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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은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

[김갑수의 통합진보당 사태 다시보기 ①] 연재를 시작하며

김갑수(정치평론가)

입력 2012-09-23 12:44:39 l 수정 2012-09-24 08:03:40

우리가 알고 있듯이 4·11 총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통합진보당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난과 공격’이 가해졌다. 그것은 아무리 양보해 보아도 한 정치집단에 대한 정상적인 비판의 수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 맹렬하고도 무차별적인 공세에는 여와 야, 보수매체와 진보매체 그리고 지식인과 일반시민의 구분이 없어 보였다. 지난 5개월 남짓 대한민국 사회는 가히 ‘올코트프레싱’으로 통합진보당 죽이기에 나선 것 같은 양상이 전개된 것이다.

이에 따라 다수 국민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실망감을 새로 가지게 되었다. 통합진보당은 더 이상 재기할 싹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태를 관망해오던 일각에서는 일개 소수 정당에 가해진 비난과 공격치고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았는가 하는 성찰도 하게 되었다. 다른 이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진보를 표방하는 지식인과 제 발로 통합진보당에 들어갔던 정치인들의 비난과 공격이 오히려 더 집요하고 표독스러웠던 점은 못내 수상쩍은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생겨나게 되었다.

통합진보당은 순수한가, 그들을 공격하는 이들은 부도덕한가

김갑수

김갑수 칼럼니스트

1988년 10월, 시대적 인권변호사 조영래는 ‘장기표는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노태우 정부에서 실시한 양심수 석방에 유독 장기표만 빠진 것에 대해 항의한 글이었다. 이 글에서 조영래는 장기표에게 죄가 있다면 ‘남보다 심성이 순수하고 남보다 치열한 역사의식을 가진 것’이라고 하면서 장기표의 조속한 석방을 준엄하게 촉구했다.

내 글의 제목을 조영래의 칼럼을 인유, ‘통합진보당은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로 삼은 것은 통합진보당이 당시의 장기표처럼 심성이 순수하거나 역사의식이 치열하다고 보기 때문은 아니다. 또한 통합진보당을 비난·공격하는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가 노태우정권만큼 부도덕하다고 보기 때문도 아니다. 통합진보당은 장기표보다 얼마든지 덜 순수하거나 더 순수할 수 있으며, 장기표보다 역사의식이 덜 치열하거나 더 치열할 수도 있다. 아울러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노태우정권보다 덜 부도덕하거나 더 부도덕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과거 장기표에게 7년 징역살이를 시키려 한 노태우 정권이나 작금 통합진보당을 비난· 공격하는 대한민국 사회나 둘 다 ‘정상은 아니다’라는 점을 주장하고 싶을 따름이다.

통합진보당, 아닌 게 아니라 죄가 많기는 하다

먼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같은 거대정당은 당 지도부에서 국회의원 비례대표를 선발했는데 소수정당인 통합진보당은 감히 당원투표로 선발하는 죄를 범한 것이다. 또한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은 자본주의 정당답게 공천 매매를 하기도 했는데 사회주의 성향의 통합진보당은 돈 안 드는 온라인선거를 감행한 것이 죄였다.

통합진보당은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 아닌 게 아니라 죄가 많다. 새누리당은 박근혜를 84%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시키면서 경쟁자 김문수에게는 8.7%밖에 주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도 박근혜에게 ‘패권주의’라고 치받지 않았고, 어느 언론도 패권주의라는 용어로 새누리당 경선을 문제 삼지 않았다. 문재인을 57% 지지로 당선시킨 민주당은 경쟁자 손학규에게는 22%밖에 주지 않았다. 더러 ‘친노패권주의’라는 말이 나왔지만 패자의 불평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죄를 범했다. 그들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당권파 이석기와 청년 대표 김재연 외에 다른 후보에게도 골고루 표를 주어 농민회, 전교조, 녹색연합, 참여연대 출신도 당선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은 큰 죄를 짓고 말았다. 유시민의 참여계를 빼먹은 것이었다. 사실은 정당투표가 10%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치 못한 것이 죄라면 죄일 수도 있겠다.

통합진보당이 더 큰 죄를 저질렀다면, 당원들이 뽑은 국회의원을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사퇴시키려 하자 극구 반발한 것이다. 그리고 이의가 있다고 하는데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려 하자 욱 하는 마음에 완력으로 저지해 보려고 한 것이 또한 죄였다. 정신없이 밀고 당기다 보니 머리끄덩이를 잡은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었다. 조준호가 디스크 환자였다는 것을 몰랐다는 점도 선뜻 용서받기 어려운 죄였다. 유시민과 심상정이 둘 다 50대 중반이고, 심상정이 5개월 연상이기 때문에 설마 그들이 그 날 오빠·동생이 되어 보기로 합의해 놓은 줄을 몰랐던 것도 죄라면 죄일 수 있다. 새누리당 경선에서 박근혜 측이 김문수의 멱살을 잡은 것은 귀여운 에피소드가 되지만 자기들이 머리끄덩이를 잡으면 천인공노할 테러가 된다는 것을 몰랐다면 그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죄가 되는 것이었다.

