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산책22]연우무대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오해와 진실’
극단 연우무대 유인수 대표
극단 연우무대 유인수 대표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김세운 기자

봉준호 감독이 제작을 맡은 영화 ‘해무’의 관심이 비상하다. 이 영화의 뿌리를 들춰보면 의외다. 극단 연우무대 유인수 대표가 공동제작사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는 연우무대의 연극 ‘해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70년대 정부에 대항해 민중의 삶을 창작극으로 만들어 오던 연우무대가 영화 장르까지 확장했다고 하면 놀랄 것이다. 그러나 놀랄 것도 없다. 앞서 520만 관객을 끌어 모았던 영화 ‘살인의 추억’과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 역시 각각 연우무대의 연극 ‘날 보러 와요’와 ‘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척박한 대학로에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을 흥행보증 수표로 만들며 창작 뮤지컬에 청신호를 일으킨 것도 연우무대다. 신춘문예 당선작이지만 외설스런 로맨틱 코미디로 오해 받은 연극 ‘극적인 하룻밤’은 라이센스로 영국 웨스트앤드의 러브콜을 한국 최초로 받기도 했다. 여기까지 공개되면 일각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민중의 삶과 시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집어냈던 연우무대가 영화와 뮤지컬을 하다니. 결국 연우무대도 상업극에 편승 했구나’하고 말이다.

속단은 금물이다. 그 시절 연극인이 사랑했던 연우무대라면 좀 더 집착을 가지고 현미경을 대볼 일이다. 그러면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창단 멤버인 정한용 대표로부터 2007년 공식적으로 대표 자리를 인계받은 유인수 대표의 말을 들어봤다. 그는 연우무대에 과감히 메스를 댄 장본인이다. 변화된 연우무대 중심에 그가 있었던 셈이다. 그를 통해서 연우무대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해는 정말 오해, 진실은 진짜 진실일 수도 있다. 혹은 오해가 진실이고 진실이 오해일 수도 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2000년대 초 연우무대 침체기
유인수 대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
장유정 작가와 뮤지컬 작업, 김민정 작가와 해무

“70년대 서울대 출신이 만든 연우무대는 민중 운동적 성격이 드세긴 했지만 단순히 연극만 하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니었다. 초기엔 그런 연극 모임에서 시작한 건 맞다. 근데 문화 연대 형태가 강했다. 그래서 모두 연극을 하지 않고 민중극이나 전통극으로 한 분파가 나가고, 영화로도 나가고, 김민기 선생님은 극단 학전으로 분파되어서 나가고 이상우 선생님도 극단 차이무로 나가고 김명곤 선생님도 극단 아리랑으로 분파되어서 나갔다. 그게 90년대 초반까지 상황이었다.”

분파된 연우무대는 2000년 초에 침체기를 맞았다. 연우무대 스스로도 그렇게 평가했고 외부에서도 연우무대의 침체기라고 표현했다는 것이 유 대표의 설명이었다.

90년대 중반에 연우무대에 들어와서 배우활동과 살림살이를 맡아했던 유 대표 역시 연우의 침체를 직감했다. 한계도 봤다. 인생의 방향을 찾아가던 그는 연우를 나가서 활동도 했으나 연우가 허덕일 때 중간 중간 돌아와 인공호흡을 했다. 그의 기지 때문인지 아니면 운이 좋았던 것인지 연우는 숨통을 텄다. 그러면서 그가 느낀 것은 하나였다. “바뀌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2004년 그는 프로듀서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 연우 밖으로 나가 독립 기획사를 만들었다. 정한룡 대표가 과거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 대표가 독립 기획사를 운영하며 쌓은 뮤지컬 프로듀스 경험이 새 열매를 맺을 것이다”라고 예언한 것은 적중했다. 그의 프로듀스 경험은 현재 연우무대를 새로운 연극의 장, 뮤지컬, 그리고 영화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2005년에 연우는 힘들어 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 당시 연우를 없애자고 이야기 한 건 저였다. 없애는 게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책임지는 사람만 힘들고 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대표님과 선배들은 연우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대표직을 받고 스타트 했다. 당시엔 뮤지컬이 상업극으로 여겨졌고 더군다나 연우가 해서는 안 되는 그런 개념이었다. 하지만 전 얼마든지 성과가 있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있다고 판단해서 장유정 작가와 뮤지컬 작업을 시작했다. 또 다른 스타트는 ‘해무’를 쓴 김민정 작가와 지금은 너무 유명한 고연옥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김민정 작가와는 ‘해무’를 스타트 했고 고연옥 작가는 이미 김광보 연출님과 함께 작품을 한다고 해서 하질 못했다. 그래서 민정 작가와 제가 ‘해무’를 잡고 2년 반 동안 만들어 나갔다. 해무는 당초 영화를 만들 목적이었던 작품이었다.”

