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뉴라이트 말고 역사학계 존중해야”

[인터뷰]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②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입력 2013-06-05 22:12:36l수정 2013-06-10 08:21:35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주도로 이뤄진 ‘건국 60주년’이 역사학적으로 얼마나 근거가 없는 것이었는지 조목조목 비판했다. 또 이에 협조했던 당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적하며 국사편찬위의 독립성이 전과 달리 상당히 훼손됐다고 우려했다.

또 최근 뉴라이트 주장을 담은 검인정 국사교과서를 집필한 학자들을 거론하며 “뉴라이트의 주장이 역사학계에서는 먹혀들지 않는다”며, 집필진 중 국사 전공 학자들도 부족해 “인적구성으로 봐서도 역사학계의 보편적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한 달쯤 전에 곧 5.16 5.18도 오고 극우파들의 공세가 심해질 것을 걱정하며 학자들이 급히 모였다. 그래서 6월초쯤 몇 사람이 앞으로의 스케줄을 짜서 다시 모이자고 했다”며 계속되는 역사왜곡에 대해 학계가 공동으로 대응 할 계획임을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에 조언을 해달라고 묻자 이 교수는 “역사학계의 의견은 그 시대의 학문적 성과로 형성된 것이니 학계를 존중하고 소통해야 한다”며 “뉴라이트 방식으로 하면 오히려 부정적인 의견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자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다음은 인터뷰 뒷부분의 전문이다.

국사편찬위원장이었는데 최근의 국사편찬위 어떻게 보시나?


제가 있을 때는 중학교, 고1까지 쓰는 국사 국정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만들어서 썼다. 시대별 전문가들이 토론해서 국사교과서가 된다. 고2, 3학년은 2001년부터 근현대사라고 해서 선택과목이 됐고, 각 출판사와 저자가 집필해 교육부 검열기관에서 검열을 거쳐 교과서 시장에 내놓는 식이었다. 지금은 선택과목도 국사편찬위에서 검열하는 것으로 돼있다. 뉴라이트 교과서 올 8월까지 검인정 완료하면 내년부터 사용하는 것이다.
내가 할 당시엔 국사편찬위가 참 독립적이었다. 인사문제에 있어서도 교육부에서 사람 파견하겠다고 했는데 원래 있던 두 사람도 돌려보내고 전혀 받지 않았다. 지금은 다시 교육부 지시 받고 하청을 받듯 일하고 있다.



국사편찬위의 독립성이 훼손된 구체적 사례가 무엇인가?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건국 60주년 사업을 했다. 그러나 건국 60주년이라는 것은 일반 국민은 혼동하기 쉽지만 역사학계에서는 말이 안 된다. 그냥 정부 수립 60주년이다.
1919년 3.1운동에서 우리는 독립을 청원한 것이 아니라 선언했다. 9년 전에 죽은 것은 대한제국이고 대한민국을 세운 것이다. 대한민국을 끌고갈 정부가 필요했으나 한반도 안에 세우려니까 일제가 강점하고 있어서 나라 밖에 임시정부를 세운 것이다. 임정은 12개조가 되는 약법이 있었고, 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정이다’였다. 이후 네 번 개정해 나중에 긴 헌법이 생긴다.
1945년 5월 10일 처음 선거를 하고, 5월 31일 국회를 열었다. 의장이 이승만이었는데 당시 “우리가 세울 정부의 역할은 1919년 한성정부(임시정부)의 계승이고, 후신이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8월 15일 정부선포식 때도 구 총독부 건물 현관에 ‘대한민국 정부수립 축하식’이라고 플래카드를 붙여놓았다. 건국이었으면 건국 축하식이라고 했을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임시정부 때부터 ‘민국’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1948년은 민국 30년이었다. 정부가 세워졌으니 9월 1일자로 관보를 냈는데 민국 30년 9월 1일라고 했다. 당시 정부를 세웠던 사람들도 다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정부수립이 아니라 건국이라고 했다. 그게 다 뉴라이트의 주장이다.



