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산책⑬]12언어연극스튜디오 성기웅 대표 “한국어 탐구하는 것도 연극서 중요한 일”
12언어연극스튜디오 성기웅 대표
12언어연극스튜디오 성기웅 대표ⓒ김세운 기자

예술인들은 개성과 색깔이 강한 경향이 많다. 이것은 대게 그들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극단, 작품, 무대 등을 통해서 드러난다. 성기웅 대표가 이끌고 있는 12언어연극 스튜디오(이하 12언어)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언어’에 힘이 실려 있다. 한국어 사용 인구수가 세계 12위라는 점에 착안해서 만들어진 이름이란다. 확실히 이들은 작품을 통해서 끊임없이 언어 탐구 중이었다. 언어의 양상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기도 하고, 역사도 보고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성기웅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 12언어에는 ‘언어’ 이외에도 다채로운 이야기거리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학창시절 동아리 내에 한 명씩은 꼭 있을 법한 다정다감하고 친절한 선배처럼 12언어연극스튜디오에 대한 역사를 조심스럽게 해체하고 분해하여 설명해 주었다.

극단 이름이 12언어연극스튜디오로 확정되었지만, 후보 중에 한 가지 언어를 사용한다는 의미의 모노링구얼(Monolingual)도 있었다. 세상엔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바이링구얼(Bilingual)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국어를 한 개씩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이름이었다. 현재 12언어연극 스튜디오라는 극단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런 사례만 보더라도 이들이 언어적인 인간, 혹은 언어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많았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연극에서의 말이라던가, 언어라는 부분은 좀 더 중요하지 않거나, 낡은 표현수단이라고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넘버벌 퍼포먼스라던가, 신체를 쓰는 연극들이 각광받던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저는 국문학을 전공했고 말이라든가 극작을 하고 싶어서 연극을 시작했으니 말이나 언어라는 표현수단을 제외하고는 연극을 생각하기 어려웠다.

사실 연극에서 말은 중요하다. 생활에서도 인간이 말이라는 표현수단에 얼마나 의지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연극에서 대사나 말로 표현되는 부분이 낡았거나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은 말을 잘 활용하지 못 해서지 연극 자체에서 말이라는 수단이 소용없거나 진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국어를 좀 다양하고 재밌게 쓰고, 말 자체를 탐구할 수 있는 것도 연극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극단을 만들게 되었다.”

끊임없는 언어 탐구

한국어와 말에 대한 탐구. 이해는 간다. 그러나 여기까지 듣다보면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생긴다. 한국어에 대한 탐구라고 하기엔 외국(일본) 극단의 일을 도와주거나 일본 작품을 번역하는 등 협업한 이력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연출가 타다 준노스케가 이끄는 도쿄데쓰락과의 작업이 그렇다. 2008년 아시아연출가 워크샵에서 알게 된 두 사람은 그 이후 친분을 맺어왔고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2009)부터 러브(2010), 재/생(Re./Play)(2011), 세 사람이 있어(2012), 가모메(2013)까지 직간접적으로 함께 했다. 본격적으로 협업한 작품은 연극 ‘가모메’였지만 2009년부터 매 해 한 작품씩 해온 셈이다. 연극 ‘정물화’의 경우 재일 교포 작가 유미리의 초기 희곡 작품으로 성 대표가 무대화 했다. 한국어를 탐구하는데 해외 작품을 건드리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학부 때 일본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일본어와 일본 연극을 처음 접했다. 사람이 자기에 대해 인식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고,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자신을 봤을 때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다. 이처럼 저도 한국이나 한국어에 대해서 예민하게 인식하게 된 게 일본어를 배워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모국어에 대해서 예민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된 것 같다.”

