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 칼럼] 로스쿨 교수인 내가 부끄럽다

며칠 전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학생들이 과천 법무부 앞에서 ‘로스쿨 교육정상화’를 외치며 집회를 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주요일간지나 공중파방송에서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집회를 다녀온 학생들은 그런 무관심에 더 허탈해 했다. 또다른 한 쪽에서 서울의 한 로스쿨에서는 장학금이 줄었고 등록금은 올랐다는 것을 이유로 무기한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더 가관인 것은 이를 기다렸다는 듯 교육부에서 로스쿨이 인가기준을 어겼는지를 조사하여 불이익을 주겠다고 발표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스쿨의 등록금이 비싸다고 해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만 합격하면 만사형통인 배부른 자들의 투정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로스쿨제도와 변호사시험을 들여다보면 온통 허점투성이다. 그리고 그런 허점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심해진다.

법을 전공하고 공부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 된 게 모든 제도는 제도를 만들 때는 괜찮은데 그걸 법으로 만들면 꼭 온통 짜깁기한 듯 한 걸레조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은 주관심사인 농업관련법에서나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여겼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위 기본법이라고 일컬어지는 법들(이것들도 완벽하지는 않지만)을 제외하고 나면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법은 행정법의 영역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정부의 정책을 시행하기 위하여 법제도화한 것들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농민들이 정책에 불만을 품으면 농림수산식품부장관 면담을 요구하듯 로스쿨 학생들은 법무부장관의 면담을 요구했다. 즉,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관할하는 정부부서의 장에게 의사표시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처음 법제도를 만들 때는 목적이 중요했지만 일단 법이 만들어지고 나면 그것을 시행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는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결의대회 중인 건대 로스쿨 학생들
건국대 로스쿨 학생 128명이 학교 측의 일방적인 등록금 축소를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싸고 편한 법률서비스 위해 도입된 로스쿨

처음 우리나라에서 로스쿨 얘기가 나온 것이 대략 10여년 전 일이다. 당시에 엄청난 반대에 부딪쳤지만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 정부 말기에 로스쿨 제도가 통과되었다. 당시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제도가 통과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변호사가 귀한(또는 비싼) 직종이라 누구나 법률자문을 구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을 타개해보자는 것이었다. 즉, 동네에서 손쉽게 법률자문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데 많은 사람이 솔깃했다. 두 번째로는 대학이나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로스쿨에 와서 자신이 가진 그 경험에 덧붙여 법 지식을 익힘으로써 해당분야에서 전문성을 살려 제대로 변호를 하거나 판결을 하도록 하여 억울한 사람이 없게 만들자는 것 역시 이 제도를 통과시키는 데 한 몫을 했다.

사실 미국에서 공부하기 전까지는 로스쿨제도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미국 로스쿨을 직접 경험하면서 위의 두 가지 장점이 눈에 보였고 그 장점을 제대로 살린다면 정말 사회에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2009년 로스쿨이 개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로스쿨이 나름 성공적인 가장 큰 이유는 학부에 법학과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반면 로스쿨이 있는 학교는 법학과를 폐지하고 그렇지 않은 학교는 법학과를 그대로 존속하는 우리나라는 이미 첫 단추에서부터 그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이것을 단순히 의학과가 있는 학교와 의학전문대학원이 있는 학교로 나뉘고 있는 현재의 의사자격시험제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일정 교육과정을 거쳐야만 응시가 가능한 의사자격시험과는 달리 20세가 될 때까지 오로지 상급학교로의 진학만을 목표로 공부하던 학생들이 대학 입학하자마자 사법시험 공부를 하고 최연소 합격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대면 마치 변호사라는 직업은 나이 들어 시험 합격하는 것이 무능력으로 보이게 만들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다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한창 젊은 나이에 뛰어난 암기력을 발판 삼아 합격한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말이다.

