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남 칼럼] 9시 등교 논쟁의 중요한 시사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을 비롯하여 몇몇 교육감이 학생들의 등교시간을 2학기부터 9시로 늦추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그 타당성이나 수용 여부를 놓고 논쟁이 제법 일고 있다. 아침밥을 가족들과 함께 하고, 수면시간을 좀 더 확보하자는 데 그 주장의 이유가 있다. 반대론자들은 이른 등교시간에 익숙한 학생과 학부모의 생활방식에 큰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에 엄청난 혼란이 예상될 뿐만 아니라, 등교시간은 교장의 권한이므로 교육감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아이들의 ‘체내 시계’와도 더 어울리는 9시 등교

‘아침형 인간’에 대한 대중과 기업의 인식이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전혀 묻지 않은 채, 수업에 필요한 사항을 오랫동안 비교육적으로 획일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몰인권의 인식이 이데올로기화해왔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충분한 수면시간을 확보한 아이들의 학업성적이 우월하다는 국내외의 연구결과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다. 더욱이 수면시간의 부족은 대체로 이른 기상시간에서 초래되는 것이라고 하며, 이른 기상 및 등교시간으로 인한 수면 부족이 청소년의 인지 및 비인지적 측면에서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저해하거나 유의미한 관련성이 없다고 한다(김영식 외, 청소년기 학생들의 이른 기상효과 분석 연구, <교육과학연구> 제44집 제3호, 2013 참고).

아침에 등교에 지각하여 달려가는 학생들
아침에 등교에 지각하여 달려가는 학생들ⓒ양지웅 기자

이는 결국 학습 외에도 학교생활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배경이 된다고 한다. 특히 시간생물학을 연구하는 틸 뢰네베르크의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유영미 역, 2010)에 의하면, 성장기 아이들의 체내 시계는 얼마간 늦어지는데 스무살경 그 늦어짐의 절정에 이르며, 사춘기와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생물학적으로 저녁형 인간의 시간유형을 가지므로 이들의 시간유형에 맞추어 등교시간을 늦추어야 한다고 하고, 10대 후반에 이르러 특히 늦어지는 시간유형을 고려하여 수업 시작을 1시간 늦추었더니 청소년들의 출석률, 성적, 의욕, 심지어 식습관 등 여러 가지가 크게 개선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반박할 연구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폭풍성장’하는 10대 후반의 청소년에게 9시 등교 정책은 충분한 수면을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방안이 될 것이다.

문제는 반대론자들 역시 ‘9시 등교’가 아이들에게 충분한 수면을 제공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 정책을 지금 당장 수용할 수 없는 까닭들을 나열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 논쟁의 핵심은 ‘9시 등교정책’ 자체의 타당성을 둘러싼 갈등이 아닐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새 회장으로 진보교육감이 추대될 정도로 개혁성향의 교육감들이 압도적 다수를 형성하는 지방교육자치의 연합세력들이 교육부와 맞서게 된 교육정세의 반영이다. 동시에, 지방교육권력의 교체와 변화에서 소외될 수 있는 학생의 인권문제가 뒤섞이며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교장의 권한, 사회적 어려움보다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이 먼저

치열한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 현실에서 수면 부족 해결과 아침밥 보장은 9시 등교라는 단편적 접근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식의 폄하도 있지만, 반대론자가 외치고 싶은 진심은 교장의 권한을 교육감이 침해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이제 다수를 차지하게 된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이 학생들의 인기에 영합하여 교장의 권한을 정면으로 침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수업이 시작되는 시각과 끝나는 시각은 학교의 장이 정한다’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의거한 주장이다.

하지만 이 규정 역시 초·중등교육법 스스로 규범목적의 근원으로 삼는 교육기본법 제9조를 존중하여야 한다. 즉 ‘학교교육은 학생의 창의력 계발 및 인성 함양을 포함한 전인적(全人的) 교육을 중시하여 이루어져야’ 하므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10대 후반 청소년들의 전인적 성장을 위한 생물학적 고려를 중시하여야 한다. 특히 수업개시의 시각을 정하는 문제는 결코 사회적인 결정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수업시간을 늦추면 온라인게임만 더 하거나 새벽 사교육이 활개칠지 모른다거나 학부모의 출근과 학생들의 생활패턴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등의 사회적 우려는 결코 고려될 수 없다. 더욱이 ‘유엔 아동권리협약’ 4대 원칙이나 유니세프의 ‘권리에 근거를 둔 아동친화적 학교의 특성체크리스트’에 기초하여 국내 연구팀이 만든 ‘인권을 존중하는 학교문화의 열쇠말 10가지’(진영종 외, 인권친화적 학교문화조성을 위한 지침서, 2007) 중 하나인 ‘감당할만한 교육’ 내지 ‘교육의 수용가능성’을 고려하면, 학생이 신체적‧정신적‧정서적‧물질적‧문화적으로 감당할만한 교육이 되기 위해서라도 10대 후반의 학생들에게 1시간 늦은 등교는 학생인권을 진전시키는 획기적인 정책이 될 것이므로 그저 교장의 고유 권한이라는 썩어문드러진 법전을 껴안고 있기에는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에 필요한 귀중한 고민을 놓칠 수 있다.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뒤 환호하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뒤 환호하고 있다.ⓒ뉴시스

한편 9시 등교정책을 진보교육감 측이 아니라 교육부가 선도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현 정부가 내세운 중학교의 자유학기제를 교육개혁세력이 선호하며 실천하는 것처럼, 아마 9시 등교정책을 교육부가 기획하였더라도 교육개혁세력이 지지했을 것이다. 물론 반대론자들에게 보수진보의 이분법으로 된 색안경을 벗고 9시 등교정책을 제대로 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진보교육감 측의 번득이는 기획사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휴식권 보장의 문제, 수면권을 포함한 건강권의 문제, 과도한 학습노동의 문제 등을 모두 아우르는 담론을 넓고 깊게 실천적으로 이끌어야 함이 먼저일 것이다. 학생인권은 결코 ‘학생인권조례’나 그런 법률이 성문화된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셈이다. 또한 9시 등교정책은 등교 직전의 ‘시간’을 만들어냄으로써 팽창적 학교교육의 만능주의를 재고하는 계기도 되므로 학생인권의 논의가 청소년인권의 담론으로 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모습은 오늘날 교실의 단상이 된 지 오래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소외된 아이들의 가장 소극적인 저항일 수도 있지만, 성장하는 몸의 혼란스런 저항일 수도 있다. 책상 앞에서 고개 숙이는 아이들의 ‘기면증’ 현상은 사회적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 본다면, ‘몸만 일어나 있을 뿐 여전히 생리적으로 잠을 자고 있을’ 아이들에게 9시 등교정책은 이들의 전인적 성장에 새로운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학교는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공간이며, 그들은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계기 역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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