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사관 앞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규탄 퍼포먼스 ‘눈길’

‘조선여자 정신대 근로령’ 공포일...피해자들 “밥 못 먹고 10시간씩 일했다”

예소영 기자 ysy@vop.co.kr
입력 2013-08-23 16:11:27l수정 2013-08-23 17:34:16
근로정신대 할머니들과 함께하는 퍼포먼스

재미작가 이하윤씨가 23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건너 소녀상 옆에서 일본의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외면 그리고 소리 없는 외침이라는 퍼포먼스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함께하고 있다. 23일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제가 조선여자정신대근로령을 공표했던 날이다.ⓒ김철수 기자



하얀 쌀알이 하얀 한복을 입은 여성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입으로 들어가야 할 쌀이 머리 위로, 그다음 땅바닥으로 떨어져 쌓였다. 여성은 쌀을 피하는 대신 황망한 눈빛으로 또 한때는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일본 대사관 앞에 펄럭이는 일장기를 응시했다.

이는 23일 낮 12시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하윤(51) 작가가 선보인 ‘외면 그리고 소리 없는 외침’이라는 제목의 퍼포먼스 내용이다. 하얀 한복은 일제 근로 정신대의 피해자인 조선의 소녀를, 쌀이 떨어지는 것은 소녀의 노동이 착취당하는 것을 상징한다.

70년 전 오늘, 조선여자 정신대 근로령’ 공포
“하얀 한복은 조선의 소녀, 쌀이 떨어지는 것은 소녀가 당한 노동 착취 상징”

일제는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치르기 위해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 ‘정신대’를 조직했다. 이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징용제’와 더불어 당시 어린 소녀들을 일본군의 성 노예로 만든 위안부 제도이다. ‘조선여자 근로 정신대’는 한국여성들을 군수공장의 노역에 투입한 제도이다.

이하윤 작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날로부터 꼭 70년 전인 1940년 8월 23일 일제가 ‘조선여자 정신대 근로령’을 공포해 일본의 군수 공장에서 한국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을 비판하고자 이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이 작가는 “일제강점기 일본은 우리 주식인 쌀을 수탈하고 배고픔에 허덕이던 수많은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했다”며 “쌀 한 톨, 한 톨은 정신대 할머니들의 피요, 땀이요, 설움이자 무관심과 침묵에 생을 마치신 수많은 정신대 할머니들의 영혼”이라고 퍼포먼스가 상징하는 내용을 설명했다.

이 밖에도 퍼포먼스가 이루어진 2m 지름의 빨간 원은 일장기를, 대사관을 향한 예술가의 날카로운 ‘바라봄’과 손가락질은 일본에 역사적 참회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고 작가는 전했다.

이날 퍼포먼스를 진행한 이하윤 씨는 현재 미국 뉴욕에 거주하며 ‘쌀’을 오브제로 한민족의 삶을 퍼포먼스, 회화 설치물로 표현하는 작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의 눈물

23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건너 소녀상 옆에서 재미작가 이하윤씨가 일본의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외면 그리고 소리 없는 외침이라는 퍼포먼스에서 함께한 근로정신대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3일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제가 조선여자정신대근로령을 공표했던 날이다.ⓒ김철수 기자



“조선 소녀들 제대로 된 밥도 못 먹고 군수공장에서 10시간 일했다”

퍼포먼스에는 근로 정신대 피해자 김옥순(85)·김정주(83)·최희순(83) 할머니도 동참했다. 세 할머니 각각 전북 전주와 군산에서 소학교 6학년에 다니다가 1944년 2월 25일 후지코시 철재공업주식회사 도야마 공장에 근로 정신대원으로 끌려간 뒤 해방된 후 귀국했다.

이 작가의 머리 위에 쌀을 떨어뜨리던 김옥순 할머니는 70년 전의 수모가 생각나는지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구역질이 나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희순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벽에 기대어 일본대사관만 바라봤다.

김정주 할머니는 “일제 때 일본인들이 쌀을 먹을 때 우리는 깻묵밥·솔잎밥을 먹었다”며 “학교 선생님들이 ‘일본으로 가면 중·고등학교도 갈 수 있고, 밥도 먹을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해 일본으로 갔다”고 밝혔다.

이어 김 할머니는 “군수공장의 소녀들은 아침에는 된장국 한 사발, 저녁에는 빵 한 조각과 단무지 세 조각을 배급받으면서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일했고 약속했던 임금은 구경도 못 했다”고 말하며 통곡했다.

대사관 앞을 지나가던 시민은 걸음을 멈추고 특이한 광경을 지켜보거나 이 작가의 머리에 쌀을 떨어뜨리는 퍼포먼스에 동참했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사는 김영자(62) 씨는 “우리 아버지 김영숙씨도 징용에 잡혀갔다 돌아왔다”며 “일본 정부에 사죄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이 퍼포먼스에 함께 했다. 일본은 정신대 피해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생존해 있을 때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며 근로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과 포옹을 나눴다.

근로정신대 문제 일본은 사죄하라

재미작가 이하윤씨가 23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건너 소녀상 옆에서 일본의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외면 그리고 소리 없는 외침이라는 퍼포먼스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함께하고 있다. 23일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제가 조선여자정신대근로령을 공표했던 날이다.ⓒ김철수 기자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한 퍼포먼스

재미작가 이하윤씨가 23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건너 소녀상 옆에서 일본의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외면 그리고 소리 없는 외침이라는 퍼포먼스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함께하고 있다. 23일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제가 조선여자정신대근로령을 공표했던 날이다.ⓒ김철수 기자



일본으로 끌려갔던 근로정신대를 위한 퍼포먼스

재미작가 이하윤씨가 23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건너 소녀상 옆에서 일본의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외면 그리고 소리 없는 외침이라는 퍼포먼스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함께하고 있다. 23일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제가 조선여자정신대근로령을 공표했던 날이다.ⓒ김철수 기자



일본 근로정신대 문제 사죄하라 퍼포먼스

재미작가 이하윤씨가 23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건너 소녀상 옆에서 일본의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외면 그리고 소리 없는 외침이라는 퍼포먼스에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함께하고 있다. 23일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제가 조선여자정신대근로령을 공표했던 날이다.ⓒ김철수 기자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 촉구 퍼포먼스

재미작가 이하윤씨가 23일 낮 12시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건너 소녀상 옆에서 일본의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외면 그리고 소리 없는 외침이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3일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 일제가 ‘조선여자정신대근로령’을 공표했던 날이다.ⓒ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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