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대통령 취임식 단상 : 박시후와 조웅, 그리고 음모론

최영일 문화평론가
입력 2013-02-25 14:59:52l수정 2013-07-30 10:16:49
이 글을 쓰는 지금 세계에서 열여덟 번째 여성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막 끝났다. 이제 퍼레이드를 거쳐 광화문 광장에서 취임 축하행사가 있고 오후 4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축하행사, 저녁 7시 외빈들과 청와대 영빈관 만찬을 끝으로 취임 첫 날의 공식 일정이 마감된다. 이미 군통수권은 지난 자정 전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박근혜 대통령에게 인수인계 되었으며 보신각에서 59회 타종으로 새로운 대통령의 임기 시작을 알린 바 있다.

때마침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제85회 아카데미상 수상식이 열리고 있는데 작품상 소식은 아직 들려오지 않았다. (이 칼럼이 게재된 시점 독자 여러분은 알고 계시리라.)

하지만 '녹색창' 실시간 검색어에 '앤 헤서웨'이라는 외국 여배우 이름이 뜨는 순간 취임식을 모니터링 하던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아,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로 수상했나보다,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삭발 연기를 감행한 그녀가 공장 여공에서 거리의 창녀라는 삶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져 구슬피 부르던 노래, 'I dreamed a dream'의 가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레미제라블' 원작에서 코제트의 미혼모인 판틴은 구슬을 만드는 공장의 여공이었지만 영화 속 공장 장면은 왠지 방직공작의 느낌이었다.

영화 '레미제라블' 중 앤 해서웨이

영화 '레미제라블' 중 앤 해서웨이ⓒ'레미제라블' 스틸컷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산업화 과정은 초기에는 섬유 및 방직산업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도모했던 터라 방직공장 여공의 모습은 우리나라 산업화에서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노동3권 보장을 울부짖으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야 했던 노동자 전태일 또한 청계천 피복공장 '시다' 출신이기도 하다.

식전행사에서 가수 장윤정이 '노오란 샤쓰 입은~'을 부를 때 백댄서들은 파독 간호사를 표현한 간호사 복장, 또 고등학교부터 군사교육을 시켰던 교련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교련복에 빨간 마후라를 두르고 경쾌한 군무를 추었다. 그것이 우리가 흘러온 시대, 과거를 상징하는 복고풍으로 느껴졌어야 함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사에 강조된 '미래'의 모습으로 자꾸 시간이 뒤엉킨 것은 나 혼자만의 유별남 때문일까?

박시후와 조웅, 다시 살아난 'BBK 음모론'

향후 5년 간 국정의 방향을 안내할 새 선장, 국민의 대표 취임을 축하하는 잔칫날, 자꾸 신경을 자극하는 기사들이 인터넷에 도배되고 있다. 최근 힘겹게 톱스타 자리에 오른 배우 박시후의 성폭행 사건 관련 뉴스들이다. 저 인기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배우 개인은 삶의 목표를 정하고, 얼마나 힘든 무명시절의 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거쳐 간신히 운 좋게 스타가 되었을까? 하지만 하룻밤의 사건은 그를 이제 나락으로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

처음 사건이 터져 나왔을 때만 해도 팬들은 박시후 측의 해명을 믿어주려는 움직임이었고, 직전 소속사 관련 음모론도 조기 진화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담당 변호사와 법무법인이 바뀌고, 이젠 서부경찰서와 강남경찰서의 대립구도까지 만들어지면서 한 스타배우의 몰락은 가시화 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두 얼굴을 가진 셀러브리티 주역의 스릴러가 현실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더 하수상한 음모론은 다른 곳에서 피어오른다. 박시후 사건이 터지던 당일 인터넷에 급속히 유포되면서 당일 실시간 검색 1위를 내내 차지하고 있던 다른 사건, 바로 조웅 목사라는 양반의 장황한 박근혜 당선인, 아니 이제는 대통령 관련 추문폭로 인터뷰였다.

필자는 잠시 그 내용을 접하고 황당무계하다고 결론지었다. 오히려 오래 전 대선부터 박정희 정권, 박근혜와 혼약설을 퍼뜨리며 정치와 코미디의 경계를 허문 허경영 총재의 이야기가 더 범우주적이고 재미있고 귀엽기도 했지, 노 목사님의 칙칙하고 어둡고 추악한 과거 권력의 판타지는 쉬이 신뢰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조웅 목사

조웅 목사ⓒ영상 캡쳐



그럼에도 이 인터뷰 영상이 급속히 퍼져 나가면서 박시후 사건은 조웅 목사 건을 덮기 위한 작전이라는 음모론이 SNS를 통해 스물스물 퍼져 나갔고, 이 음모론은 하나의 패턴을 가지고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프레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오후 사저로 돌아간 이명박 대통령을 대선, 아니 당시 한나라당 내부경선 때부터 괴롭혔던 소위 BBK 사건 관련 당사자가 무죄판결을 받던 날 터져 나온 서태지-이지아 이혼사건의 언론 유포 시점에 대한 의문과 의혹이 여전히 대중들의 뇌리 속에 하나의 공식을 각인시켰다. 사실 이 BBK 사건 무죄판결과 톱스타 부부의 한참 지난 이혼사건 파문이 오버랩 되었던 이슈가 대선 전까지 제4의 매체인 팟 캐스트를 급부상 시킨 '나꼼수'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한다.