건국60주년 사업과 국사편찬위가 어떤 관계가 있었나


나는 건국 60주년 아니라고 칼럼도 많이 썼다. 당시 민간위원회 만든다는데 거절했다. 그때 국사편찬위원장이 건국 60주년의 타당성에 관해서 연설을 했다. 그 사람은 조선후기 연구한 사람이라 근현대사도 잘 모른다. 논리라는 게 뻔하다. 국가는 영토, 국민, 주권이 갖춰져야 한다.
미국을 보더라도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 했다. 파리 국제회의에서 1781년 국제회의에서 독립이 인정이 됐다. 1786년에 의회 구성을 위한 전국적 선거를 하고, 대표들이 헌법을 만들어 연방정부가 탄생한 것이 1789년이다. 독립선언 13년 후다. 그래도 그들은 건국을 1776년으로 보고 7.4 독립기념일로 그대로 쓴다. 미국이라면 ‘껌벅’ 죽는 친구들인데 이런 것은 외면한다.



교과서나 국사편찬위나 독립성과 객관성이 중요할텐데


교과서라는 것이 결국 학계의 보편적 의견을 수렴시켜서 담는 것이다. 특정한 주장을 보편적인 주장으로 싣는 것은 맞지 않다. 그래서 국사편찬위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자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최근 뉴라이트 계열에서 만든 역사 교과서가 검인정 승인을 받고 있어 논란이다.


뉴라이트의 주장은 역사학계에서는 먹혀들지 않는다. 교과서 만든 사람 중 역사공부하는 사람 두 명 있다. 한 사람은 학계에서 한 쪽으로 돌아있는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국사가 아니라 역사교육 전공자다. TV에서 말을 잘하니까 역사학자이자 뉴라이트 대변인 격이 됐다. 나머지 학자들도 대부분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하는 사람들이다. 인적구성으로 봐서 역사학계의 보편적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겠나.



역사 연구하는 분들이 공부하는 거 좋아하고 사회참여 잘 안 하신다. 그런데 지난주에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토론회도 있었고, 새 정부 들어 역사문제가 계속 되니까 학계에서 같이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장 나오고 있다.


3월말 어느 서양사학자가 청와대에 가서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을 안보적 차원에서 심각하게 봐야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국사편찬위원회와 정신문화연구원 관계자를 불러들였다는데 무언의 압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4월말쯤 곧 5.16 5.18도 오고 극우파들의 공세가 심해질 것을 걱정하며 학자 몇 명이 급히 모였다. 그래서 6월초쯤에 몇 사람이 앞으로의 (공동대응) 스케줄을 짜서 다시 모이자고 했다. 예상대로 518 폄훼 나오고, ‘일베’라고 하는 곳에서는 이상한 내용 올리고 하더라.



역사학계가 함께 어떤 숙제를 풀어야 하나.


5.18 때 광주NCC에서 설교해달라기에 가서 종편 두 개에의 내용은 심각하게 문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광주가 폐쇄성을 극복하고 민주세력과 연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역사상 우리는 광주에 부채의식을 갖고 있다. 이 부채의식을 승화시켜, 광주정신을 한반도 전체의 민주화의식, 통일의식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역사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결론은 안으로는 인권민주화, 민족적으로는 평화통일이다 그렇게 되고나면 세계 앞에서 해야 될 일이 있다.
나는 지난 2008년 정부수립 60주년 맞아서 이런 얘기했다. 일제 아래서 고통을 겪은 우리가 역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슬픔과 고난 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승화시키면 식민지가 되어보지 않은 국민, 국가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다. 그 자산을 통일로, 통일 이후에는 세계의 여러 고통에 동참하는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내 생전에 하나라도 이루어질지 잘 모르곘다. 내가 날마다 기도하는 것은 통일되고 난 뒤에 죽게 해 달라 것인데 될지 모르겠다.(웃음)



박근혜 대통령은 본인이 역사적으로 쟁점이 되는 인물이다. 앞에서 비판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조언을 한다면


간단하다. 역사학계 의견을 존중하면 된다. 역사학계의 의견은 그 시대의 학문적 성과로 형성된 것이다. 물론 몇 년 뒤엔 변화될 수도 있다. 그럼 변화된 의견을 또 존중하면 되는 것이고, 이 시점까지의 의견을 존중하고 소통하면 된다.
그게 박 대통령이 화합하는 대통령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히려 아버지를 더 부각 시키고 평가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뉴라이트 식으로는 유신시대와 뭐가 다르냐, 이렇게 학계 의견이 더 부정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자신이 이야기한대로 대통합의 길, 화합의 길을 가야 한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4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자택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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