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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진, "내가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느꼈다"

[인터뷰] 영화 '나쁜피' 강효진 감독

현석훈 기자 radio@vop.co.kr

입력 2012-10-24 21:38:32 l 수정 2012-10-25 00:36:38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차이를 구분짓는 일은 대중가요와 민중가요를 구분하는 것 처럼 무의미한 일이다. 영화는 영화, 음악은 음악일진데 사람들은 그 경계를 가르고 구분짓고 분류하는 것을 좋아한다. 메이저와 마이너, 오버와 인디 혹은 언더그라운드, 지상파와 케이블 등등. NLL처럼 임의로 그은 선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굳이 선을 긋는다. '우리와 너는 다르다'는, 참 불편한 가진자들의 계급성이다. 영화의 품질과 내용을 제작비로 구분짓는 편한 방식이기도 하다.

'펀치레이디'(2007), '육혈포강도단'(2010)을 연출한 강효진 감독이 차기작 '나쁜피'를 들고 스크린을 다시 찾았다. 19일 시사회에서 만난 영화 '나쁜피'는 파격적인 소재를 현실감있게 그린 수작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잔혹한 성범죄가 매스컴을 장식하는 사회에 대해, 삐뚤어진 남성들의 욕망에 대해 감독은 쉼 없이 직구를 뿌려댔다. 돌려말하지 않고 볼 카운트 없이 몸쪽 꽉 찬 돌직구를.

상업영화의 편한(?) 길을 두고 왜 굳이 자비를 들여가며 영화를 제작했을까. 강효진 감독은 "누구도 나서서 말하지 않는 성범죄에 대해, 쾌락이 빚어낸 끔찍한 결과물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제작 동기를 설명했다. 강간, 성폭행, 복수... 이런 불편한 소재에 제작자가 나설리 없다.

우연히 촬영감독과 함께 한 술자리가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촬영감독은 강 감독에게 "초심으로 돌아가서 뭔가 만들어보자"고 은밀히 다독였고, 감독은 오랫만에 찾아온 반가운 설렘을 놓치기 싫어 시나리오를 썼다. 재원 마련도, 배우 캐스팅도 오롯이 그의 몫이었지만 숱하게 '엎어질 뻔'한 영화를 기어이 완성했다. 다행히 제작비로 삼겹살을 먹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물론 감독 혼자의 노력으로 완성된 영화는 아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아침, 점심, 저녁, 야참, 분장, 의상, 특수분장을 도맡아 해준 분장팀장이 있고, 촬영 도중 사고로 팔이 부러진 촬영감독이 있다. 여려운 역할을 맡아 열연해준 배우들의 노력이 있고, 어려운 영화의 배급을 맡아준 배급사의 역할도 크다. 촬영감독과 강 감독의 '설렘'이 여러 사람에게 행복한 바이러스를 퍼뜨린 셈이다. 현장은 늘 사람을 살아있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

강효진 감독

영화 '나쁜 피' 강효진 감독.


시사회가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는데 관객이 많아서 의외였다.

사실은 좀 놀랐다. 좌석이 215개 였는데, 100명 정도 예상했었다. 그런데 거의 90% 가까이 찼다. 늦게 오신 분들은 뒤에서 서서 보시기도 하더라. 독립영화라 극장도 잘 안잡히는 어려움은 있다. 무명배우들만 나왔고, 저도 스타 감독은 아니라 걱정은 좀 된다.

11월1일 개봉인데, 스크린은 20개가 좀 안될 것 같다. 아무래도 무거운 소재다 보니 일부 멀티플렉스에서 어려워 하더라. 좀 많이 어려운 상황이긴 하다.

제작비도 스스로 마련하셨다던데. 어려움이 많으셨겠다.

사비로 마련했다. 펀드 깨고, 적금 깨고, 대부분 카드 빚으로 해결했다. 농담으로 파산 직전이라고 말했는데 제작비가 늘어나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주위에서 상업영화로 만들라고 많이 조언했는데 이렇게 됐다.(웃음)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 번 자유롭게 찍어보자 했는데 무모한 도전이 된 셈이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 아무리 제작비를 아낀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있다.

