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위한 정부인지, WTO를 대변하는 정부인지 의심스럽다”

“정부는 협상도 하기 전에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선언했다. 바보 짓이다. 일반 개인들도 회사와 협상하면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가는데, 하물며 국가의 쌀 문제, 식량주권 문제를 두고, 수많은 카드를 버리고 관세화 선언을 했다. 과연 국민을 대변하는 정부인지, 다른 나라, WTO를 대변하고 있는 정부인지 의심스럽다.”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의 일성이다. 서울 용산구 전농 사무실에서 만난 김 의장은 최근 쌀 관세화 유예 불가 입장을 밝힌 정부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쌀 관세화 관련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뒤, 부랴부랴 인터뷰 장소로 온 탓인지 삭발한 짧은 머리카락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김 의장은 “쌀 문제는 이미 2004년 두번째 쌀 협상을 할 때부터 예견돼왔다”며 “그럼에도 국가 공무원들은 거기에 대비해 농민과 국민들을 상대로 식량주권에 관한 의견을 모으지도 않은 채 느닷없이 시간에 쫓겨 관세화를 하겠다고 선언했다”고 지적했다.

전농 김영호 의장
전국농민회총연합 김영호 의장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정부는 올해 12월 31일로 종료되는 쌀 관세화 유예 기간을 추가로 연장하는 협상을 진행해달라는 농민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관세화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으로 오는 9월까지 WTO에 통보할 계획을 밝혔다.

“관세화로 식량주권 보호? 일회용 우산으로 폭풍우 막겠다는 꼴”

그는 ‘식량주권’에 대한 개념이 ‘영토주권’, ‘국방주권’의 개념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이에 따라 쌀 개방 정책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쌀 시장의 관세화는 고율관세로 막을 수 없다. 20년 넘게 개방정책을 하면서 우리가 뻔히 봐오지 않았냐”며 “우리의 쌀독이 우리 부엌에 있지 않고, 미국, 중국 등 곡물메이저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면 쌀을 구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전농 김영호 의장
전국농민회총연합 김영호 의장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어 “정부는 그런 큰 부분에 대해 ‘관세화’로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FTA나 TPP의 본질은 관세화를 자꾸 낮춰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각도로 관세화 유예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을 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장은 여전히 쌀 관세화와 관련해서는 ‘현상유지’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정부는 우리가 주장하는 현상유지를 하기 위해서는 두배, 세배의 의무수입량(MMA)을 늘려야 하고, 그럴 경우 정부 부담이 크다고 이야기한다”며 “그건 협상에 따라 해야 할 일이지, 지레 겁먹고 농민들에게 협박하면서 선택하라고 할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WTO 장학생 된다고 거기서 상을 주는 것 아니다. 철저하게 식량과 농업, 안전한 먹거리를 지키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그런데 관세화로 모든 걸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비바람 몰아치는 폭풍우를 일회용 비닐우산으로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와 똑같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고율관세를 고정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김 의장은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그는 “정부가 쌀에 대한 관세를 300~500%로 고정하면 우리 쌀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라며 “기존의 관세도 다 없애자고 하는 게 자유무역 체제의 방향이기 때문에 당분간 버틸 수는 있지만, 일정 기간에 도달하면 무너지게 돼 있다”고 예견했다.

특별관세(SSG)로 쌀 수입 급증에 대응한다는 정부 방침과 관련해서도 그는 “특별한 이유로 갑자기 수입이 늘어났을 때 취하는 자국 산업 보호 조치는 통상조약상에 당연히 나와 있는 것인데, 마치 특별히 마련한 것처럼 말하는 건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3자 합의기구 구성해 충분한 논의 끝에 나온 결과였다면 이야기 달랐을 수도”

전농은 그동안 농민단체와 국회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쌀 관세화 유예기간 연장에 대한 논의를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반면 정부는 ‘불가하다’는 입장으로 농민단체 요구를 묵살해오다가, 관세화 방침을 정한 이후 내달 중 관세화를 전제로 한 협의기구를 구성해, 농민단체를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농 김영호 의장
전국농민회총연합 김영호 의장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김 의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형식이 아니라, 협상이 진행되는 세세한 부분에 있어 농민들과 논의하고 국회와 이야기하자는 것”이라며 “관세화를 전제로 한 협의기구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만약 3자 협의체 구성을 포함한 충분한 논의 과정의 결과로 ‘관세화’ 결정을 내린 것이라면 다른 상황이 전개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 김 의장의 주장이다.

그는 “지금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라는 전제로 “예를 들어 농민들까지 참여해 이런 저런 협상을 한 결과 불가피하게 500% 관세율로 쌀을 개방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며 “그렇게 된다면 대통령이 책임지고 관세율과 보장 기간에 대해 법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장관 바뀌고 관료들 바뀌고 10년, 20년 지나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보장”이라며 “정확하게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 선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쌀 개방 반대 당론 정해서 싸워줘야...
농민들은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날 것“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쌀 관세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김 의장으로선 아쉬운 대목이다.

전농 김영호 의장
전국농민회총연합 김영호 의장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김 의장은 “일부 의원들의 입장이 중요한 건 아니다. 쌀 관세화로 인해 전면개방되는 것을 반대하는 당론이 명확하게 설 필요가 있고, 그러면서 정부와 이야기하며 지혜를 모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이) 협상을 포기한 정부를 채찍질하고, 쌀 전면개방 문제는 사회적 합의 없이 가선 안 된다고 하는 당론을 세웠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전농은 향후 쌀 개방에 따른 폐해와, 정부가 충분한 협의 과정 없이 쌀 관세화 방침을 결정한 데 대한 전국민적 규탄 여론을 모아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9월달에는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고, 11월에는 대규모 전국 상경투쟁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투쟁 방식과 관련해 김 의장은 “농민들만 이 문제에 대응해서는 싸움에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적다”면서 “식량주권이 무너졌을 때 식탁 안전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대국민 선전전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게 알려내면서 여론화시키고, 지속적으로 정부를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초부터 시민단체들과 우리 먹을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국민 여론을 조직해왔다”며 “동의를 얻은 시민들과 함께 같이 싸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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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합 김영호 의장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의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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