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교과서 논란의 또 다른 측면 - 학생의 권리

학교운영에 학생들의 참여가 있었다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은 어땠을까?

유윤종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회원
입력 2014-01-10 10:49:36l수정 2014-01-12 18:10:43
하나.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현재 학교의 근본 문제는,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데 있다. 교칙 제정을 비롯한 전반적인 학교의 운영에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의 의사가 당연히 반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교육관은 학생을 학교 운영으로부터 제외시켜 민주적인 교육의 실천과 실습의 기회를 박탈하여 학생을 학교와 유리시키고 자율적인 민주시민의 양성이라는 교육의 근본 목적을 망각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교육의 제 1주체로서 학교 운영에 당연히 참여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절차를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현재 각급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사, 학부모, 지역인사만의 참여만이 이루어져 지고 있으며,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의 참여권과 제대로 민주적인 교육을 받을 권리가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우리는 지금 무너져 가는 학교와 교육을 살리기 위하여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를 선언한다. 학생대표는 단순히 참관의 형태가 아니라, 교사, 학부모, 지역인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학교 공동체의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의사결정에 주체적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즉각 교육법규를 개정하여 이를 보장하고, 현재의 학교를 민주화하여 진정한 교육개혁을 추진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라는 단체가 발표한 글이다. 제목은 ‘학생의 학운위 참여를 선언한다!’.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내걸고 모였던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은 2001년에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대표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운동을 전개했다.

최근 역사 교과서 문제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문득 이 13년 묵은 자료가 떠올랐다. 교과서 선정 과정은, 먼저 교사들이 몇 종을 선별한 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학교장이 최종 선정을 하게 되어있다. 해당 교과와 학문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교사들이 고르고 나면, 학교운영위원회에서는 학부모 등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도록 되어 있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은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다. 교과서 선정 문제에서 교사들과 함께 가장 가까운 당사자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이다. 만일 2001년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의 주장처럼, 또는 그 이후에도 여러 번 국회에 발의되었던 학생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법률안처럼 학생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학교운영위원회가 마냥 잘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만 해도 학교운영위원회를 제대로 통과하지도 않고 교장이 교과서를 정한 사례 등이 도마 위에 올랐었다. 여러 학교들에서 학교운영위원회는 형식적인 절차만 남았고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구가 되어버렸다. 학생 대표가 한두 명 참여한다고 해서 학교운영위원회의 현실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가 참여하고 학생들이 교과서 선정에 대해 토론하고 집단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는 과정이 있었다면, 교과서 선정도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 안한다는 소식에 기뻐하는 창문여고 학생들

3일 오전 서울 강북구 창문여고앞에서 참교육학부모회 등 강북지역시민단체 회원들이 친일, 역사왜곡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채택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 중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안한다고 소식에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한편 창문여고측이 기자회견 직전 학교운영위를 열어 교학사가 아닌 지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는 소식을 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기뻐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 했다.ⓒ김철수 기자



둘. 학생의 표현의 자유

다시 몇 년 전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년, 학생에게도 학교 안에서 언론·표현의 자유가 있고, 집회의 자유가 있으므로 이를 보장해야 하고 함부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확인하는 권고를 했다. 경기도의 어느 고등학교 안에서 학생인권을 주장하는 전단지를 배포했던 학생이 허가받지 않은 전단지를 배포했다면서 선도위원회를 열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던 사건,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학내시위를 한 사건 등이었다. 특히 전단지 배포를 가지고 징계를 위협한 경우는 해당 학교 학칙에 거기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선도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전주 상산고등학교에서도,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05년, 학교 안에서 두발자유 주장하는 전단지가 배포되자, 학생부 교사는 의심되는 학생을 불러서 네가 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학교 안에서 나눠주거나 하려면 미리 교무실에서 “검인” 도장을 받아야 하며 마음대로 전단지를 배포하는 것은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강제적인 자율학습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써서 중앙현관 바닥에 붙인 학생에게는, 부모에게 징계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전화를 걸기도 했다. 2006년에는 상산고등학교 인권동아리에서 축제 때 쓰려고 택배로 배송받은 학생인권 관련 배지를 기숙사에서 교사가 중간에 가로채고 전달하지 않아서, 그 배지를 발송한 담당자였던 내가 내용증명까지 보냈던 적이 있었다.