감독이 사재를 털어 영화를 제작하는건... 해서는 안되는 일, '금기'와 비슷한 일 아닌가?

사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내가 이바닥에 올 줄 모르고 어머니께서 말씀을 참 많이 하셨다. 영화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어버니 연배에서 영화에 투자해서 잘못된 집안들 얘기나 심지어 영화가 망해 자살했던 이야기나 이런 말씀들을 많이 들려주셨다.

내 블로그에도 썼는데 어머니께서는 '너는 그러지 말아라', '넌 영화 한 편으로 끝날 수도 있다', '절대 늬 돈을 써서 영화를 만들지 말아라' 등등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런데 왜? 말릴때는 다 이유가 있지 않나.

촬영감독과 술 한잔 먹고 생각해보니까. 독립영화 '맨손으로 죽여라?'(2004) 를 찍을때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무척 힘들었다. 하루 반 정도를 안자고 40시간 내내 촬영하기도 했었으니까. 너무 힘들었는데 스텝과 배우들과 느끼는 어떤 끈끈함이 있다. 일종의 영화에 대한 유대감이랄까.

상업영화는 아무래도 자본의 논리에 제가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 스토리 부터 시작해서 촬영도 미리 약속된 것을 그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요즘 감독과 제작사 사이의 갈등으로 감독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짜여진 틀을 벗어날 수 없으니 답답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시놉시스 가지고 친구가 저를 자극하는 바람에 피가 끓더라. (영화)병 인가봐. 집안 형편이나 저나 절대 하면 안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찍게 됐다. 제작비가 예상보다 서너배 가량 불어나니까 미쳤냐는 얘기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물론 큰일난다는 얘기도.

상업영화 둘 찍고 '육혈포 강도단'이 비교적 잘 된 편이라 영화 제의도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찍게 됐다. 주변에서 그 고생하고 좀 잘 되려는데 왜 또 늬 돈 들이면서 독립영화 찍냐고 성화가 대단하다. 지금도 그런말 듣는다. 이번에는 도와주겠는데 감독님 다시는 이러지 말라고, 미친짓이라고. 2년 내내 그 얘기를 너무 많이 들은 것 같다.

강효진 감독

영화 '나쁜 피' 강효진 감독

부인께서는 어떠셨나. 쌍수들고 반대하셨을 것 같은데

제 처가 너무 좋아하더라. 사실 영화를 진행하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 포기했었다. 그런데 제작비 통장을 따로 만들어서 도장과 함께 주더라. 이걸로 영화 만들라고 하면서. 영화가 완성됐을때 가장 좋아했던게 부인이고, 지금도 제일 좋아한다.

의외다.

나도 의외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일 줄 몰랐다. 나는 감독이니까 영화를 찍긴 해야겠는데...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게 될지 함부러 말을 잘 못하겠더라. 다신 이런짓 안한다? 모르죠 뭐 또. 허허허.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이런말하기 좀 그렇긴 한데 한 달 카드빚이 장난아니다. 영화만 안찍었어도 지금 이렇게 어렵진 않았을텐데 왜 그랬을까. 개봉 일주일 남겨둔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 너무 좋은 영화이고, 자랑스러운 영화인데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배울게 많은 사람이다.

배급사도 무척 고맙다. 알려진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도 아닌 마당에 결정을 해 주셔서 놀랍고, 너무 감사하다. 보통은 개봉 못 하는게 맞다. 배급사 대표님들께서 어려운 결정을 해주셨다. '손해보더라도 가자'고 하셨다더라. 너무 감동적이고, 죄송스럽기도 하다. 모두 내 부채다.

