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 탄압에 정면으로 맞섰던 원칙주의자 서상권”

[현장] 16일 ‘통일애국열사 서상권 선생 민족통일장’ 추도식... 18일 영결식 개최

김보성 기자 press@vop.co.kr
입력 2013-05-17 01:28:54l수정 2013-05-17 09:06:35
“한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친 영원한 ‘의장님’ 서상권”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쳐온 서상권 전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이 향년 87세의 나이로 운명한 가운데, 16일 저녁 9시 30분 통일애국열사 서상권 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가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다. 고인의 약력을 낭독하고 있는 장선화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그대 가는 걸음이 통일의 속도인 듯 그렇게 걸어온 사람, 통일이 가까워올 때도 어렵다 빨리가자 말없이 다시 꿋꿋이 길에 선 사람. 한 길 걸어온 묵묵한 통일전사, 통일된 세상에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 영원한 의장님”

16일 저녁 9시. 부산 동구 인창병원 장례식장 201호. 50년대엔 진보당 조봉암 대통령 후보 창녕군선거대책위원장으로, 6,70년대엔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90년대 들어선 3자연대 통일운동을 개척한 범민족조국통일연합(이하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으로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에 바쳤던 서상권 전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을 추모하는 추도식이 열렸다.

“한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친 영원한 ‘의장님’”
“평생 가시밭길, 통일조국의 한그루 거목될 터..”
눈물의 추도사 쏟아져


오랜 사회활동 끝에 얻은 지병에도 최근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서 전 의장은 지난 15일 오후 6시 5분께 부산지역 한 병원에서 못다 이룬 염원을 안고 끝내 눈을 감았다.

90년대 범민련을 향한 공안 탄압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통일운동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서 전 의장은 그 어디서나 “의장님”으로 불렸다. 삶 자체가 범민련이면서 통일운동의 산 증인이었던 서 전 의장은 마지막 가는 길인 추도식 현장에서도 “영원한 의장님”이었다.

이날 추도식에는 박영관 민주공원 관장, 최용국 부산 노동자생협 이사장, 원형은 빛과소금교회 목사, 고창권 통합진보당 부산시당위원장, 하성원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 손재현 민자통 부산회의 공동의장 등 서 전 의장의 뜻을 기리는 부산시민사회 인사 250여명이 참가했다.

87년 6월 항쟁부터 함께 통일운동을 해왔던 하성원 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서 의장은 어떤 투쟁의 거리든 마다하지 않고 노구를 이끌고 참여했다”며 “범민련을 향한 모진 탄압에서도 이를 굳건히 지키고 맞받아쳐간 원칙주의자였다”고 그를 회고했다. 하 의장은 “이젠 통일운동 대열에 앞장서는 선생을 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자주통일 정신은 반드시 후배들이 이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서슬퍼런 군사독재정권 시절 통일운동의 선두에 섰던 서 전 의장은 1993년과 1994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공동의장과 범민련 부산연합 의장을 연이어 맡으며 수배와 구속의 길을 걸었다. 당시 민자통 활동을 지켜봤던 손재현 민자통 부산회의 공동의장은 서 전 의장을 “밥 한 끼를 먹으면 동지들에게 밥을 주고 자신은 국물만 떠먹던 분”으로 기억했다.

손 공동의장은 “범민련을 구성해 민족대단결 정신에 따라 3자연대 운동을 펼칠 때 엄혹한 정세 속에 구속을 마다하지 않고 조직을 지켰다”며 “그분에겐 동지들과 함께 남북해외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일념 밖에 없었다”고 추도사를 쏟아냈다.

구연철 범민련 부경연합 고문도 “그토록 험난하고 가시밭길인 평생을 살아왔지만 백발의 노고에도 항상 투쟁의 선두에서 자기희생적으로 싸워온 사람”이라며 “한반도 긴장감이 높은 엄중한 시기에 동지를 보내야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고 준비해온 글을 읽어내렸다. 구 고문은 “통일된 조국에서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자던 약속은 이제 내려놔야할 것 같다”며 “통일을 향했던 고귀한 뜻은 남은 이들이 반드시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친 영원한 ‘의장님’ 서상권”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쳐온 서상권 전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이 향년 87세의 나이로 운명한 가운데, 16일 저녁 부산 인창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조문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친 영원한 ‘의장님’ 서상권”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쳐온 서상권 전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이 향년 87세의 나이로 운명한 가운데, 16일 저녁 부산 인창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조문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 저녁 9시 열린 추도식에서 참가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고귀한 뜻 후배들이 반드시 이어갈 것”

원형은 목사는 “죄송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부산지역에서 인권운동을 주도적으로 펼쳐온 원 목사는 “지난 탄압시절 보안수사대에서 고초를 당하시던 때 출두명령서를 받고 저에게 의논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면서 “그렇게 늘 함께 하자고 하셨는데 어떻게 홀로 그 먼 길을 떠나셨느냐. 함께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 전 의장을 향해 “독재정권 반통일 세력의 모진 광풍에 맞서 통일조국을 바라보던 한 그루의 거목이었다”며 “그 길이 앞으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로 가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외쳤다.