이번에 상산고등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철회를 주장하는 대자보를 붙였다가 학교에 의해 철거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토론을 위해서 교과서 2개를 채택한다고 주장한 상산고 측이었기에,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출을 막은 것에 대해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게 되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혀를 찼다. 상산고는 2005년, 2006년의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 사이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학교 안에서도 학생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권고를 내리고, 전북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시행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말이다. 만일 상산고등학교와 그 교직원들이, 몇 년 전 학생들에 의해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전단지가 배포되고 대자보가 붙었을 때 여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면 어땠을까? 이번 교과서 채택 문제로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며 의견을 표명했을 때 이를 좀 더 존중하고 학교 측의 말대로 정말 열린 ‘토론’을 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2013년 여름에 전북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을 때, 입시교육 말고 그런 소식에도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살펴보았다면 함부로 대자보를 철거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원고 대자보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에 항의하는 동원고 대자보들. 학생들은 3일 오전 7시 15분께 일시에 대자보를 학교 곳곳에 붙였고 곧바로 학교측에 의해 철거됐다.ⓒ동원고 학생 제보사진



셋.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자

살다 보면, 과거를 돌아볼 때 안타까운 일들이 참 많다. 그때 그랬다면 지금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한탄하게 된다든가, 그때 거기에서 배웠더라면 지금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우리 사회가 2001년 학생들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면, 상산고 또는 최근에 대자보를 철거하고 대자보 붙인 학생들을 탄압해서 문제가 된 다른 학교들이 학생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면…. 그랬더라면 아마도 이번에 역사교과서 채택 논란에서 많은 문제 부분이 학생들의 참여를 통해 사전에 ‘예방’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상산고나 동우여고 등 학생들의 대자보가 붙었던 학교들의 경우, 학생들이 불필요한 걸림돌과 다툼 없이 의사를 표현하고 학교 안에서 민주적인 토론과 논의의 과정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역사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렇게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내일을 더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한 하나의 교양으로서 배우는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역사교과서 논란은, 교학사의 역사교과서가 그런 교양을 학습하기 위한 최소한의 학술적 기준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일 터이다. 일부 우리가 반성해야 할 역사에 대한 불충분한 서술과 현재 집권 정치세력의 노골적인 밀어주기 역시 심각한 문제일 것이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교과서 문제를 놓고서도 우리가 내일을 고민하며 만들어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당장 문제가 된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지 못하게 하고, 검정을 취소시키면 될 문제인가? 애초에 우리의 역사교육 방식 자체가 교과서의 ‘정답’을 암기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면서 민주시민을 위한 교양 교육으로서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의 ‘문제 교과서’를 반대하는 정도가 아니라, 학생들이 교과서 채택을 비롯하여 교육정책 결정 전반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만 학교/교육 민주주의에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이 정치적 문제, 사회적 문제, 자신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을 우리 사회가 보장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일’을 바라보기보다는 국정교과서 도입을 운운하면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새누리당에는 정말 질릴 노릇이다. 교과서 검인정 제도에 따라 다양한 교과서가 있어야 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국정교과서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니, 자신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논리고 뭐고 내다 버리니까 뭐라고 지적질 하기도 지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할 일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데 애쓰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교육이,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애써야 한다. 적어도 학생의 표현의 자유와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면 좋겠다. 그런 태도가, 진짜로 역사로부터 배우는 길일 터이다.

울산 현대고, 교학사 교과서 채택으로 몸살

지난 1월 1일 부터 울산 현대고 게시판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에 항의하는 글로 가득차고 있다.ⓒ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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