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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 효순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인터뷰]'광화문 할아버지' 이관복 씨

전지혜 기자 creamb@hanmail.net

입력 2012-06-12 21:11:58 l 수정 2012-06-12 23:08:31

'광화문 할아버지'로 불리는 이관복 씨의 모습이다

'광화문 할아버지'로 불리는 이관복 씨의 모습이다



올해 일흔아홉. 초등학교 3학년 때 8.15를 맞았다는 이관복 씨는 5·18 광주항쟁, 6·10항쟁 등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씨는 고향 충북 음성에서 국어선생님으로 재직하던 당시 교과서에 적힌 '유신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최대 체제'라는 말에 발끈해 항의했던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투쟁의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의 투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이다. 10년전 이씨는 故신효순·심미선양의 죽음에 분노하며 광화문 거리에 나섰다. 그는 촛불시위에 앞장서 무대에서 발언을 하기 시작하면서 '광화문 할아버지'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2002년 6월13일, 당시 조양중학교 2학년이던 故신효순·심미선 양은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소재 갓길에서 주한미군 미 보병 2사단 대대 전투력 훈련을 위해 이동 중이던 장갑차에 깔려 현장에서 숨졌다.

당시 이씨는 방송을 통해 효순, 미선양의 죽음을 알게 된 뒤 현장을 찾아 주한미군을 비판했다. 이 씨는 사태 해결보다 축소에 급급한 미군에 항의했고, 이후 의정부 일대 주한미군을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해 효순, 미선 양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집회에 참석해 투쟁하던 그는 그해 11월23일 효순, 미선 양을 죽인 주한미군의 무죄판결에 분노해 광화문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것이 2004년 6월13일까지 548일간 지속된 촛불 집회의 시작이었다.

"효순이 미선이가 남이 아니잖아요"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주한미군 판결문 요지가 공무중이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이었다"며 "미군 두 명은 일주일 후 본국으로 보내졌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광화문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이관복 씨의 모습이다

'광화문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이관복 씨의 모습이다

이씨는 "무죄판결 후 이틀 뒤 종로 2가에서 함께 시민들 서명을 받던 젊은이 4~5명과 '집회를 하자'고 말이 나왔다"며 "그날 바로 광화문으로 이동해 집회를 시작했다"고 정황을 밝혔다.

그는 "밤이니까 어두워서 초를 켰는데 바람을 막으려 컵과 유리병에 담아 불을 붙였다"며 "12월 들어서 5~6명이 촛불 집회를 하던것이 1월이 되자 1톤짜리 트럭에 실어온 초를 다 쓸 정도로 많은 이들이 모였다"고 2002년을 설명했다.

이씨는 "앞에 나가서 강연을 하는데 내가 '효순이 미선이가 남이 아니잖아요' 소리치면 수많은 사람이 따라 외쳤다"며 "앞으로 우리 동포의 털끝도 못 건드리게 하려면 미군의 버릇을 고쳐야 했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그렇게 촛불집회를 계속했고 토요일마다 큰 집회를 열었다"며 "2004년 2주기를 마치고 그제서야 '여기서 접자'는 말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또 "매일같이 촛불집회에 나가니까 친구 중 한명은 '그까짓 기집애 둘 죽었는데 뭐 하러 그렇게 하냐'고 말했다"며 "그 친구와는 인연을 끊었다. '니 딸이 그렇게 됐어도 그게 기지배냐'라고 한마디만 했다"고 일화를 전했다.

"미선·효순이의 죽음으로 한국사회는 상당히 변해..."

효순,미선 양의 2주기 행사에서 이관복 씨의 모습이다

효순,미선 양의 2주기 행사에서 이관복 씨의 모습이다



이씨는 "미선, 효순이의 죽음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며 "반미와 자주의 문제가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그해 대선 이슈까지 됐다"고 언급했다.

이어 "최근에는 SOFA 개정을 통해 신병인도 조항과 신병인도 대상을 12가지 중대범죄에서 전체 범죄로 확대하는 등 상당한 개정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변해서는 안된다"며 "미국과 국교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미군은 개정이 아니라 철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효순, 미선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효순,미선 양의 2주기 추모제에서 이관복 씨의 모습이다

효순,미선 양의 2주기 추모제에서 이관복 씨의 모습이다



이씨는 10년이 지났지만 6월13일 그날을 비롯해, 주한미군의 판결이 나던 날과 촛불집회를 시작하고 끝낸 날까지 정확한 날짜를 읊어가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故 효순, 미선 양을 떠올리면서 "지금쯤 대학원생이 됐을텐데"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씨는 "그들은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서 죽은 것"이라며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어 "효순이 미선이를 많은 사람이 잊어버린 것 같다"며 "효순, 미선이의 죽음은 기억하고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효순, 미선이를 지켜주지 못해 지금까지 미안하다"며 가슴에 품어왔던 미안함을 전한뒤 "천국에서 행복하여라"라고 짧은 바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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