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안철수의 어디가 노동중심적인가?

최장집과 경향신문의 막 갖다붙이기…‘아웃소싱 확대’ 주장은 어쩌고

문형구 기자 munhyungu@daum.net
입력 2013-06-04 14:53:39l수정 2013-06-04 16:26:18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최근 공개 석상에서 안철수 신당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교수는 곧 모습을 드러낼 안철수 신당의 모델하우스 격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수습 노무사들을 대상으로 한 이 강연에서 그는 "민주당보다는 분명히 진보적인 스탠스를 갖는 정당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안 의원의 정치조직화든 활동이든 이런 것에서 노동문제가 중요한 구성요소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의 말을 두고 언론의 추측이 잇따르자 안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이 문제가 중요한 정치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최 교수님의 원래 소신이며, 저도 같은 생각"이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안 의원이 긍정적인 '제일감'을 낸 것은, 진보 색채의 군소 세력을 먼저 끌어안는 포석이 안철수 의원 쪽에서 봐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통합진보당에서 떨어져나온 진보정의당의 경우,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안 의원 측이 먼저 손 내밀 만한 상대다. 안 의원으로선 당장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선거를 치룬 경험이 있는 세력이 절실하다.

심상정 의원도 최장집 교수의 강연 직후 안철수 신당에 대해 "새 정치에 대한 고민이 어떻게 구체화 되느냐에 따라서 낡은 정치를 넘어서는 정치개혁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고 화답했고, 연이어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안 의원의 새정치를 지켜보고 있다' '양당 구조 깨야 한다'며 적극적인 신호를 보냈다.

"대서특필, 생뚱맞다"

일단 안철수 신당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이 될 것이라는 주장엔, 첫 보도를 낸 <경향신문>의 사론(社論)이 적잖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신문은 대선 이전부터 안철수 후보가 주도하는 신당 창당에 우호적 시각을 보여왔고, 이대근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최 교수의 제자이자 '최장집 사단'으로도 통한다. 또한 최장집, 이대근 두 사람 모두 오랜 '심상정 지지자'로 진보진영과 관련해 '노동 중심'을 타이틀로 하는 '진보의 재구성'을 주장해왔다. 즉 안철수 신당과 심상정 의원 등을 묶어 제3의 정치세력으로 띄우고자 하는 의도가 읽힌다.

안철수 의원은 재벌 2세와 유력 기업인들의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V-SOCIETY)' 회원이었고, 삼성가와 마찬가지로 안랩의 BW 저가 인수 논란을 안고 있기도 하다.

안철수 의원은 재벌 2세와 유력 기업인들의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V-SOCIETY)' 회원이었고, 삼성가와 마찬가지로 안랩의 BW 저가 인수 논란을 안고 있기도 하다.ⓒ양지웅 기자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정치학)는 경향신문 보도와 관련해 "다분히 선정적인 보도"라며 "아직 내부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최 교수의 발언을 이렇게 대서특필한 것은 생뚱맞아 보이기까지 한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적했다. 이날 경향신문이 1면 톱기사와 아울러 한 개 면 전체를 털어 '띄워주기' 보도를 한 것을 꼬집은 것이다.

유창선 박사는 또한 "최 교수 발언의 진의를 제대로 전달했는지도 의심스럽다"며 "그가 노동이라는 의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맥락이 과연 안철수 신당이 노동중심성에 기반한 진보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는지는 더 확인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현상 자체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보수 양당 체제에 대한 염증의 결과이기 때문에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안 의원이 상대적으로 진보·개혁 성향의 유권자층에 기반하고 있고, 특정한 당색이나 지역기반을 갖지 않은 것도 상당한 강점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일부 언론과 지식인 집단이 안철수 신당에 거는 기대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안철수 신당에 '노동 중심'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는 것은 왜곡의 정도가 심하다.

대선주자였을 당시에도, 정치인 안철수에게 '없는' 한가지가 바로 노동정책이었다. 보수층 유권자에게 의존할 게 아니라면 노동정책은 대선후보에게 빼놓을 수 없는 정책분야지만, 많은 저서들과 인터뷰에 나타나는 그의 관심은 기업 분야나 교육 쪽에 크게 치우쳐 있고 노동 문제와 관련한 균형잡힌 시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례로 안 의원은 중소기업 발전를 위해 아웃소싱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는데, 아웃소싱은 저임금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신자유주의 산업정책의 핵심 기법이기도 하다. 2011년 3월 관훈포럼 초청 강연에서도 그는 "요즘 계속 화두가 되고 있는 중소기업 벤처기업과 대기업 간 상생문제"라며 "기업들 스스로가 안내원들을 고용을 하는 것 보다 더 적은 비용을 들여 더 전문성 있고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면, 그런 (아웃소싱)전문회사가 훨씬 더 싼 가격으로 그런 일들을 해준다면 이렇게 창업되는 회사들이 다들 내부적으로 조직을 가져갈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각은 17대 대선에서 유사한 신드롬을 불러왔던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과 비교해봐도 크게 기업 편의에 치우쳐 있는 것이다.

노동중심이 개업식 덕담인가?

안 의원 개인을 보자면 그는 오히려 '노동 중심'의 반대편에 가깝다. 안철수 의원은 재벌 2세와 유력 기업인들의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V-SOCIETY)' 회원이었고, 삼성가와 마찬가지로 안랩의 BW 저가 인수 논란을 안고 있기도 하다. 금산분리 무력화라는 재벌의 이해관계와 맞닿는 '인터넷 전용은행' 추진이나 로또 사업 컨소시엄 참여에 대해선, '최장집 사단'이 또 어떻게 답변할 지 궁금하다.

어쨌든 논쟁은 일단락 됐다. 3일 한 토론회에 참석한 안철수 의원이 최 교수의 발언과 경향신문 보도 일주일 만에 "서민과 자영업자, 노동계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측면"이라면서도 "최 이사장의 언급에 100% 동의하는데 진보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최 교수의 '노동중심 진보정당론'에 대해 한상진, 표학길 명예교수 등 친안철수 성향의 다른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데다, 신당 추진세력 내부에서 '중도' 표밭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최장집 사단을 비롯해 논쟁에 뛰어든 인사 대부분이 안철수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 '노동중심 진보정당' 논쟁을 '김칫국 마시기'로 웃어넘길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노동 중심'이라는 가치는 또한번 실없는 덕담 수준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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