김동윤 통합진보당 부산시당 전 대변인은 서 전 의장에 대해 “학생 시절과 청년시절, 진보정당 운동을 하고 있는 지금과 앞으로도 언제나 영원한 의장님”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전 대변인은 “조국통일에 대해선 구속과 수배를 각오하던 고집스러운 분이었고, 투쟁의 자리에선 불같은 외침을 쏟아냈지만, 동지들을 만나면 긴 담배 하나를 들이키며 소년 같은 모습을 보이던 분이었다”고 그의 생전 모습을 떠올렸다.

각계각층의 추도사에 이어 서 전 의장의 활동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자 참가자들 사이에 참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일부 참가자들은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레 닦으며 서 전 의장이 걸어왔던 길을 묵묵히 지켜봤다. 1시간 가까이 진행된 추도식 말미 사회를 맡았던 안준용 전 부산민중연대 사무처장은 “어느 때보다 엄혹한 시기 서 전 의장의 뜻을 따라 평화협정 체결에 나서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유족을 대표해 서 전 의장의 장남인 서주덕(60) 씨는 “조문을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아버지가 걸어온 길에 대해 동지애적 사랑을 보여준 여러분들을 지금도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장례위를 꾸린 부산지역 시민사회는 18일까지 ‘통일애국열사 서상권 선생 민족통일장’을 치른다. 이날 첫 추도식에 이어 17일 저녁 9시 30분에도 추도식이 다시 거행된다. 18일 오전 7시 30분 발인을 거쳐 영결식은 오전 9시30분 민주공원에서 엄수된다. 장지는 부산추모공원으로 결정됐다.

민족통일장 장례위원장은 하성원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 이정이 615남측위 부산본부 상임대표, 김재하 민주노총 부산본부장, 김길구 부산시민운동연대 상임대표 등이 맡았다.

서상권 전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은 누구?


“한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친 영원한 ‘의장님’ 서상권”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쳐온 서상권 전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이 향년 87세의 나이로 운명한 가운데, 16일 저녁 9시 30분 통일애국열사 서상권 선생 민족통일장 장례위원회가 추도식을 거행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추도식 현장이 내걸린 현수막.ⓒ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서상권 범민련 부경연합 전 의장은 지난 1927년 창녕에서 태어나 29살이던 1956년 진보당 창녕군당(준) 위원장과 조봉암 대통령 후보 창녕군 선거대책위원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회운동에 발을 담갔다.

이승만 정권 시절 자유당은 3선제한 철폐를 주장하며 1954년 불법적인 4사5입 개헌을 강행했고, 이에 분노한 야권 세력은 비교적 보수적 성향인 민주당과 최초의 진보정치 세력이었던 진보당으로 나뉘어 이승만 정권에 대항했다. 통일에 관심을 가졌던 서 전 의장은 평화통일론을 제창했던 진보당 운동에 뛰어들며 반독재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당시 진보당은 평화통일을 주장하며 이승만 정권의 북진통일론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이 간첩혐의를 뒤집어 씌워 조봉암 진보당 당수를 사형시키면서 진보정치는 싹도 틔워보지 못하고 암흑기를 맞아야 했다. 이에 굴하지 않았던 서 전 의장은 1960년 한국혁신세력 집결촉진회 추진위원과 한 해 뒤 통일사회당 경남도당 총무부장을 역임하며 반독재투쟁을 이어갔다.

1970년과 1971년엔 전국연합노련 부산위생노조 위원장과 교육선전부장을 통해 노동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92년부터는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 자주통일위원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실행위원을 맡으며 통일운동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기기 시작했다.

“한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친 영원한 ‘의장님’ 서상권”

평생을 통일운동에 바쳐온 서상권 전 범민련 부경연합 의장이 향년 87세의 나이로 운명한 가운데, 16일 저녁 부산 인창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조문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 전 의장 활동사진이 담겨있는 현수막이 빈소에 걸려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이후 범민련 남측본부 감사, 민자통 공동의장, 범민련 남측본부 부경연합 의장으로 잇따라 활동하면서 정권의 공안탄압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3자연대 조직인 범민련의 지도부라는 이유로 서 전 의장은 1995년과 1997년 두 번에 걸쳐 구속되는 고초를 치렀다.

그 뒤에도 1999년 범민련 남측본부 상임부의장까지 맡아 7.4 남북공동성명 이행과 3자연대 통일운동 대중화에 평생을 바쳤다. 2009년부터는 건강악화에도 범민련 부경연합 명예의장으로 활동하며 부산지역 집회와 시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20여일에 가까운 투병생활 끝에 지난 15일 오후 6시 5분께 운명했다. 서 전 의장은 마지막까지 “조국통일이 될 때까지는 결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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