홍보팀이나 다른 팀들도 영화를 좋게 보셔서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이다. 저도 만일 돈 생각하고 영악하게 했으면 극장도 잘 잡혔을테고 이슈도 됐을텐데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이건 좀 말이 안되긴 하지만 잘 알려진 배우들과 작업을 하면 좀 쉽게 문제를 풀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무명인 배우가 리얼리티가 살아나는 영화다. 아무래도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은 관객들이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다다가기 어렵다. 주변에서 실제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감을 위해 무명배우와 작업을 해야 했다. 인지도가 좀 있는 배우가 '하고싶다'는 연락이 오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풀고싶지 않았다. 물론 '미쳤냐'는 소리를 또 듣긴 했다. (웃음)

'성폭행'이라는 소재가 다루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범죄의 형량을 높이는 것 보다 이 영화를 한 편 보는게 훨씬 성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맞다. 제작부터 돌려서 말할 내용이 아니라 정공법으로 치고 가자고 생각했다. 너무 직구를 던졌나 생각도 든다. 특히 이 영화를 대학생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남성들 같은 경우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서 처음 성을 접하게 되니까. 영화를 보고 성에 대해 단순히 욕망이나 욕구만 해결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제가 한 가지 부탁드린게 대학생들 중심으로 한 시사회를 잡아달라고 말씀드렸다. 20대 친구들과 영화 끝나고 얘기도 하고 싶고 토론도 해보고 싶다. 사실 저희는 제대로된 성교육을 못받지 않았나. 남자 선생님들은 오히려 음담폐설 비슷하게 하는 경우도 많았고, 성교육이라면 수정과 착상만 가르쳐주고 해부도만 보여주는데 그것을 성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나.

제작도 그렇지만 여주인공을 섭외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기획사에 있는 분들은 절대 안한다 하고. 상업영화 들어갈 때 출연시켜 준다는 각서를 써주면 출연하겠다는 분도 있었고... 연기가 되면 노출이 어렵고, 노출이 가능하면 연기가 안되고. 윤주를 못만났다면 아마 포기했을 것 같다. 제작 자체가 안됐을거다. 윤주가 인선의 마음을 알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이 배역은 자기것이라 생각한다고.

영화를 촬영하면서 무척 놀랐다. (윤주는)획일적인 성형미인과 좀 다른 느낌이다. 소녀적인 느낌도 있고 목소리 톤도 중성적이고. 영화의 캐릭터와 잘 맞았던 것 같다. 너무 여성스러우면 특히 남성들이 기대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정말 조심해야 했다.

불편한 노출신이라 스스로 경계도 많이 했다.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스스로 복수를 위해 선택한 타락에 안쓰럽고 불편한 느낌을 줘야 하는데. 잘못하면 엉뚱한 기대를 줘버릴 수 있어서 고민이 많았다. 잘못하면 애로영화가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영화 '나쁜피'에서 인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윤주

영화 '나쁜피'에서 인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윤주


생부 역을 말은 임대일씨도 캐릭터와 일상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는데

연극과 영화가 좀 달라서 서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연기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캐릭터를 정말 잘 살리셨다. 나중에는 자기 연기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고, 가장 많이 배웠던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시더라. 무척 고생을 많이 하셨다.

감독이 너무 집요한건 아닌가?

촬영 들어가기 전에 동선과 이미 약속된 앵글이 있으니까 연기 말고는 특별히 감독이 신경쓸게 많지 않다. 물론 조명이나 여러가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순발력으로 바꾸는 경우는 있지만.

영화는 보통 비주얼을 중요하게 여기는 면이 있다. 사실 나는 비주얼보다 연기가 잘 된 그림을 택한다. 이번 작품은 특히 드라마였고, 관객들은 극에 몰입해야 하니까. 비주얼 때문에 관객들이 최고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래서 연기와 감정표현에 집중을 많이 하는 편이다.

사실 시사회 할 때 죽고싶은 장면이 있다. 몇 번 뛰쳐나가고 싶었는데 참았다. 짧은 시간에 제작해야 하는 영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내가 타협했던 장면들이 보이는거다. 하루 두 세시간 자면서 찍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정이 올라가지 않았던 장면들이 있다. 그때 타협했던 컷들이 참 저를 미치게 만든다.

그래도 관객분들 보실만큼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촬영은 얼마나 진행했나?

강화도에서 9일 살면서 촬영하고 로케로 1회차를 찍었다. 독립영화라 시간도 넉넉하지 않고. 스텝들에게 아예 먹고 자자고 했다. 촬영 없는 사람은 좀 쉬고 있고 분량 없으면 한 숨 자고 내려오고. 그렇게 촬영했다. 힘들었는데 먹는건 잘 먹었다.