극단 연우무대 유인수 대표
극단 연우무대 유인수 대표가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김세운 기자

기존 극단의 시스템 보다는
프로덕션 시스템과 극단 시스템의 중간 형태
공연계의 YG...창작자의 작품세계를 보완해 주는 형태의 프로듀싱

‘연우가 뮤지컬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공연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표직을 맡자마자 뮤지컬에 문을 두드린 이유가 있다. 기존 극단 시스템이 이제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저는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극단의 체제를 싫어했다. 이제 그런 개념이 안 맞다고 생각했다. 저도 배우 출신이라서 그 시스템이 편하기보다 힘들다고 생각했다. 극단 시스템 보다는 배우들이 프리하게 움직이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흰 프로덕션 시스템과 극단 시스템의 중간 형태를 취했다.”

프로덕션이면 프로덕션이고, 극단이면 극단이지 프로덕션 시스템과 극단 시스템의 중간 형태라고 하면 잘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한 작업을 완성시키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창작자가 작품을 가져오면 소위 ‘상업적 라이센스’ 식으로 가져와서 판매를 하는 형식이 아니다. 돈 되면 하고, 돈 안 되면 안 하는 식이 아니라는 소리다. 대신 그는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함께 만들어 나간다.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기본 작업만 2~3년 함께 차근차근 함께 한다. 김민정 작가의 해무도 그런 식으로 해서 연극, 그리고 영화까지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순도 100%의 공동창작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창작자와 소통하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드는데 노력한다. 대부분의 제작자에게선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다른 곳과 다른 것은 프로듀서면서도 창작 프로듀싱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지금 대학로는 대부분 작가가 작품 가져오면 지원금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못하는 시스템이다. 저는 창작자가 작품이 있거나 아이템을 가져오면 거기서 이야기를 한다. ‘아 그거 재밌겠다’ 하면 같이 하자고 한다. 초고가 나와도 필요하면 오랜 작업 시간을 함께 한다. 그렇게 해서 이양구라는 친구도 2010년에 연극 ‘일곱집매’를 시작했다. 그 작품은 2010년에 준비한 거다. 원래 일곱집매가 아니고 더 큰 작품이었는데 그 작품을 위해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한 2년 동안 했다. 그것으로 워크샵으로 하고 싶다고 해서 일부 중에 한 것이 2013년 무대에 오른 일곱집매다. 그게 서울연극제(우수상 연기상 수상)에 간 거다. 이양구 작가와는 보통 그렇게 작업을 한다. 그런 식으로 계속 창작자들과 작업을 한다.”

이러한 면모 때문에 그에겐 ‘공연계 YG’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창작자의 성향이나 작품 세계를 더 보완해 주는 형태를 프로듀싱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 등이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 속속들이 성공 가두를 달리면서 비판적이었던 기사도 바뀌었다. ‘연우무대마저 상업극으로 가버리나’에서 ‘연우가 한국 창작 뮤지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식으로 말이다.

연극 부문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엿보인다. 연극 ‘인디아 블로그’를 시작으로 ‘터키 블루스’까지 새로운 연극의 장을 열어나가고 있다. 초반엔 반향이 컸다. 연우의 여행 시리즈 같은 작품이 어떻게 연극이냐는 것이 반기의 골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를 넘어선 상태고 여행시리즈는 연극이 조금 더 무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파급력도 있었다. 실제 배우이자 프로듀서인 김수로는 연극 ‘인디아 블로그’를 보고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단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김수로 프로젝트 5탄 ‘유럽 블로그’다. 물론 성격은 다르다.

앞으로 연우는 공연에선 크게 확장시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작품이 오랫동안 공연되길 바란다’는 모토가 어느 정도 성사돼 오픈런과 레파토리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좋은 공연이 있으면 그 다음 단계의 프로듀싱을 함께 할 예정이다. 특히 뮤지컬 부문에서 그렇다. 좋은 뮤지컬 작업은 투자자본과 프로듀싱을 통해서 확장, 해외로 진출시키는 것까지 염두해 두고 있다. 이미 일본으로 진출하고 중국도 이야기 중이다. 

연우무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연우무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를 더 사랑하는 그는 공연계의 YG 행보를 이어 나갈 예정이다.

“전 프로듀서다보니 창작자와 협업하길 바란다. 영화나 뮤지컬 쪽으로 계속 가는 이유가 단순히 누가 가져온 것을 제작하고 수익을 내는 게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같이 새로운 꿈을 꾸고 그 꿈을 도전해서 구현해 내고 그 결과로 행복해지는 것을 원해서 그런 거다. 그런 과정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작업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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