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다시 욱신거리는 10년 전 가을의 상처 - 영화 ‘경계도시2’를 보다

김동현 편집부장
입력 2013-09-04 10:31:25l수정 2013-09-04 11:39:25
송두율 사건이 생각났다. 국가보안법 체제가 만들어낸 2003년 한국의 흉물스런 모습. 가슴 한 켠이 욱신거렸다. 그것은 단순히 국가보안법에 의한 공안당국과 보수진영의 ‘마녀사냥’이라는 이성적 판단과는 좀 다른 기억. 무언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기사 몇 건을 검색하던 중 돌아온 첫 번째 기억은 ‘관용론’이었다. 아! ‘국가보안법 처벌’을 인정하면서 관용해 달라던 진보의 엎드림. 그리고 영화 <경계도시2>가 생각났다.

현대정치의 기본으로 꼽히는 ‘소통’ ‘공론’ 개념을 제시한 하버마스의 수제자. 독일에서 군사독재 반대운동을 벌여왔던 민주화인사. 북한을 오가며 우리 민족의 반쪽을 이해하는 방법인 ‘내재적 접근론’을 제시한 학자. 자신을 ‘경계인’으로 위치지으며 남북을 화해시키는 ‘화해자’로 살아가겠다던 통일인사. 90년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송두율은 한국 진보진영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진보운동계에서 그의 저서를 한 번 쯤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가 한국에 왔다.

대한민국은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영화는 설렘으로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의 입국과 함께 영화는, 아니 현실은 오직 하나의 물음만을 그에게 던졌다. ‘당신은 조선노동당 정치국 김철수 인가.’

그에게 한국의 공안당국과 보수정치인, 언론들이 어떤 폭격을 가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영화는 당황하는 그의 얼굴과 함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정원 조사만 받고 나오면 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그와 대화를 나누던 그의 주변 역시 ‘마녀사냥’앞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며칠 만에 그는 사면초가에 놓인다. 그의 이름은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로 뒤바뀌어 있었다. ‘김철수인가 아닌가’만 답하라. 이른바 진보인사들의 질문도 같았다. 당신은 김철수인가 아닌가. ‘그게 애매한데’라며 ‘긴 설명’을 하려는 그에게 다그침이 이어졌다. ‘명쾌해야 한다’고.

결국 그는 “조선노동당 가입을 한 적은 있지만 정치국원으로 살아온 적은 없다”고 밝혔다. 온 사회가 그를 비난했다. ‘노동당 가입’만 들을 뿐 그 뒤로 이어지는 그 어떤 해명도 우리 사회는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들씌워졌다. ‘거짓말쟁이’다.

영화는 상당부분을 ‘대책회의’에 할애했다. 수차례 이어지는 대책회의는 이른바 진보의 속살을 여과없이 내보였다. ‘김철수’ 송두율은 거짓말쟁이이자 진보진영에 피해를 주는 골칫덩이가 돼 있었다. 그와 거리를 두는 것이 살 길이었다. “수백명의 민변에 변호인단을 모집했는데 10여명만 대답이 왔어요.” 그리고 한국의 진보는 그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총선을 앞두고 있다.” 그들이 왜 당황하는지 왜 그와 거리를 두는지, 그를 둘러싸고 진보마저 손가락질 하는지 드러났다. 그는 ‘학자 송두율’도 ‘인간 송두율’도 아니었다. 그저 ‘김철수’였다.

보수의 맹공은 더욱 거세졌다. 진보언론들도 앞다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민주인사들이 공격받는 빌미를 제공했다’ ‘처벌받을 내용은 처벌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제 그의 처벌은 피할 수 없는 길이 됐다. 그를 살리겠다는 학자들도 ‘내가 그의 편은 아니지만’ ‘그는 잘못했지만’이라며 국가보안법을 어겼고 처벌받아야 하지만 관용을 보여달라고 호소했을 뿐이다.

감독은 영화 중반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노동당 정치국원 김철수와 송두율, 그들은 동일인물인가 아닌가. 사건이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을 때 즈음, 나는 내 안의 레드 콤플렉스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는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긍정 총체적인 부정 두 부분 밖에 허용을 안 해.” 학자로서의 당연한 물음 앞에 진보인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경계인으로 자리를 내면으로나 대외적으로나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이런 거 하지 말고 국외 추방되는 게 나은 거예요. 남에 정착해서 여기서 뭔가 하려면 통과의례가 있는 건데.”

송두율은 갈수록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말이 없었다. 그의 부인이 ‘경계인으로 살아온 30년 세월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전향할 수는 없다’고 항변했지만 그럴수록 진보인사들의 다그침은 커져갔다. “노동당원이 무슨 경계인이야.”

이제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송교수는 그의 생각을 말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누구도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만이 떠다닐 뿐이었다. 이튿날 그는 짧은 기자회견을 했다. ‘노동당 탈당, 헌법 준수, 독일국적 포기, 처벌감수.’ 보수가 요구했고 진보가 받아들이라고 종용했던, 그의 부인이 그토록 ‘전향’이라며 반대했던 내용이었다. 결국 그는 구속됐다.

한국 사회는 거짓말처럼 그를 잊어갔다. 그제서야 진보는 국가보안법과 맞섰다. 대책위가 확대됐고 그의 구명운동이 벌어졌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국회의원인 최민희 당시 민언련 사무총장은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나 사무총장의 일부도 송두율 교수를 간첩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당시 시민사회의 현실을 토로했다. 시민사회는 뒤늦게 외양간이라도 고치려 애를 썼다. 알려진대로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던 송교수는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진보언론마저 처벌을 종용했던 모든 혐의의 결론은 '무죄'였다.

영화는 60년간 이어져온 국가보안법 체제가 우리 사회에, 그리고 진보진영에까지 어떻게 또아리를 틀고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강고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 흉물스런 국가보안법 체제는 ‘북한’이라는 단어와 결합해 엄청난 폭발력의 ‘여론재판’을 만들어낸다. 감히 누구도 그 쓰나미 앞에 대적할 수 없다. ‘토씨’가 다른 해명은 ‘거짓말’이 되고 ‘긴 설명’은 들을 생각조차 없어지는 흡사 군부독재 시절 군사재판장이 사회로 튀어나온 것 같은 상황.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성숙한 우리 사회’는 그가 잘못을 인정하면 관용을 베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간첩’으로 들씌워진 이의 해명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던, 퍽이나 ‘성숙한 우리 사회’였다. 훗날 송두율 교수는 구속되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며 역설치고는 참으로 지독한 역설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구속 이후 자유가 된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우리 사회는 더 ‘성숙해’졌다. 내란죄로 몰린 국회의원에게 차분한 해명의 시간 조차 허용되지 않는, 아니 해명 자체가 거짓말을 양산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의 데자뷔. ‘도둑질’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부터는 아무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가 ‘국가보안법 체제’를 더욱 농익히며 성숙해 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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