제가 '맨손으로 죽여라?'를 처음 만들때 부터 영화를 함께 한 영화적 동지인 '박팀장'님이 계신데. 음식을 아침, 점심, 저녁, 야참을 만들고 헤어, 의상, 분장, 특수분장까지 도맡아 해주셨다. 거의 잠도 못 주무셨다. 나중에 잘 되면 보답을 하긴 해야 할텐데.(웃음) 거의 슈퍼우먼이셨다. 지금은 특수분장을 공부하러 유학을 가셨지만.

유독 긴 호흡의 장면이 많았던 것 같다. 배우들이나 스텝들이 무척 힘들었을 것 같은데.

사실 나는 단타로 치고가는 느낌을 좋아해서 짧은컷을 선호하는 편인데. 영화 성격상 감정들을 조급하지 않고 길게 천천히 감정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마 5분 넘는 롱테이크 원씬원컷이 10여개 될 것 같다.

롱테이크는 힘들다. 촬영감독도 배우들도 힘든 작업이다. 스무번 이상 엔지가 났던 경우도 있다. 리허설도 많이 해야하고 영화 기술적으로 버거운 작업이다. 카메라가 동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엉뚱한 곳에서 스텝이 카메라에 걸리기도 하고... 말도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 찍기 전부터 길게 보여주며 감정의 흐름을 담아보자 마음먹고 촬영에 들어갔었다.

결국 촬영감독이 기절하기도 하고. 카메라를 너무 오래 들고 있어서 카메라와 손을 미이라처럼 꽁꽁 묶어 촬영하기도 했다. 카메라를 내려놓으면 손을 벌벌 떨기도 하고. 그러다 로케촬영때 팔꿈치가 부러져서 불구가 될 뻔 했다. 자칫 촬영감독 수명이 끝날 뻔 했다.

사실 나도 힘들어서 끊어가고 싶긴 했는데. 촬영감독이 죽어도 싫다는거다. '형, 나도 해보고 싶었어. 이 때 아니면 못해. 힘든건 힘든건데 언제 찍어보냐'고 말하더라. 3시간~5시간 동안 한번에 간 적도 있는데. 포기한 컷은 하나도 없다. 촬영감독이 자기가 끊어가지 못하겠다는데 어쩌겠나. 독립영화니까 가능한 일이다. 스텝의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강효진 감독

영화 '나쁜 피' 강효진 감독


베드신 촬영은 어땠나. 엄청난 부담을 토로하시던데.

아. 무척 힘들었다. 너무 부담됐고. 윤주도 겁을 많이 먹더라. 좀 더 강하게 갈까. 부드럽게 갈까 생각도 고민도 많이 했었다. 대충 동선은 맞췄는데 어떤 감정으로 갈지 현장에서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있더라. 리허설때는 힘 빼지 말고 동선만 맞춰보고 감정이나 대사는 순서만 맞춰봤는데.

첫 신을 찍고 나니까 펑펑 울더라. 왜 그랬냐 물어봤더니 진짜 무서웠다고. 정말 말할 수 없는 공포 때문에 너무 무서웠고 죽는줄 알았다 하더라. 영화를 보면 정말 완력으로 남자가 바닥에 눕히고 움직이지 못하게 손을 붙들고 입을 가리고 그러지 않나. 연출된 상황인데도 감정을 몰입하니 진짜 처럼 느껴졌다고. 한참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더라.

더 강하게 나갔다면 정말 배우에게도 안좋지 않았을까 싶다. 컷 자체도 꽤 긴 편이고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한 길이어서 관객들이 보시기에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나도 주인공 감정에 몰입해야 하니까 무척 고통스러웠다. 강간신은 너무 고통스러워 신경안정제를 먹었는데 부작용 때문에 동공풀리고 속 뒤집어지고 머리는 무거워 고개를 들기도 어렵고. 여배우는 울고. 휴. 힘들었다.