한국어를 쓰는 극단이라는 이름을 내걸었음에도 초반에 연극 ‘과학하는 마음’처럼 일본 번역극을 많이 한 것은 ‘한국어를 어떻게 쓸 것이냐’는 고민 때문이었다.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 ‘과학하는 마음’의 경우 일상적인 말을 무대에서 하는 작품이었다. 일상 일본어를 번역할 때 한국어를 어떻게 구사할 것이냐는 탐구와 고민이 들어있는 셈이다. 연극 ‘재생’도 비슷한 경우다. 일본과 한국 배우들이 함께 나와서 한국 배우는 서툰 일본말을 하고, 일본 배우는 서툰 한국말을 한다. 간단한 영어로 의사소통도 한다. 이처럼 말과 관련된 다양한 것들이 연극에 담김으로써 한국어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연극 ‘가모메’의 경우 이중언어적인 상황을 통해서 당시 한일 간의 언어 양상은 물론이고 역사까지 바라볼 수 있다. 번역극은 아니지만 연극 ‘삼등병’의 경우에도 거친 군대의 말을 무대화시킴으로써 한국과 한국어의 양상을 보여준다. 12언어의 작업은 언어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경계가 느슨하고 문이 오픈된 극단이 좋다

대학로에 생긴 변화 중에 하나는 극단에 대한 것이다. 과거엔 극단이 연극을 만드는 유일한 단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한 명의 연출가 아래에 배우를 포함한 단원들이 자리하고 있는 구조를 가졌다. 나름대로 서열이 존재하는 구조다.

하지만 최근 국립 극장 등의 문화 사업이 활발해 지면서 이런 기류에 변화가 생겼다. 프로듀서가 극단 대신 연극을 만들기도 하고, 극장이 연극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변화 아래에 극단들도 조금 더 경계가 느슨해지고 오픈됐다. 연출가나 작가가 작업을 위해 타 극단을 왕래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배우들도 소속 극단 말고 다른 극단이나 외부 활동을 하기도 한다. 네트워킹이 활발해진 셈이다. 소수의 멤버들이 모여서 소박하게 활동하다가 2006년 탄생한 12언어연극스튜디오도 경계가 느슨하고 오픈된 네트워킹을 추구한다.

“우리 세대의 연출가들은 극단에 리더가 있고 대부분 배우들이 그 밑에 단원이 되는 구조를 벗어나자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물론 안 그런 곳도 있겠지만 그러 구조는 불편하고 비민주적이기 쉽다고 생각했다. 우리 바람 중에 하나는 저 혼자 연출가라서 예술이든 극단 운영에 관한 것이든 모든 혼자 결정하려는 방식보다는 여러 명의 연출자가 모여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폐쇄적으로 극단 안에서 모든 생활이 이뤄지고, 단원들은 극단 안에서만 작업을 하고, 단원이 아닌 배우나 스텝이 우리 극단의 공연을 할 경우 객원 스텝이 되는 그런 방식보다는 경계가 느슨하고 문이 오픈되어 있는 네트워킹 같은 상태가 좋다고 생각한다.”

12언어 소속 연출가는 4~5명 정도다. 외부 작연출가가 왕래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소속(상임) 연출가까지 다른 그룹을 만들거나, 다른 극단에서 활동하면 서운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좋다”고 답했다.

확실히 12언어연극스튜디오는 서열이나 계급구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경계가 느슨해 자유롭게 네트워킹 한다. 사례만 봐도 그렇다. 김한내 연출가는 12언어연극스튜디오 소속이지만 ‘빠-다밥’이라는 자신만의 팀을 유지하고 있다. 배우 출신의 마두영 연출가도 12언어 소속이지만 외국 작가 팀크라우치의 연극 ‘오크트리’를 통해서 자신만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윤성호 작가와 전진모 연출가도 12언어의 상임연출이면서도 프로젝트팀 모호를 통해서 활동하고 있다. 12언어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12언어 배우 중에 일부는 타다준노스케 연출가가 이끄는 일본 극단 도쿄데쓰락과 매우 친밀하다. 12언어 배우들과 도쿄데쓰락은 2009년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서 인연을 맺었고 매우 친밀해졌다. 한 일 극단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타다의 칭구들’이라는 별도의 팀처럼 그룹을 만들기도 했다.

