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산책24]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 연극의 힘...‘밀양연극촌’의 비밀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한국 연극계의 거장 이윤택 연출가가 창단한 ‘연희단거리패’는 그간 연극 ‘오구-죽음의 형식’ ‘산씻김’ ‘어머니’ ‘시민 K’, ‘햄릿’ ‘문제적 인간 연산’,‘아버지를 찾아서’ 등 숱한 화제작을 선보였다. 마치 한 사람의 인생 조각을 뚝 떼어 놓은 듯한, 무대와 객석을 관통하는 작품들을 수 십 년간 올릴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 힘의 중심엔 ‘연극 공동체’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실제로 가능한 연극 생존에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척박한 연극계에서 연극과 삶이 하나가 된 ‘밀양연극촌’을 일궜고 이를 통해 관객에게 연극을 스며들게 하고 있는 ‘연희단거리패’의 이야기를 김소희 대표의 입을 통해 들어봤다.

이윤택 연출가가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극찬한 배우 출신의 김소희 대표는 1994년 연희단거리패가 서울에 ‘우리극연구소’를 창단했을 당시 이 연출가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2008년엔 대표를 맡게 됐다. 당초 연희단거리패 선배들이 돌아가면서 2년씩 맡기로 했지만 현재까지 대표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이윤택 선생님의 페르소나라서 지금까지 대표직을 맡는 건 아닐까요”라는 진담어린 농에 “과연 그.럴.까.요”라는 재치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찌됐거나 김 대표의 입을 통해 훑어보는 연희단거리패의 역사는 삶과 연극이 합치되는 순간순간들로 맞물려 있었다. 연희단거리패의 작품이 한 번 보면 가슴에 콕 박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하나 씩, 하나 씩 드러났다.

“이윤택 선생님이 신문기자 생활을 하셨고, 시인, 문학 분야 평론도 하셨다. 20대 초반에 ‘연극을 해야지’하는 생각이 있으셔서 부산에서 연출, 제작, 주연을 하시고 그랬다. 어릴 때 만드신 거니까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일 수 있겠다 하여 연극을 안 하셨다. 그러다가 글을 쓰고, 문학 쪽에 있다가 ‘문학은 혼자 하는 것이지만, 연극은 함께 만들 수 있으니까 더불어 함께하는 연극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으셨다. 그리고 나서 86년에 부산에서 ‘가마골 소극장’을 만드신 거다. 그것이 시작이다.”

연희단거리패의 이름만 살펴보면 전통연희와 마당극만 할 것 같다. 영문 표기로 ‘Street Theatre Troupe’로 표기 되기도 한다. 하지만 ‘Street Theatre’라는 표현은 해외에서 실내공연을 하지 않는 극단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어서 ‘Theatre Troupe Georipae’로 혼용, 조금씩 바꿔가는 중이다.

“연희단거리패의 의미는 연희를 하는 단체라는 뜻이다. 저흰 어디서나 공연을 할 수 있는 단체다. 그게 거리든, 무대든, 외국이든, 어디서나 ‘딱’ 피면 할 수 있는 것을 꿈꾸기도 하는 거다. 마치 유랑극단처럼 말이다. 사실 저희가 지금 부산, 서울, 밀양에서도 공연을 한 게 그런 거리패 성격이란 잘 맞지 않을까 싶다.”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연극의 저변을 확대하는 작업 많이 해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연극계가 아껴줘야 할 축제

이 때문일까. 이들이 하는 연극 작업도 눈길을 끌었다. “저희가 하는 연극 작업엔, 극장 들어가서 작품 딱 보고 끝나는 그런 단순한 연극이 아니라 좀 더 열린 연극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연희를 하면서 거리를 다닐 수 있는, 실제로도 저변을 확대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실제 연희단거리패의 무대는, 공연이 끝나면 관객과의 호흡도 끝나버리는 식이 아니다. 삭막한 일상에 연극이 은연중에 녹아들 수 있는 작업을 많이 한다. 그 일환 중에 하나가 밀양연극촌 문화체험이다. 연극관계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어린이 연극캠프를 통해서 어린이들은 연극을 실제 만들며 피부로 느낀다. 또한 일반인들도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이 실제 생활하고, 식사를 하고, 연극 연습을 하는 작은 연극 공동체를 만나볼 수 있다.