모름지기 의사나 법조인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며 경험이 쌓일수록 능숙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의사는 의학기술을 갈고 닦으면 많은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될 수 있지만 법조인은 그렇지 않다. 10인 10색의 사연을 단순한 법기술 또는 법조문만을 가지고 사람을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 사연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신에게도 그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다양한 인생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평생을 시험에만 매달려온 젊은이들에게 그런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만한 경험이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그래서 종종 사람들에게 죄짓고 살지 말라는 말을 한다. 나보다 어린 젊은이가 단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인생의 잘잘못을 따지게 두지 말라는 뜻으로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라는 숫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스쿨 초기에는 로스쿨만큼은 젊은 시절 다양한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일을 판단할 수 있는 나름의 철학내지는 가치관이 있는 사람들을 교육하기에 좋은 제도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단추의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12년 1월 처음 변호사시험을 치르면서 나의 생각은 철없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현재의 변호사시험은 그런 개개인의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법 지식을 평가할 방법도 의지도 없었다. 그렇다고 가장 기본적인 법 지식만을 평가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미리 이 문제를 예상한 로스쿨들은 일찌감치 법학을 전공했거나 사법시험 경험이 있는 학생들을 선호했다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돌았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솔직히 대부분의 로스쿨에서 되도록 그런 학생들을 뽑았으면 하는 바람을 숨길 수 없었을 것이고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점수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것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고 아무리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 한들 면접위원 개개인의 평가는 결국 일정 정도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법시험제도에서도 논술형인 2차시험에서 과락이 나온 이유 가운데 하나가 채점위원과 답안간의 학문적 차이에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종종 인구에 회자되곤 했으니 말이다.

막상 졸업생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취직을 하고 나니 또 다른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법연수원 출신에 비해 실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도 그리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다. 주위에 많은 법조인 친구, 선후배들이 있지만 그들이 시험을 합격한 그 순간부터 지금처럼 능숙한 법조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초년시절 자신이 쓴 글(그게 변론서이건 판결문이건 간에)을 선배 법조인들로부터 새빨갛게 교정 받아가며 쌓은 실력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로스쿨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들이 사법시험 합격하고 연수원까지 마친 학생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2년 정도의 연수를 거치면 그 정도는 개인의 노력으로 능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 게다가 그런 시간만 보장된다면 사법연수원출신보다 훨씬 더 나은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인재도 훨씬 많다. 사법시험을 붙었다고 다 훌륭한 법조인은 아닌 것처럼 변호사시험 붙었다고 부족한 법조인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은 철저한 상대평가에 전국 로스쿨이 동일한 비율로 동일한 수의 학생에게 동일한 학점을 주고 있다.

로스쿨 정상화
3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열린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정상화를 위한 전국 원우 회의’에 참석한 전국 로스쿨 재학생들이 변호사 시험의 자격시험화 재정을 촉구 하고 있다.ⓒ뉴시스

로스쿨 졸업했더니, 또 등수 대로 뽑는 변호사시험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오늘의 로스쿨 문제는 학생들이 능력이나 자질의 부족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처음 이 제도를 만들고 법제화한 사람들이 국민을 속였고 지금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제도를 만들면서 변호사시험은 앞으로 자격시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격시험이란 일정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면 자격을 인정한다는 것이요. 그런데 그 제도를 시행하자마자 합격자를 정원의 75%로 제한했다. 물론 정원의 75%면 기존의 사법시험제도보다는 많은 수를 뽑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격이라는 것은 합격자 수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주 교묘하게 더 많이 뽑는 것이 마치 자격시험인 듯 우리 모두를 속이고 있다. 더 나아가 변호사협회는 인원을 더 늘리지 말라는 의견서를 법무부에 제출하기까지 했다. 자격이 안 되면 100명밖에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고 자격이 되면 전원이 다 뽑힐 수도 있는 것, 그게 자격시험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이런 파행은 결국 교육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처음 로스쿨 취지 가운데 하나였던 특성화제도는 이미 물 건너 갔다. 변호사시험에 붙기도 어려운 판에 특성화과목을 공부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사치다. 그러니 법학전공교과목 가운데 특성화 과목을 담당하는 교수는 찬밥신세에 다름이 아니다. 의생명이 특성화인 우리학교에서 생명과학법(주로 농업과 관련된 법)을 주로 가르치는 나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그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의생명특성화 과목을 들어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주장할 자신이 없다. 그 학생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져 주지도 못할 바에야 변호사시험 과목 공부하기도 바쁜 학생에게 나와 함께 생명과학법을 공부하자고 말하는 것 자체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로스쿨의 이런 문제점들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다양한 경험을 가진 학생들의 전문성을 살리겠다고 학교마다 특성화분야를 정하게 하고 이미 로스쿨에서 상대평가, 유급, 졸업시험 제도를 통해 학생들을 거를 대로 다 거르게 하고서는 그래도 실력 운운하며 정작 능력이 아니라 등수대로 뽑아 버리는 이 제도 탓이다.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국민 모두를 속인 것에 대해 사과하고 정말 앞으로 로스쿨과 변호사시험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공론화할 것을 바라는 것은 현 정부에게는 불가능한 것일까? 정부의 모든 제도가 이렇듯 법제화하면서 엉뚱하게 바뀌는 거, 정말 싫다. 그리고 법 전공자로서 정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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