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온 ‘장난감 은장도’ 때문에 우리 아빠 ‘RO 지휘원’ 됐나”

‘내란음모사건’ 사건 가족 인권침해 보고회...“국정원 수사관, 결혼도 RO가 시켰느냐 물어”

예소영 기자 ysy@vop.co.kr
입력 2014-02-13 00:56:18l수정 2014-02-13 10:55:12
눈물 흘리며 증언하는 내란음모 수사 피해자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에서 김근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의 부인 한영씨가 국정원의 인권피해 사례를 증언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양지웅 기자



검찰이 ‘RO 총책’이이라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게 ‘지휘원’으로 불리었다고 주장한 진보당 경기도당 김근래 부위원장의 가족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가족은 지난해 8월 28일 자택을 압수수색 당한 뒤, 현재까지 아이들은 압수수색 당시 자신의 이름과 물건이 언급됐다는 자책감에, 부인 한영 씨는 민중을 위해 헌신해온 남편이 내란음모 혐의를 받는 것에 대한 억울함에 시달렸다. 그중 언론이 지난 5개여월간 아버지와 남편을 ‘지휘원’으로 매도한 것이 가장 괴로웠다. 그를 ‘지휘원’이라고 부른 이 의원마저도 “지휘성원이라는 말은 알아도 지휘원이란 말은 모른다”고 했으나, 그들은 이웃들에게 이미 ‘지휘원의 가족’으로 통했다. 급기야 김 부위원장의 가족은 “아빠는 죄가 없어도 그냥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다”, “탄원서 많이 받는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는 무기력감에 휩싸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은 김근래 부위원장의 가족이 ‘소위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 준비팀’에게 증언한 내용이다.

“국정원 직원들은 한 달 전 첫째 아이가 스스로 용돈을 모아서 산 장난감 총,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수련회에 가서 사온 장난감 은장도, 남편이 저의 부탁으로 평양에서 사온 아이들의 책 그리고 우표, 북한에서 찍은 사진을 가져갔어요. … 남편은 경제인 협력사업과 청년 문화유적 답사 일로 두 번 북한을 방문했는데, 중앙일보는 남편이 ‘북한에 밀입국했다’고 보도했어요. 당시 국정원 직원들도 함께 갔는데...”

“오전 7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어요. 송파경찰서에서 ○○○(둘째 아들) 학생 일로 왔다고 하더라고요. 민소매 원피스 차림이라 옷을 갈아입고 열어드리겠고 했더니, 얼핏 봐도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안으로 그냥 막 들어오더라고요. 둘째 아이는 압수수색 날 자기 이름이 거론된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이후로 말이 없어졌어요.”

“국정원 직원들이 들이 닥쳤을 때 단정치 못한 옷차림이라 옷을 갈아입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국정원 여자 직원이 따라왔어요. 자기가 들어와야 한다면서 끝까지 들어오려 해, 차마 옷을 못 갈아입고 카디건만 하나 더 입었어요” (이상 한영씨)

“아버지가 구속된 후 학교나 다른 곳에서 아버지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불안하고, 혹시 아버지 이름이 나올까 봐 많이 긴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 또 저희는 3형제라 생활비가 많이 드는데 아버지가 안 계셔 어머니 혼자 부담을 해야 합니다. 특히 막내는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를 앓고 있어서 (아버지가 없으면) 할머니가 오셔서 돌봐야 하는데, 할머니도 많이 피곤해하십니다.” (김근래씨 첫째 아들)


“초등학교 4학년 수련회 때 사온 ‘은장도’ 때문에 우리 아빠 RO 지휘원 됐나?”
“‘결혼도 RO가 시켰느냐’고 묻는 국정원 조사관”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들, 자책감·억울함·이웃 손가락질·무력감에 고통


소위 ‘내란음모 사건’으로 인권 침해를 당한 이들의 가슴 속 이야기가 공개됐다. 다산인권센터, 인권운동사랑방 등 5개 인권단체의 인권활동가는 18명은 12일 오후 1시 서울 중국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보고회를 열어, 3개월간 이 사건 피해자 25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발표했다.

‘구속자 가족과 압수수색 당사자, ‘5월 정세 강연회 참석자’들이 국정원과 검찰, 언론으로부터 어떻게 인권을 침해당했는지’ 증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보고회 장소에는 푹푹 내쉬는 한숨 소리와 울음 소리, 때로는 황당함이 담긴 비웃음 소리가 가득 찼다.