이 가운데 핵심은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이하 밀양축제)다. 2001년 시작된 밀양축제는 올해 14살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젊은 연출가전’을 통해서 젊은 연출가와 연극인들을 발굴, 스스로를 점검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등용문으로서 역할하고 있는 것이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연극계에서 정말 아껴줘야 할 축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행정적인 것을 떠나서 철저히 연극이 중심이 된, 인간이 중심이 되고, 연극을 하는 사람, 보는 사람들끼리 정말 ‘힐링’ 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관객과 가장 이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축제가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다.”

오태석, 손진책, 김광림 등 연극계 거장들도 올해 밀양축제를 다녀갔다. 14살이라는 축제 나이가 무색치 않게 성장하여 이들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거장뿐만 아니라, 눈여겨 볼만한 점은 관객이다. ‘심심한데 연극 한 편 볼까’,‘공짜 표가 생겼는데 연극 볼까’가 아니라 진짜 연극을 즐길 줄 아는 관객들이 모였다. 연극의 힘을 경험해 본 관객들이기도 하다. 연극의 가치를 알고 믿는 이들이기도 하다. 실제 언론 보도에도 나왔지만, 올해 장마가 잦아서 비가 엄청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밀양축제 관객들은 속옷이 다 젖을 정도로 함께 즐기고 기립 박수를 보내줬다. “재밌잖아요!”라고 소리쳤단다. 비 때문에 관객이 가버릴 거란 건 기우였다. 연희단거리패가 14년간 일군 결과다.

“지방에서 온 관객들이 밀양관객이 최고라고 한다. 연극에 대해 전문적인 정보를 안다기 보다 연극을 보는 태도, 연극을 즐길 줄 아는 마음가짐을 잘 아는 최고의 관객이다. 밀양축제의 관객들은 연극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연극을 어떻게 봐야 서로 행복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은연중에 그런 게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공연이 끝나면 관객도 배우도 너무 행복하고 스스로 뿌듯해지는 거다. 벌써 축제가 14년인데 고생해서 형성된 기간이 축적되어 관객과의 진정한 소통이 형성된 것 같다. 스크린에서 느낄 수 없는 소통과 치유의 힘을 느끼게 하는 역할을 밀양축제가 계속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다른 하나는 밀양축제에서 진행하는 ‘젊은 연출가전’이다. 밀양축제에서 상 받은 작품이 서울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올해 12월에 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젊은 연출가와 배우가 발굴 되서, 젊은 연극인들이 대학로에 들어와서 어떤 기회를 받고 스스로 점검할 수도 있다. 또 연극인끼리 서로 만나고. 그런 소통도 한다. 밀양축제가 그런 연출가들을 위한 놀이터와 같은 장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삶과 연극의 조화로운 합체...‘밀양연극촌’
연극이 살아남을, 현대인과 함께 가는 방법 중에 하나는...
삶과 연극이 함께 가는 것

밀양축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밀양연극촌’이다. 매년 밀양여름공연축제를 여는 곳이 밀양연극촌이기 때문이다. 연희단거리패의 본부이자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1999년 10월 30일에 개관한 밀양연극촌은 삶과 연극이 결합된 마을이다. 이곳은 연극 제작 공동체를 넘어서 삶의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극의 생존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초다.

