방과 치안도 예외가 아니다. 다국적 용병회사인 '블랙워터' '다인코프' 같은 회사들은 콜롬비아, 이라크, 아프간 등 전세계를 누비며 살상을 자행한다. 2010년 3월 기준으로 미국 국방부의 '민간위탁'을 받고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용병 규모는 6만8천여명, 전체 병력의 57%로 정규군을 압도했다.
상수도 민영화나 의료 민영화로 인한 폐해는 새롭지도 않은 뉴스다. 베올리아, 쉬에즈, RWE, 맥쿼리(템즈워터) 같은 거대 물 기업들은 각국에서 수도요금을 수백 % 폭등시키고 지역민들의 개별적인 우물 사용조차 금지시킨다. 의료민영화 선진국인 미국에선 보험이 없거나, 보험이 있어도 해당 병원엔 적용이 안된다는 이유로 병원 앞 잔디밭과 병상 위에서 치료를 거부당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한국의 민영화 수준도 어느 '선진국' 못지 않다. 민영화 대상에 올라있는 우리은행을 포함한 4대 은행과 통신, 철강, 정유 등 핵심 기간산업들이 민영화 이후 실질적인 외국인 소유가 됐고, 현 정부에 의해 KTX 민영화도 추진중이다. 지난 2010년엔 최초의 민영교도소인 '아가페소망교도소'가 문을 열었고, 한미 FTA로 상수도가 사실상 개방되면서 베올리아, 맥쿼리 같은 다국적 물 기업들이 한국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가는 대중, 국유화 찬성이 2/3
ⓒ한국일보
보건사회연구원, 한국일보의 '공생발전을 위한 국민의식조사' 결과
'); }잦은 말썽을 일으키는 기계장치(메커니즘)가 있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기존의 기계를 수리해서 계속 쓰는 것과, 새 제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국가 개입을 강화해 통신비를 제한한다든지 석유제품 원가를 공개하는 등의 조치는 전자에 해당한다. 당장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선 이런 '수리'도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또한 이 기계가 당초부터 불량품이었다면 적절한 해법은 정상제품으로 바꾸는 것 뿐이다.
민영화가 공적 소유의 영역을 사기업에 내맡긴 것이고 보면, 국유화는 사실 이를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는 대중의 불만이 안내할 것이다. 국민들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면서 독점이 불가피한 통신이나 정유 같은 산업이 왜 민영기업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들 산업이 독점에서 나오는 초과이익을 사적 주주들에게 보장해야 하는 이유는 경제학 교과서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
어디까지 할 것인지는 대중의 합의를 따르면 된다. 대중들의 인식은 정치권보다 앞서가고 있다. 올해 초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일보가 공동실시한 '국민의식 조사'에선 기간산업을 정부가 운영해야 한다는 답변이 대중교통 67.9% 전력 80.3%, 금융55.9%, 병원 49%에 달했다.
기간산업을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는 답변은 2004년에 실시된 같은 조사에 비해 10% 이상 크게 늘어났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민영화의 폐해를 경험한 국민들에게 '국유화는 비효율적'이라는 통념이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복지정책의 성패도 결국은 기간산업의 국유화 여부에 달려 있다.
민주당과 같이 세금만으로 뒷받침되는 복지는 전통적인 재정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대중적 추진력을 잃고 '국가냐 시장이냐'의 도돌이표에 갇히게 될 것이다. 낡은 케인즈주의는 이 대목에서 실패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이 문제를 '세출 구조조정'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 바 있다. 즉 "복지 지출의 증가가 '밑 빠진 독의 물 붓기'가 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질의 고용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은 이미 마련돼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면서, 취업유발효과도 큰 공공사회서비스 분야의 일자리 창출이 그것인데 여기서도 핵심고리는 국유화다. 고용을 민간에만 맡겨놓는 한 이런 선순환은 불가능하다. 또한 기간산업 국유화는 독점기업들의 초과이윤을 국민의 몫으로 되찾아옴으로써 장기적으로 가능한 복지 재원이 될 것이다.
'난쟁이' 진보당, '구석기 공룡' 민주당
ⓒ김철수 기자
민주당은 기간산업 국유화에 대한 의지가 없고, 진보당은 정치 의제화에 실패하고 있다
'); }대중의 요구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은 진보진영의 과제다. 다음 정부를 운영하게 될 민주통합당이 당 강령이나 정책 수준에서 국유화 의지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민주당은 '좌클릭'의 중심 내용인 무상복지와 관련된 서비스공급기관의 국유화 및 사회화 방안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상복지의 두 가지 요건 중 한 가지만을 갖춘 것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무상복지로 보기 힘들다"며 "사회복지 공급자가 과도하게 이윤추구 행위를 하게 되면 필요 이상의 재원이 들어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강령이나 정책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소속 의원들의 보수성이다. 김진표 원내대표의 경우 재경부 차관 시절부터 은행소유제한 완화를 지지해왔고,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엔 재경부 장관으로 있었다.
유종일 민주당 경제민주화특위장은 "당 강령은 상당히 진보적으로 바뀌었지만 그에 비해 의원들 성향은 다소 보수적인 게 사실"이라며 "한나라당도 개혁을 얘기하는 분위기이니 그 분들(의원들)도 공공성 강화에 동의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물, 에너지(전력·가스), 교육, 통신, 금융 등 5대 국유화 강령이 있지만 이를 정치 의제화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난쟁이' 진보당과 '구석기 공룡' 민주당 사이에서 대중이 느끼는 답답함이 여기에도 존재하는 셈이다.
소수정당이 가진 이슈 주도력의 한계와 제도권 언론의 외면이 큰 제약요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상급식, 무상의료 정책에서도 이미 드러났듯이, 진보진영은 좋은 정책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짜임새있게 디자인하고 단순명쾌한 전략공약으로 연결시키는 데는 약점을 보여왔다. 요컨대 정책 디자인 기능이 취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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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구 기자munhyung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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