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민주화 대장정, 피노체트 넘어서기
이동권 기자 su@vop.co.kr
입력 2012-06-29 08:40:03l수정 2012-06-29 09:11:37
1973년 9월 11일 오전, 현직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쿠데타 군이 대통령궁을 포위하고 상공에 전투기가 선회하는 가운데, 국영 라디오 방송을 통해 칠레 국민들에게 이 마지막 연설을 했다.
"이것이 내가 국민 여러분께 연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 나는 사임하지 않겠습니다. …… 민중의 가장 숭고한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조국의 이름으로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기 위해 저는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탄압으로도 범죄 행위로도 역사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래지 않아, 드넓은 가로수 길이 열려, 자유로운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그곳을 지나다니리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역사는 우리의 편입니다. 역사란 민중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 사령관들은 대통령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연이어 발표했다. 아옌데 대통령은 직원들을 청사 바깥으로 다 내보내고 홀로 총을 들고 저항하다 사망했고, 정권을 탈취한 군부에 의해 칠레 전역에서는 대량 살육이 벌어졌다.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며 죽어 간 아옌더 대통령은 한때 유엔본부에서 각국 대표들로부터 사상 유래가 없는 박수갈채를 받았고,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좌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정치가였다.
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는 곧 '시카고 보이들'을 불러들였다. 1960년대 밀턴 프리드먼이 자리 잡고 있던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한 30여 명의 이 엘리트 집단은 국가 개입을 철회하고 공공 서비스를 줄이고 예산을 삭감하는, 근본적으로 칠레를 신자유주의 경제 천국으로 만들어 나갔다. 국유화된 회사들은 민영화시켰고 노동법이 개정됐고 연금과 보건의료의 사유화가 진행됐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일본의 나카소네가 집권하면서 전 세계로 파급된 신자유주의는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 단위로는 첫 실험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칠레 정부는 태양 전력 시설을 건설할 수도 없고 개선된 전력 배전망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민간 회사와 경쟁하게 될지도 모르는 분야는 어디든지 정부가 사업을 하는 게 불법이기 때문이다.
피노체트 장군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1992년까지 17년 동안 칠레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했다. 그 사이 수천 명이 학살되고 실종되었으며 고문과 투옥, 망명으로 칠레는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하는 국가로, 피노체트는 독재의 대명사가 되었다. 권력에서 쫓겨나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런던 경찰에 체포돼 본국으로 인도됐으나, 고령으로 처벌받지 않은 채 병으로 숨졌다.
1973년 9.11, 그리고 아옌데, 피노체트, 라고스로 이어지는 칠레 민주화 대장정을 기록한 책, '피노체트 넘어서기'가 출간됐다.
이 책은 칠레 국민들이 억눌려 온 두려움을 몰아냄으로써 피노체트 독재를 끝장내고 민주주의 칠레를 건설한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피노체트의 공포 정치 속에서 방송사고 한 건이 발생했다. 이 '준비된 드라마'의 주인공은 리카르도 라고스. 그는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1988년 4월 25일 피노체트가 장기 집권을 위해 국민투표를 제안한 뒤 처음 열린 국영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라고스는 인터뷰 도중에 방송 카메라를 향해 갑자기 피노체트를 손가락으로 직접 겨누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피노체트 장군! 당신은 또다시 8년 동안이나 이 나라가 …… 고문과 암살, 인권유린을 겪도록 하려는 심사로군요. …… 특정 칠레인 한 사람이 25년 동안이나 권좌에 머물기 위해 이토록 뻔뻔스럽게 야망을 품는 것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 결코 그 누구도 그런 야심을 품은 적이 없지요. 당신은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이후 라고스는 독재자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고 표적이 됐지만, 피노체트 반대 세력이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중도좌파연합을 형성해 국민투표로 정권을 교체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칠레 중도좌파연합은 '콘세르타시온'(Concertacion)이다.