밀양연극촌엔 연희단거리패 단원 7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혈연을 맺은 가족관계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연극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관계를 맺은 공동체이기도 하다. 특히 결혼한 단원에게 밀양연극촌 안에 있는 작은 집도 마련해 준다. 단원이 공동으로 쓰는 공간도 있다. 이윤택 예술감독과 그의 가족들이 사는 ‘월산재’도 있다. 이 밖에도 게스트하우스, 식당, 우리동네극장, 가마골소극장, 스튜디오극장, 연극도서관, 성벽극장, 녹음 스튜디오, 김대성 사택 등이 들어서 있다. 김 대표는 “밀양 연극촌은 70명 정도 되는 대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김광림 선생님이 밀양연극촌을 보시고 ‘전국에 이런 곳이 열 곳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연극은 살아날 텐데’라는 이야길 하셨다. 밀양 연극촌은 연극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대 사람들로부터 별개가 아니라 같이 가는 ‘어떤 것’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다. 물론 여러 가지 방법 중에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연극도 있다. 보통 연극하면, 끝나면 그냥 집에 가고, 하루에 몇 시간 연습하고 헤어지고 하는 방식인데 ‘그렇게 하는 것만이 연극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연극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라는 것을 생각을 하다 보니 저희 같은 경우엔 삶과 연극이 함께 가는 것을 본 것이다.

실제 밀양 연극촌엔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많이 한다. 직접 연극을 경험하는 거다. 연극엔 다양한 종류가 많다. 아마추어 연극도 연극이고 대극장 연극도 연극이며 야외연극도 연극이다. 그런 다양한 층에서 배우와 관객이 연극을 경험할 수 있고 그런 식으로 삶 속에 스며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트머스 종이에 액체가 스며들어가 색깔이 점점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연극을 보고 그냥 공연이 끝나는 게 아니라 관객이 무대 위 배우에게 말을 걸 수 있고, 자신의 생활을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있고, 그것을 다시 일상생활 속에서 반추할 수 있고 특별한 친밀감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을 새롭게 연극이라고 한다면 연극은 어쩌면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것이 저희가 생각하는 연극이 살아남고 의미 있는 다른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밀양연극촌을 중심으로 연극에 대한 저변 확대는 해외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이윤택 연출가가 해외로 나가 현지 배우들을 상대로 연기 워크샵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 또한 2003년 독일 탈리아극단 출신인 볼리비아 국적의 실비아 수바르츠와 독일인 와라가 밀양연극촌에 한 달 가량 상주하며 한국배우 정동숙과 함께 ‘하녀들’(장주네 작, 이윤택 연출)을 무대에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타국 연극인들과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밀양여름공연축제 때에도 그랬고, 올해 후반기엔 독일 연출가 알렉시스 부크와의 작품도 계획 중에 있다.

연희단거리패는 앞으로도 연극의 열린 형태, 다양한 형태를 추구하며 자신들의 삶과 관객의 삶에 연극이 친밀하게 스며들길 원한다. 연극은 연극이고 삶은 삶이 아니라, 그것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연극을 위해서다. 이를 위해 한 쪽으로는 수평방향으로 넓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좀 더 절대적인 연극적 미학을 위해 깊이 파 내려가는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연극의 한 쪽은 절대적인 미학을 계속해서 만들 것 같다. 절대적인 미학이란 저희의 ‘메쏘드’(방법)와 관계된 것이다. 이윤택 선생님이 연기 ‘메쏘드’를 포함해 연극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만들고 계신다. 그런 것들을 좀 더 절대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 다른 한 쪽은 수평적으로 넓히는 방향이다. 저변을 확대하고 개념을 넓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즉 한 쪽으론 수직으로 깊이 파고 다른 한쪽으로는 넓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그게 동시에 돼야 하냐면, 한 쪽만 하면 평범해지고 아니면 굉장히 좁아지고 그런 식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뤄지는 그런 작업을 계속 지향할 것 같다.

마지막으론 레퍼토리 안정화다. 저희는 언제든지 공연 가능한 레퍼토리인 ‘아버지를 찾아서’,‘셰익스피어의 모든 것’,‘하녀들’,‘수업’,‘억척어멈’,‘햄릿’,‘어머니’,‘피의 결혼’,‘오구’ 등 많다. 많지만 그것들을 안정시켜서 언제든 공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저희 과제다. 사실 그것이 극단이 살아남을 길이다. 관객에게 만족감을 주고 계속 공연될 수 있는 좋은 레퍼토리를 훈련해서 만드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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