그런데 촬영감독이 제대로 더 가야 한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무리 현장이라도 너무 비인간적인건 싫었다. 더 쎈 것을 찍으면 아마 나도 그것을 썼을것 같은데, 그럴까봐 더 진행하지 않았다. 원치 않게 관객에게 또다른 자극을 줄 수도 있고.

심지어 노출신을 빼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윤주에게도 내가 빼자고 말했었다고 하더라. 그러면 복수에 대한 의지가 보이지 않겠더라. 배우도 뭔가 던지지 않으면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다 판단하더라.

관객들 반응은 어떤가? 남성 여성 판단이 좀 다를것 같은데

남성들은 많이 공감하고 좋아하는 편이다. 좀 묘한 느낌이 드는데. 무절제한 남성의 본능을 비판하는 영화인데 의외로 남성들이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거부감을 표현하시는 분도 있다. 공감하지만 공포가 있는거지.

내가 남자 감독이기 때문에 여성이 가지는 느낌에 대해 섬세한 표현을 하지 못한것도 있다. 가장 큰 것은 공감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불안해한다. 실제 시사회에서 보면 인선이가 느끼는 공포감을 가진다. 공포감을 현실화시킨 영화다 보니 너무 공감해서 오히려 불편한 경우. 이런게 갈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통적인 것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공감한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밤거리 걸어가도 기분 좋을 때가 있지 않나.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표현하기 좀 어려운데. 강간범을 아버지나 생부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논점이 생길 수 있을것 같다. 사람에 따라 판단은 다르겠지만 감독의 메시지는 어떤것인가?

고민이 된다. 과연 강간범도 아버지일까. 만약 죄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된다면 아버지라고 해야 할까. 자격은 있을까.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직은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이미지는 있는 것 같다. 태어나게 한, 씨를 준 아버지에 대한 관점같은.

영등위에서 여자애가 생부를 죽이는 것에 대해서 '패륜을 암시한다'고 하더라. 생부, 아버지로 본 거지. 혈육이라면 부모, 아버지로 인정한다는 것인데. 나는 범죄로 일어난 혈연관계는 결코 가족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것을 부모자식 사이로 인정해 버리면 인간 사회에서 도덕과 윤리가 왜 필요한가? 사실 의외로 아버지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에 좀 놀라기도 했다. 좀 다른 비유이긴 하지만 정자은행에 정자를 기증했다고 치면, 그것도 아버지라고 볼 수 있나? 돈을 받고 판건데?

이런 부분도 남성과 여성에 차이가 조금 있는것 같다. 내 후배들이나 누나들 같은 경우에는 남자들은 그 공포를 모른다고 말한다. 범죄로 맺어진 끔찍한 관계는 부녀사이가 될 수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라고 한다. 반면 한 후배는 생부가 딸에게 절규하는 장면에서 '저게 진짜 아버지다'면서 펑펑 울었다더라. 부성애가 정말 아름답지 않느냐 하면서. 물론 보는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소 의외였다.

개봉조차 쉽지 않았을 만큼 어려운 작업을 했다. 소해가 남다를 것 같다.

후회도 많고. 느낀것도 많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처음 느꼈다. 상업현장은 오늘 찍을거 빨리 찍고, 함께 작업하시는 분들도 바쁘신 분들이라 함께 타협하고 시간에 맞춰야 하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그런데 순수하게 영화를 좋아하니 이런 영화도 만드는구나 생각이 들더라.

상업현장은 중요한 신에 대해 투자자나 저 같은 감독이나 배우분들과 의견이 갈릴때가 있다. 그 안에서 타협하거나 설득 작업이 이뤄지면 아무래도 기계적으로 일하게 된다. 영화를 상업적으로 대하게 된다고나 할까. 이번에 무척 순수한 작업을 했다. 열정이 넘치는 스텝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지만.

재미있는게, 이젠 상업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졌다. 모든게 갖춰져 있는, 당연시 되던 부분이 당연한게 아닌걸 다시 느낀거지. 연출만 하라고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상황인지 새삼 느꼈다. 너무 고맙더라. 내년 봄 크랭크인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열심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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