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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폭거'에 분노한 홍길동의 트위터 점령기

[파워트위터리안을 만나다③] 노루귀(고창규) @hoongkildong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입력 2012-03-09 08:42:19 l 수정 2012-03-09 20:25:01

지난해말 트위터 이용자수가 540만명을 넘었다. 이 가운데는 소설가 이외수, 김연아 선수,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처럼 기존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 파워트위터리안이 있는 반면, 트위터 상에서 갑작스레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알려지지 않은 파워트위터리안(?)들을 민중의소리에서 직접 찾아나섰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언제부턴가 트위터에는 '홍길동'을 자처한 신출귀몰한 인물이 서서히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부터, 언론악법 통과, 방송 장악, 한미FTA 발효, 최근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강행까지, 이명박 정부가 4년 동안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발빠르게 하는 동안 '트위터의 홍길동'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 붙는 이슈거리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으니, 그때마다 분노에 찬 홍길동의 손은 스마트폰 키패드를 두드리느라 항상 바삐 움직였다. 도대체 그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누구냐고? 진보개혁 성향의 트위터리안이라면 이쯤 되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바로 '노루귀'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파워트위터리안 고창규씨(@hoongkildong, 55세)다.

"초봄에 잎새도 없이 엄지손톱 크기의 꽃을 피우는 야생화 '노루귀', 모진 추위를 견디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이 야생화처럼 2mb 독재에 맞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민주주의를 되찾는 그 날까지 빡시게" 그의 프로필에 적힌 글귀다. 성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프로필이 눈에 확 들어온다.

지난해 본지가 갑자기 제휴를 끊은 모 포털업체와 피 튀기는 사투를 벌일 때 그는 본지 트위터 계정 @newsvop 홍보대사(?)를 자처하기도 했다. 당시 더 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이고자 밤낮으로 트위터와 시름하던 필자에게 본지 계정을 팔로우해달라고 권유하고 다니던 그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명박 아니었으면 트위터 할 일도 없었죠"

그의 팔로워 수는 8만명에 육박한다. 웬만한 언론사 계정의 팔로워 수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그가 50대 중반의 나이에 젊은이로 위장(?)한 채로 파워트위터리안이 될 수 있었던 데엔 이명박 대통령의 공이 컸다.

파워트위터리안 고창규씨.

파워트위터리안 고창규씨.

그에게 "왜 그렇게 트위터를 열심히 하냐"고 물었다.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니, 예상대로였다. 그는 "이명박이 트위터를 안 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들에겐 골치 아픈 일이겠지만, 그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해인 2008년 말에 멀쩡히 하고 있던 일을 돌연 때려친 건 꽤 재미있는 '사건'이다. 이러한 결단은 그가 갖고 있는 투철한 '반MB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터넷 콘텐츠 사업을 하다가 2008년도 말에 도저히 일이 안 되더라고요.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이 쓰이니깐 2012년까지 사업을 잠시 접자고 마음먹고 일을 때려치고, 촛불시민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특이하다. 지금껏 대통령 때문에 잘 하던 일을 그만뒀다는 사람은 주위에서 본 적이 없다. 자세히 그 연유를 들어봤다. 100% 동의하진 않더라도, 그의 결정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우리는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을 접한 사람들이잖아요. 이후에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들어서면서 '뭐 걱정할 게 있겠나' 싶었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로 바뀌고 나서 악몽이 또다시 재현됐죠. 2008년도 광우병 촛불 때 여학생이 경찰한테 맞고 머리에서 피 흐르는 사진을 보고 무지하게 놀랬어요. 아니, 극렬 시위대도 아니고, 평범한 여학생을 그렇게 패댕이 치는 게 어딨습니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냐'는 생각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군사독재 시절 이후 오랜만에 접한 충격적인 대한민국의 모습에 그는 당황했다. 무언가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그래서 '아고라'라는 인터넷 공간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곳에서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추악하고 퇴행적인 현실을 목격했다.

"아고라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보니깐 기가 막힙디다. 그때부터 인터넷에 글이란 걸 쓰기 시작했어요. 직접 현장을 봐야 하니깐 글을 쓰면서 집회에도 참석했죠.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매주 토요일마다 집회에 나갔어요. 결국은 전문시위꾼이니 하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온오프라인 안 가리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2010년 들어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플레이어들의 활동 무대는 아고라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러운 인터넷 환경의 변화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트위터를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이명박 정부 들어 급격히 보수화되기 시작한 언론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미네르바 사건 이후로 통제가 심해지면서 아고라에 글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언론 장악도 시작되면서 그만큼 정보량이 눈에 띄게 축소됐어요. 무언가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죠. 어떻게 해서든 활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트위터를 우연히 접하게 됐는데, 이건 뭐 아무런 제약이 없는거죠. 서버 자체가 해외에 있으니깐 익명 활동도 확실히 보장이 되고, 정보의 확산속도도 무지막지하게 빠르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활용해야겠다 싶어 적극적으로 달려든 거예요."