“예전엔 극단이 연극인을 훈련시키고 키워내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요즘엔 배우들이 연기를 배우거나 무대 미술, 디자이너를 배우는 게 학교나 다른 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다. 저는 12언어가 아마추어의 사람들을 프로페셔널한 연극인으로 길러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시스템과 여건을 갖춘 것도 아니다. 다만 극단이 그 사람이 더 발전할 수 있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극단에서만큼은 자유로운 실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수 있어야
에너지 넘치는 연극보다
관객 스스로 기억, 감각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연극이 더 좋다

아마추어를 프로로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면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걸까. 12언어에는 선배가 후배를 이론적으로 가르치거나 훈련시키는 도제식 프로그램은 없다. 다만 단원들이 자신의 색깔과 능력을 더욱 뻗어나가게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실험이나 발상을 시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 그는 “연극은 늘 새로워야 하고 늘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그게 연극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래야 재밌다”며 훈련 프로그램보다는 자유로운 실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일례로 12언어가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이 그러한 경우다.

“‘단편소설 입체낭독극장’은 단편소설 문장을 그대로 읽어서 공연을 하는 것이다. 낭독공연이면서, 문학적이면서 연극적인 공연이다. 문학도 아니고 연극도 아닌 좀 새로운 연극이기도 하다. 문장을 배우가 말하면서 연기하거나, 문장을 읽기만 하는 것에 연극적 연출을 붙여서 극장에서 소설을 듣는 것 같은 공연이다. 극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실험이자 공연이다. 이 밖에 자유로이 작품을 발표하고 교류하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도 거의 매회 한 작품씩 참여하고 있다.”

자유로운 실험과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12언어답게 ‘그간 해온 작품 중 의미 있는 작품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자유롭고 새로운 대답을 내놓았다.

“물론 다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요즘엔 다원예술장르라던가, 연극이기를 거부하는 실험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연극 바깥으로 뛰쳐나가서 연극 자체를 거부하거나 해체시키는 과격한 방식보다는 연극 안에서 기존의 뻔하다고 여겨지는 관습을 조금씩 해체하거나 변화를 가해서 지금의 연극하고는 다른 연극을 만들고 싶다. 가령 우리가 과학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히라타 오리자 원작의 ‘이번 생은 감당하기 힘들어’와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편을 묶어서 과학연극 2부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타다 준노스케의 작업 중에 ‘재생’이라는 작품도 여러 버전이 있는데 재생이라는 버전을 조금 더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고 싶다. 댄스 씨어터에 가까운 버전으로, 무용 같기도 연극 같기도 한 작품에 한일 배우가 함께 출연하는 식으로 하면 재밌을 것 같다.”

최근 대학로에서는 섹시코미디와 강력한 웃음을 동반한 코미디극이 많은 편이다. 이런 경향에 맞춰서 연극이 만들어지는 경향도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12언어는 이런 흐름을 거스른다. 강한 에너지보다는 차분하면서도 관객 자신이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연극을 추구한다. 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연극이 휘발되지 않고 두고두고 생각나는 이유다.

“배우들은 보통의 사람보다 에너지가 강렬하고, 강렬한 감정을 발산하는 사람들이다. 관객들은 그런 것을 보면서 대신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연극도 좋아하고 재밌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저는 에너지나 감정이 흘러넘치는 연극만이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차분하고, 이성적이고 ‘쿨’하면서 관객이 자기 스스로를 보고 감정을 발산하는 것, 관객이 책을 읽을 때처럼 자신을 되돌아보고나 잠들어 있던 여러 가지 기억, 감각,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연극이 더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12언어연극스튜디오 대표 성기웅 연출가
12언어연극스튜디오 대표 성기웅 연출가ⓒ김세운 기자
12언어연극스튜디오 성기웅 연출가
12언어연극스튜디오 성기웅 연출가ⓒ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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