97년 미국영화 '왝 더 독(Wag the dog)'은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제목으로 정치 음모론에 관한 교과서적 작품이다. 미국 대통령에 대한 여론 지지도가 바닥에 떨어지고 정치 스캔들에 의해 정권이 위기에 처하자 정체불명의 해결사 로버트 드니로가 등장하여 정국 수습을 지휘한다. 물론 그는 정부 어느 기관에도 공식적으로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는 헐리웃 최고의 영화 제작자 더스틴 호프만을 끌어들여 존재하지도 않는 적과 존재하지도 않는 전쟁을 만들어 세트장의 전쟁 씬을 연일 미디어로 방송하며 국민들을 가상의 공포와 위기로 몰아넣고 대통령에 대한 거짓 신뢰를 창조하여 지지율을 끌어올린다. 영화 속 이야기였지만 2001년 뉴욕의 911 사태 이후 2003년 이라크전쟁이 발발하고, 2004년 마이클 무어 감독이 그 배경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911’을 개봉하자 영화작품의 정치사회적 상상력의 리얼리티에 대중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조웅 목사는 3차 인터뷰를 생방송으로 진행하던 중 긴급체포 되었으며 감히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 등 죄로 옥살이를 할 것으로 예견된다. 그리고 그의 인터뷰 내용을 믿거나 말거나 해당 동영상은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 증발해버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통상 2주 내외 걸리는 유해 동영상에 대한 심의를 일사천리로 처리해 이례적으로 봉쇄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심의위원인 고려대 법무대학원의 박경신 교수가 항의하며 퇴장해버리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2년 걸린 조현오 처벌, 아직도 수사중인 '국정원 댓글' 사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존재하지 않는 차명계좌를 언급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구속되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다. (그가 수감되던 날 소녀시대 티파니 양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핑크색 넥타이를 맨 것에 대해 필자는 심히 분노했다.)

한편 작년 12월 16일 일요일 밤 대통령 후보 대선 3차 토론에서 마침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국정원 직원 인터넷 댓글 사건을 공방하며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냐 여직원의 인권이냐를 토론한 직후 때마침 수사 중이던 경찰이 이례적 시점에 댓글은 나오지 않았다고 발표했던, 그리고 해당 직원의 신원을 공개한 국정원 내부 고발자에 대해 정부기관이 '배신자' 등 원색적 비난과 함께 파면한 사건이 여전히 두 달이 넘도록 안개 속에서 '수사 중'이다.

필자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조웅 목사의 발언내용을 신뢰하지 않는다. 문제는 대중에게 노출돼 관심이 모아진 사건 중 어떤 사건들은 매우 급속히 처리되고, 어떤 사건들은 매우 더디게 처리되는 패턴이 교차할 때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감’을 잡는다는 점이다. 이 대중의 감 속에 진실이 있다. 그 감을 공유해야 국가의 지도자, 공동체 리더는 신뢰를 얻고 허심탄회한 쌍방향 소통을 주고받으며 국정의 교감, 나아가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나라의 잔칫날 재 뿌리면 안 되는 법이다. 다만 이러한 대중의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것은 국민 개개인이 아니하는 것. 눈과 귀를 가리려 하지 말고, 나아가 미디어 학자 마샬 맥클루언이 주장한 과학기술을 통한 대중의 눈과 귀, 즉 미디어도 가리려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가지고 국민과 소통하는 정부가 되기를 바라고 바란다.

인간으로서의 삶, 현실 자체는 힘들다. 그것은 대통령만의 탓도, 정부만의 탓도 아니다. 다만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짐이 되지는 말아주시기를. 아무 것도 못해주는 무능한 권력이라 할지라도 함께 쭈그려 앉아 원통한 이야기 들어주고, 눈물 콧물 닦아주는 것만으로 감사할 수 있는 국민들, 그것이 우리가 아닌가.

무상하게도 아름다운 동화 속 "여왕의 대관식 후 백성들은 모두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하는 해피엔딩이 새로운 잔혹동화의 시작이 아니길 두 손 모아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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