첫 번째로 피해 사실을 증언한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의 부인 엄경희 씨는 “저희 집은 압수수색이 들어오기 약 한 달 전부터 아이 방 창문으로 계속 카메라 불빛이 터지고, 국정원 직원이 저희 집 사진을 찍다가 저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엄씨는 “사건이 터진 뒤 ‘우리집이 어떻게 보였을까’ 불안해 새벽 4시까지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어딜 가든 낯선 사람은 국정원 직원으로 의심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며 “결국 저를 감시하기 위해, 집에 CCTV를 달아야 했다”고 오열했다.

김근래 부위원장의 부인 한영 씨는 “압수수색을 당하던 날, 국정원 직원들은 문을 강제로 여는 장비를 가져오고도 둘째 아이 이름을 대며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며 “문 여는 장비보다 세 아이의 이름을 전부 알았던 것이 더 소름 끼쳤다”고 말했다.

이어 한씨는 “다운 증후군이 있는 셋째 아이도 아빠가 오랫동안 부재한 것을 눈치채 ‘아빠는 마음속에 있다’라고 이야기해 줬다”, “둘째 아이는 아빠가 악성 댓글을 보고 속상해할까 봐 ‘아빠가 있는 곳에는 컴퓨터가 없지?’라고 묻더라”고 말해 참가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또 압수수색을 당했던 민주노총 고양·파주 지부장 이영춘 씨는 자신과 부인 안소희 파주시 시의원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를 발표했다. 그는 “1차 압수수색은 저에 대한 영장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부인의 물건까지 다 가져갔다”며 “2차 압수수색은 부인에 대한 영장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미 1차 때 압수수색이 끝나, 10장의 수첩을 떼어간 형식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200여명의 압수수색 인원은 방송 카메라를 의식한 것인지 3개의 상자에 쪽지 10장을 나눠 들고 가더라”고 꼬집었다.

또 이씨는 “국정원 조사관이 ‘결혼도 RO가 시킨 것이냐’, ‘부인에게 주체사상을 학습 시켰느냐’, ‘김홍열이 시켰다고 말해라’ 등의 말을 했다”며 “국정원은 제가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일을 RO와 연관 지으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저에게 수치심을 줬다”고 말했다.

힘겹게 입을 연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들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에서 참가자들이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부인 엄경희씨, 김근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의 부인 한영씨,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양지웅 기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들이 겪는 스트레스 장애, ‘진실 규명·책임자 처벌과 사죄’만이 유일한 치료책”

다산인권센터 박진 상임활동가는 “내란음모 사건이 갖는 공포가 큰 만큼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가 사회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며 “재판과 별개로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취지에서 보고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랑씨는 “소위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된 통합진보당의 여러 당원이 국정원에 ‘놀리고 뒤지고 자백을 강요받는’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또 이들은 중립성과 객관성을 포기한 언론, 종북 이라는 정치적 사망선고에 혈안이 된 사회 분위기에도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랑 활동가는 “이 사건은 내란음모 사건 자체로만 보지 말고, 어느 시점에 발생했는가도 염두에 둬야한다”며 “이 사건이 일어나기 3일 전에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국정원 조작임이 드러났고,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사건’, ‘윤석열 팀장의 수사 외압 발언 사건’으로 국정원이 수세에 몰리던 상항이었다”고 지적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상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이 사건의 피해자들에게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불안 장애 징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신건강 실태조사와 세심한 치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전문의는 “그러나 이들은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 사건 책임자의 사과와 처벌이 없으면 절대 치유될 수 없다”며 “광주 민주항쟁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이들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거나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상황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해 8월 28일부터 내란음모 등 혐의로 16명을 압수수색하고, 이석기 의원 등 7명을 구속했다. 검찰은 지난 3일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20년과 자격정지 10년, 이상호·김근래·홍순석·조양원·김홍렬 피고인에게는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0년, 한동근 피고인에게는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오는 17일 1심 선고를 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보고회를 연 ‘소위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 준비팀’은 13일 이들이 취합한 사례들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다.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아무도 우리 목소리를...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에서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이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눈물 흘리며 피해 증언하는 내란음모 구속자 가족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에서 구속된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의 부인 엄경희씨가 피해를 증언하다 눈물을 훔치고 있다.ⓒ양지웅 기자



내란음모 이유로 자행된 국정원의 인권침해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에서 참가자들이 국정원의 수사 등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인권피해가 발생한 국정원 내란음모 수사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에서 참가자들이 국정원의 인권피해 사례를 보고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내란음모 사건 국정원 인권침해 보고회

12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에서 참가자들이 피해를 증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부인 엄경희씨, 김근래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의 부인 한영씨,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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