그가 트위터의 힘을 제대로 체감한 건 바로 지난 2010년 이집트 혁명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을 때였다. 당시 무바라크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이라크 민중들의 투쟁은 트위터를 타고 급속도로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광범위하게 형성된 반무바라크 여론에 결국 정권은 힘을 잃고 무너졌다.

"이집트 혁명을 보면서 '우리가 트위터를 선택한 건 정말 잘 한 일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걸 잘 활용하면 이명박 정부 1% 권력에 저항해 잘 싸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의 확신은 꽤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압도적인 승리를 한 것, 지난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기획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된 것,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압승을 한 각종 성과에 트위터를 비롯한 SNS가 일정 부분 기여한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당시 참패를 거듭한 한나라당이 저명한 SNS 전문가를 영입하겠다는 말까지 했을까.

"가벼워져라. 그럼 팔로워가 늘 것이다"

별다른 정보 없이 트위터에서 그를 접하는 이들은 그가 50대 중반에 들어선 중년의 남성이라는 사실을 쉽게 눈치 채지 못한다. 홍길동 캐리커쳐로 꾸며진 프로필 사진부터 시작해 50대의 감성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발랄하고 재기넘치는 트윗, 스마트폰이라는 기계에 매우 익숙한 것처럼 느껴지는 광범위한 활동량(이 부분에 있어선 직접 두 눈으로 빛의 속도로 키패드를 두드리는 손놀림을 확인했다), 때로는 가벼운 유머도. 그의 트위터를 가만히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파워트위터리안이 될 만한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파워트위터리안 고창규씨.

파워트위터리안 고창규씨.



그의 트위터는 정치적인 멘션으로 가득차 있지만, 전혀 무겁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치적 색깔이 뚜렷하면서도 간단명쾌한 멘션들은 사람들의 집중력을 높여주고, 동시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간 소통의 부담감도 줄여주기 때문에 관계를 맺는 데 용이한 역할을 한다.

"가능하다면 가벼워져라" 인기 트위터리안을 꿈꾸는 이들을 향한 그의 조언이다. 프로필 사진에 홍길동 캐리커쳐를 올려놓은 것도 그의 전략 중 하나다.

"늙은이 사진 떡 하니 걸어놓으면 '나 나이 많다. 꼰대다' 이런 티가 날까봐 일부러 홍길동 그림을 올려놨어요.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 나이 많은 티를 내면 소통에 장애가 될 수도 있어서 일부러 그렇게 해놨어요. 짧고 굵게, 어떨 땐 욕도 하고 그래야 소통이 되지 내 사진 걸어놓고 묵직한 글만 쓰면 상대방이 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소통이라는 건 이명박처럼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 맞춰주는 거거든요."

되도록 고민을 적게 하고, 감정 표현을 확실히 하는 것도 상대방의 호감을 얻는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머리 속에서 멋있게 글을 쓰려고 고민하면 머리털 다 빠져요. 그냥 편하고 과감하게 있느 그대로 글을 쓰면 사람들이 좋아해요. 감정표현 확실히 하는 것도 좋아요. 저는 요즘 '극분노'같은 표현을 많이 써요."

그는 또 트위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현장성'이라고 강조했다. 추상적인 표현이 가득한 멘션보다는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사실을 전해주는 멘션이 더 많은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SNS 자체가 힘을 발휘한다기 보다는 현장을 얼마나 빠르게 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FTA 집회 있을 때 현장 사진을 계속 뿌려요. 또 희망버스 할 때도 현장소식 전하는 데 주력했어요. 트친들이 그런 걸 좋아하고, 또 그런 행위를 통해 신뢰감이 쌓이죠. 현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잘 말해주니깐요."

"트위터는 사회 진보에 기여할 것"

2010년 지방선거,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2040 젊은 세대의 참여가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재보선에서는 20~40대 젊은층 투표율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2년 대선 다음으로 높았다. 2002년의 변화에 '오마이뉴스'와 같은 인터넷 언론의 역할이 컸다면,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탄생하는 과정에서는 트위터 등 SNS가 여론을 주도했다.

이 같은 현실을 최전선에서 직접 경험한 그는 정보의 확산, 진보적 대중의 증가, 사회 변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트위터와 같은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금 더 우리 사회가 진보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분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요. 우리가 스스로 정보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정보가 우리 삶이랑 직결된다는 걸 트위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느껴요. 몇번의 선거를 통해 그것을 확인했죠. 기존의 미디어가 전해주지 못한 정보를 보다 쉽게 접하는 것,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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