라고스는 콘세르타시온이 집권한 두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과 공공사업부 장관으로 일하며, 교육개혁과 공공 사회기반 시설 확충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2000년에는 드디어 콘세르타시온 후보로 우파의 호아킨 라빈을 꺾고 살바도르 아옌데 이후 사회주의자로서 30년 만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것이 내가 국민 여러분께 연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 나는 사임하지 않겠습니다. …… 민중의 가장 숭고한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조국의 이름으로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기 위해 저는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탄압으로도 범죄 행위로도 역사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래지 않아, 드넓은 가로수 길이 열려, 자유로운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그곳을 지나다니리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역사는 우리의 편입니다. 역사란 민중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 사령관들은 대통령에게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연이어 발표했다. 아옌데 대통령은 직원들을 청사 바깥으로 다 내보내고 홀로 총을 들고 저항하다 사망했고, 정권을 탈취한 군부에 의해 칠레 전역에서는 대량 살육이 벌어졌다.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며 죽어 간 아옌더 대통령은 한때 유엔본부에서 각국 대표들로부터 사상 유래가 없는 박수갈채를 받았고,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 좌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정치가였다.
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는 곧 '시카고 보이들'을 불러들였다. 1960년대 밀턴 프리드먼이 자리 잡고 있던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한 30여 명의 이 엘리트 집단은 국가 개입을 철회하고 공공 서비스를 줄이고 예산을 삭감하는, 근본적으로 칠레를 신자유주의 경제 천국으로 만들어 나갔다. 국유화된 회사들은 민영화시켰고 노동법이 개정됐고 연금과 보건의료의 사유화가 진행됐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일본의 나카소네가 집권하면서 전 세계로 파급된 신자유주의는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 단위로는 첫 실험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칠레 정부는 태양 전력 시설을 건설할 수도 없고 개선된 전력 배전망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민간 회사와 경쟁하게 될지도 모르는 분야는 어디든지 정부가 사업을 하는 게 불법이기 때문이다.
피노체트 장군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1992년까지 17년 동안 칠레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했다. 그 사이 수천 명이 학살되고 실종되었으며 고문과 투옥, 망명으로 칠레는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하는 국가로, 피노체트는 독재의 대명사가 되었다. 권력에서 쫓겨나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런던 경찰에 체포돼 본국으로 인도됐으나, 고령으로 처벌받지 않은 채 병으로 숨졌다.
피노체트 넘어서기ⓒ민중의소리
'); }1973년 9.11, 그리고 아옌데, 피노체트, 라고스로 이어지는 칠레 민주화 대장정을 기록한 책, '피노체트 넘어서기'가 출간됐다.
이 책은 칠레 국민들이 억눌려 온 두려움을 몰아냄으로써 피노체트 독재를 끝장내고 민주주의 칠레를 건설한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피노체트의 공포 정치 속에서 방송사고 한 건이 발생했다. 이 '준비된 드라마'의 주인공은 리카르도 라고스. 그는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1988년 4월 25일 피노체트가 장기 집권을 위해 국민투표를 제안한 뒤 처음 열린 국영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라고스는 인터뷰 도중에 방송 카메라를 향해 갑자기 피노체트를 손가락으로 직접 겨누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피노체트 장군! 당신은 또다시 8년 동안이나 이 나라가 …… 고문과 암살, 인권유린을 겪도록 하려는 심사로군요. …… 특정 칠레인 한 사람이 25년 동안이나 권좌에 머물기 위해 이토록 뻔뻔스럽게 야망을 품는 것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 결코 그 누구도 그런 야심을 품은 적이 없지요. 당신은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이후 라고스는 독재자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고 표적이 됐지만, 피노체트 반대 세력이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중도좌파연합을 형성해 국민투표로 정권을 교체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칠레 중도좌파연합은 '콘세르타시온'(Concertacion)이다.
라고스는 콘세르타시온이 집권한 두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과 공공사업부 장관으로 일하며, 교육개혁과 공공 사회기반 시설 확충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2000년에는 드디어 콘세르타시온 후보로 우파의 호아킨 라빈을 꺾고 살바도르 아옌데 이후 사회주의자로서 30년 만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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