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삶에서 우리 미래를 보다, 이소영 알렉산더 우가이 2인전

이동권 기자 su@vop.co.kr
입력 2013-05-13 13:42:34l수정 2013-05-16 14:43:45
전시 포스터

전시 포스터ⓒ민중의소리



가끔 우리 사회가 ‘이미 정해진 미래’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갉아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회의 아픔과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 투쟁하거나 자기 것을 나누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의 삶과 무관하게 고립무원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별수 없다고 말하기에는 가슴 한 쪽 구석이 너무도 찌릿하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 움직인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고 희망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떤 미래가 도래하게 될까.

전시장에서 만난 묘비를 보면서 힘을 내본다. 기대나 헛된 희망은 그 형체만큼이나 커다란 번민을 만들 뿐이다. 운명은 자신의 내부에 있지 밖에 있지 않다.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해서 남들의 사는 모습에 휩쓸릴 필요도 없고, 눈앞에 보이는 것만 쫓는 사람들을 동조할 필요도 없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종교적이나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뭔가에 이끌리거나 누군가를 추종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기 위한 고해와 성찰의 시간. 그래야만 우리는 이 차가운 세상과 자기 물음 앞에 당당하게 맞서며 밝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고려인의 삶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다

삶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별의별 사색과 소망이 생겨난다. 쾌락을 원하고, 풍요로운 삶을 꿈꾼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가장 빛나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욕심도 낸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부질없다. 삶의 덧없음을 감추려는 ‘인간의 숙명’이자 뿌리털 같은 두려움을 숨기려는 ‘인간의 나약함’에 불과하다. 왜냐면 인간은 언젠가 죽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깨달으면 인간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죽음에 대한 쓸데없는 고민은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기고 현실을 아름답게 사는 법을 고민한다. 허구한 날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안고 그리움을 재생하며 사는 것은 끔찍하다. 끝간 데 없는 쾌락의 질주는 파멸로 이끌 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삶의 허무함을 달래주고 채워줄 수 있을까. 그것은 오로지 인간을 위한 사상과 공학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나와 우리 시대의 풍요와 번성도 중요하지만 타인과 자녀 세대의 편안과 안락도 지켜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인간은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지만 고통스러운 일도 따라오고, 외로움도 느낀다. 그럴 때마다 인간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의 현상과 행태를 연구하면서 멋진 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또 예술가들은 자신의 미적 언어로 우리가 그려나가야 할 미래를 제시하면서 사람들의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전시 포스터

이소영 Soyung Lee, 인스톨레이션 뷰 / After you, 사진, 2012~3 / After you, Ceramic objects과 부분 / Take your place, 비디오, Still from production, 2012~3ⓒ민중의소리, 갤러리 175



이소영, 알렉산더 우가이 작가도 ‘The Future is Coming from All Directions’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들의 방식으로 미래를 모색했다. 이들은 소수 민족과 소수 공동체, 디아스포라가 미래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고려인들의 자유로운 이주 형태의 삶이다. 소수민족으로 살아온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삶을 포착해 미래 사회를 예측해봤다.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 밖에 살면서 유대교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킨다.

이소영 작가는 조선에서 연해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얘기했다. 이 작가는 고려인들은 한민족이지만 한국인이 아니며 러시아어가 모국어인 사람들. 한국말을 쓰지만 가본 적이 없는 조국이 그립고, 대학과 직장을 찾아 한국으로 떠나는 젊은이들이의 삶을 우리의 미래와 교차시킨다.

이 작가는 “큰 빌딩 숲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이곳 드넓은 평야에서 느낀다. 숨 막히게 아름답고 고통스럽도록 불안하다”면서 “한 번쯤 생각해볼 수도 있다. 거기의 미래를, 바람이 어디서 불어올지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모르기에 여러 곳에 머리를 두고 이들과 저들과 우리를 교차해보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장에는 이소영 작가의 비디오 작품 ‘자리잡기’가 설치돼 있다. 이 작품은 빈자리 중 어떤 자리에 앉을 지, 그 자리에 앉은 이유가 무엇인지, 자리를 옮겼다면 왜 그랬는지 등을 관람객들에게 물으면서 5년 후 자신의 삶을 예측해보라고 말한다. 또 전시장 바닥에는 고려인들이 살았던 지역에 설치했던 묘비가 놓여 있다. 이 묘비는 고려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이자 미래를 투영하는 상징물이다.


전시 포스터

알렉산더 우가이 Alexander Ugay, Model for the assembly, 콜라주, 디지털 프린트, 2013 / Wedding, September 24, 1983, 디지털 프린트, 2013ⓒ민중의소리, 갤러리 175



알렉산더 우가이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관념, 복잡한 질서의 출현을 예고했다. 자본주의=개인적 불멸성, 사회주의=집단적 불멸성, 종교=절대적 불멸성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만 관념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우가이는 “초인간주의를 향해 나가는 탈세속사회의 다중에게서 정의가 어떠한 방법으로 구현될지 알아야 한다”면서 “이는 문화적 기억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해방이 일어날 것인지, 또한 정의 개념이 새로운 복잡성에 얼마나 들어맞을 것인지에 달려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장 한 벽면에는 그의 콜라주 연작, 연합 모형(고려사람 버전)이 걸려 있다. 이 작품은 고려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그가 예측한 미래의 단어는 후기 세속사회, 근본주의, 무신론, 신종교 운동, 트랜스휴먼, 화성식민화, 우주 도시와 건축, 기술적 특이점, 항성간 여행, 파이어니어호의 금속판, 외계 생명체, 아스트로엔지니어링, 역경 제 63괘 기제, 플라톤의 세계영혼이다. 단어만 들어도 궁금증이 생기는 미래다. 여기서 예측된 미래가 꼭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예측한다는 사유 자체가 매우 중요한 것인 듯싶다.

다른 벽면에는 우리의 기억, 새로운 글쓰기의 역할로 대체된 사진을 통해 디지털 형이상학과 디지털 불멸성의 미래를 예측한 사진 연작 ‘기억의 대상들’이 자리 잡고 있다.

카자흐스탄 우슈또베 사람들의 이야기

자료집을 보면 이소영, 우가이 작가가 고려인 초기 정착 마을에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 우슈또베 사람들을 만나, 기억에 남아있는 날, 전통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전통을 따르고 있는지 등 8가지 질문으로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다.

고려인들에게 한 마지막 질문은 ‘앞으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은 무엇이냐’였다. 고려인들은 ‘전쟁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전 확신합니다’, ‘정치문제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항상 자인의 이익을 따지며 살아가기에 정치문제는 항상 존재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겁니다. 이 사실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간의 평등은 절대 없을 겁니다’ 등이 반응을 보였다.

이소영 작가가 만든 인터뷰 영상을 보면 우리의 삶이나 그들의 삶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느껴진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 뒤에 숨어 있는 불안의 에네르기, 절망과 상처로 얼룩진 삶, 우리 시대에 대한 성찰과 고백, 분노, 초조, 걱정들이 느껴진다. 또 병고와 고독, 막연한 희망과 공허함을 감당해내는 인간사가 보인다. 과연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소영, 알렉산더 우가이 작가의 ‘The Future is Coming From Directions’ 프로젝트는 오는 25일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연구소에서 운영하는 갤러리175에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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