만장일치 처리에 분노한 당원들

12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제1차 중앙위원회에서 대표단이 강령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려 하자 당원들이 중앙위원 명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단상에 올라 항의하고 있다.



‘비난과 공격’을 넘어선 ‘증오와 저주’

앞에서 나는 통합진보당이 대한민국 사회로부터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사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비난과 공격’보다 더한 ‘증오와 저주’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2008년 분당 때부터 있었던 일이다. 홍세화는 당시 민노당을 향해 ‘사교집단’이라고 증오했고, 진중권은 북한과 민노당을 향해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라고 저주하지 않았던가? 오늘의 2012년은 2008년의 확장, 반복일 뿐임을 알았으면 한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한 비판 발언들


- 북한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 대표부를 우리 국회 안에 파견한 격이 됐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종북주의자의 공식적인 원내 진출이 이뤄졌다.
(한국외국어대 김지영 외래교수)
- 당내 패권세력이 다시는 정치에 입문할 수 없게 하도록 문제의 씨앗에 불을 지를 것이다.
(부산 금정구 참여계 의원 이청호)
- 당이 국민들에게 사망 선고를 받은 정도가 아니고 (사형이) 집행된 거나 다름없다는 공통 인식이 있다.... 이 당은 국민들에게 해로운 당이 됐다. (유시민)
-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의 대선 출마는 이석기 의원의 오더가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다. (강동원)
- 자기정파의 승리를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우습게 보는 의식과 행태, 기가 막힌다. (조국)
- 이제 추태는 그만 부렸으면 한다. 무릎 꿇고 사과하고 눈물 흘리며 반성해도 시원찮을 판에, ‘언닌, 평양스타일’ 신나게 말춤이나 추고 있으니 정신병동을 보는 것 같다. (진중권)
- 통진당 사태는 주사파와 관련이 있다. 케케묵은 선전 선동을 ‘진보’란 용어를 쓰며 국민을 속이려 한다. (박홍)
-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떠올렸다. (이회창)
-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는 무슨 염치로 대선에 나오려는 것인가. 국고보조금 30억 원을 노린다면 이정희 추방운동이 벌어질 것이다. (새누리당 논평)
- 통합진보당과의 선거연합연대는 지금으로서는 어려울 것 같다.(문재인)
- 이정희는 대선 출마에 앞서 정파 변호사부터 그만 두어야 한다.(심상정)
- 이정희의 대선 출마는 당원과 국민에 대한 모욕이자 능멸이다. (노회찬)


이처럼 그들은 (입 달린 사람은 누구나 한 마디는 했을 성싶도록) 통합진보당을 증오하고 저주했다. 정말 통합진보당은 그토록 죄가 많은 것일까?

통합진보당 혁신모임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신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혁신모임에서 조준호 전 공동대표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씻을 수 없는 죄는 무엇인가

당연히 죄가 많다. 통합진보당은 한·경·오·프 같은 진보매체가 자기들의 우군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 죄였다. 그들이 얼마나 정파적이고 속물적이며 동시에 얼마나 저돌적이고 지역 편향적인지를 알지 못했다면 그것은 죄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서울대 출신이 가장 적은 정치 집단인 데다 강남에 사는 당원도 거의 없는 주제에 자기들보다 더 가난한 북한을 두둔할 경우 이 사회가 자기들을 얼마나 냉혹하게 왕따 시킬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죄를 범했다.

통합진보당은 유심노가 자기들을 내심 깔보고 있으며 이용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려 하지 않은 죄를 범했다. 그래서 참여당이 8억의 부채를 안고 들어 왔을 때 채무에 관한 공증조차 받아 놓지 않는 죄를 범했다. 나아가 유심노를 신뢰한 나머지 심과 노를 지역구에서 당선시키려고 마지막까지 분투하여 성공시킨 것도 죄였다. 그들은 비례 12번인 유까지 당선시키려고 열정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여력이 미치지 못한 것이 또 하나의 죄였다. 하지만 나름대로 할 바는 했노라고 자부심을 가진 것 역시 죄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유심노가 총선 후 왜 그렇게 돌변하는지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죄인은 단연 박영재였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의 죄는 유심노를 의심하지 않은 데에 있었다. 그는 자기의 죽음이 유심노를 회심시킬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가지고 떠났다. 그래서 그는 결국 남은 자들의 폐부에 피멍을 남기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물론 그가 죽음을 선택하도록 방치한 통합진보당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큰 죄를 지었다. 그 죄는 영영 씻기려야 씻길 수가 없을 것 같다.

* 김갑수의 통합진보당 사태 다시보기는 앞으로 5~6회 연재될 예정입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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