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제는 규제가 아니라 독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XP에 대한 기술지원이 종료됨에 따라 정부의 대비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MS는 오는 8일을 끝으로 더 이상 윈도XP에 대한 기술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XP의 새로운 보안 취약점이 발견돼도 이를 막는 기술 업데이트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악성코드 피해와 정보유출 등 위험에 노출되는 ‘보안대란’을 겪을 개연성이 있다.

민간 조사업체에 따르면 현재 국내 XP 이용자의 비중은 PC를 기준으로 15.19%에 달한다고 한다. 문제는 XP를 운영체제로 사용하고 있는 PC의 상당 부분이 금융권을 비롯한 기간 서비스와 공공부문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스레 정부의 대책이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이유다. 주목할 것은 XP를 비롯한 MS계열 OS 사용률이 국제 평균을 크게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MS계열 OS 사용률은 95%로 미국의 81%, 일본의 85%에 비해서도 훨씬 독점적이다. 이 정도면 사용자가 MS계열 OS 이외의 다른 선택을 고려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 역시 MS의 OS에 종속된 국내 인터넷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 아래 중장기적으로 정부와 국가기관 서비스에 사용될 독자적 OS를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고, 실효성 없는 중장기적 대책을 논의 주제로 올려 그간의 문제점을 덮으려는 시책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MS계열의 OS가 다른 선택을 배제할 정도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으로 진단된다. 하나는 세계적 추세와 마찬가지로 MS윈도가 사용자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과 또 하나는 공공 서비스, 즉 정부의 규제 하에 있는 금융서비스와 정부 자체의 서비스가 액티브X처럼 MS의 플랫폼에만 적용되는 경우를 표준으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사실 PC 이용자들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MS계열 OS를 사용하는 것은 정부 정책으로도 쉽게 교정하기 어렵다.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는 타인이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데서 일정한 이익이 존재하는 만큼 자연스레 독점으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PC 이용자들이 자신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OS를 선택하는 것은 정부 정책으로도 바꾸기 어려우며, 이를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성공하기도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는 사용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며, 이들이 때때로 창조적 혁신의 기반이 되는 경우가 곧잘 발견된다. 이른바 ‘벤쳐’가 바로 그렇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오히려 표준의 선정이 아니라 독점의 규제 혹은 시장에서의 약자 보호에 있다. 다수의 선택을 근거로 표준을 선정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행태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대신, 소수자를 보호함으로써 미래의 창조적 가능성을 보존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그동안 반대의 행보를 보여 왔다. 이른바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의 상징처럼 거론되는 공인인증서가 이 경우다. 정부는 MS계열의 OS가 다수라는 이유로 액티브X와 같은 기술에 편향을 보여 왔고, 수없이 많은 IT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집해왔다. 이는 규제가 아니라 ‘독점의 법적 공인’일 뿐이다. 지금 문제가 된 윈도XP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금융 거래의 보안을 인증하는 요건이 MS의 기술에 종속적이다보니 금융회사들은 어쩔 수 없이 윈도계열 운영체제를 선택했고, 막상 MS가 이에 대한 기술지원을 포기하자 금융회사와 정부 모두 막다른 골목에 처한 것이라고 보아야 맞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은 독자적인 OS의 개발과 같이 뜬구름을 잡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우선 정부의 보안 인증 요건이나 정부 구매 소프트웨어에서의 OS 독점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막대한 돈을 들여 구매하는 소프트웨어의 경우 여러 가지 OS에서 모두 구동되는 것을 필수적 요건으로 제시해야 한다. 당장 한글과컴퓨터의 한글워드프로세서만 해도 정부의 이런 조치하에서는 여러 OS를 지원할 수 있고, 자연스레 민간에서도 윈도 이외의 OS를 선택할 이유가 생겨날 것이다. 금융회사들의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특정 기술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금융회사들도 자신의 처지에 알맞은 OS를 선택할 수 있고, 자연스레 이번 사태와 같은 경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그 동안 자신이 독점을 옹호하면서 생겨난 문제를 먼 훗날에나 가능한 독자 OS 개발 같은 의제로 비껴가려 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규제가 아니라 독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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