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 칼럼] ‘빨간 딱지’ 부르는 초이노믹스

세월호 특별법의 국회 대립시 계류 중인 민생법안을 만들어야한다고 국면전환을 꾀했던 최경환 장관이 취임한지 100일이 넘었다. 그런데 ‘민생살리기 법안’을 국민의 감성에 호소했던 송파 세모녀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나를 슬프게 한다. 뉴스에는 “인천 남부경찰서는 지난달 30일 오전 11시50분쯤 인천시 남구의 한 빌라에서 ㄱ씨(51), 부인 ㄴ씨(45), 딸 ㄷ양(12)이 숨져 있는 것을 ㄷ양의 담임교사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전했다.

특히 나는 그들의 생활고보다 12살짜리 딸이 유서에 “그동안 아빠 말을 안 들어 죄송하다. 밥 잘 챙기고 건강 유의해라. 나는 엄마하고 있는 게 더 좋다.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할 것이기에 슬프지 않다”고 썼다는 대목에서 슬프다. 그렇게 국민과 야당을 강박하려 했던 민생법안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손 놓고 있었던 서민의 삶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서민들의 삶은 아직도 세월호에 갇힌 꼴이다. 법이 없어서라고 하기에는 서민의 삶이 너무나 심각하다.

그들의 죽음 뒤에는 어쩌면 ‘빨간 딱지’의 공포가 있지 않을까. 40대 이상이라면 많이 들어봤음 직한 ‘빨간 딱지’라는 말이 있다. 어렸을 적 어려운 가정형편의 레퍼토리에 자주 등장한다. 가끔 연예인들도 TV에 나와서 힘들었던 과거를 말할 때면 으레 아버지의 부도와 함께 집안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어있었다는 ‘공포’를 고백한다. 빨간 딱지는 더 이상 빚을 갚을 능력이 없어서 빚쟁이들이 최후에 돈이 될 만한 모든 물건을 차압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일종의 ‘낙인’이다. 경제적 파산 선고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굴욕과 절망의 파산 선고를 받게 된다. 채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도 추락을 깊이 체험하는 것이다.

빨간 딱지를 경험한 이들에게 ‘빚쟁이’라는 말은 공포에 가깝다. 빚쟁이가 찾아오거나 빚쟁이에게 협박을 당한 경험은 절대로 빚을 지고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낳기도 한다. 남한테 돈을 빌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는 이들을 만나곤 한다. 그러나 현대 금융사회에서는 빚을지지 않고 사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9월부터 연내에 정책자금을 36조원에서 41조원로 늘려 투입하기로 했지만 그 투입 내용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정책자금은 정부의 정책의 방향을 가름짓는 자금이기에 최경환 경제호의 방향을 알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추가 투입되는 5조원에 송파 세모녀 사건 운운하며 법안 통과를 압박하던 최경환호의 의지는 어디에도 볼 수 없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최경환 경제부총리ⓒ양지웅 기자

정부 추가예산 5조원, 어디에 쓰이는가?

돈이 있어야 쓰는 것 아니겠는가? 우선 정부예산 연내 5조원 마련 부분을 살펴보자.

“기금지출, 공공기관 투자 등을 1조4000억원 늘리고, 설비투자펀드·외화대출의 연내집행을 3조5000억원 확대함으로써 정책자금 패키지 중 연내 집행액이 당초 26조원에서 31조원 이상으로 확대되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기금과 공공기관투자와 같은 사업비 예산지출과 정책자금인 설비투자펀드와 외화대출의 연내집행으로 5조를 확보하겠다는 방식은 장기적인 재원조달 방안 없이 가용자원으로 우선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재정운용의 유연성을 재고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가재정운용의 장기적 방향이나 시스템과 같은 제도 구축에는 역행한다.

둘째, 그러한 재정으로 정책투입되는 분야는 코미디에 가깝다. 개인이 긴급히 자금을 활용하더라도 가장 우선순위가 되는 곳에 자금을 쓰려고 한다. 하물며 국가재정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 그 순위가 면세점확충과 중소기업 자금 지원, 그리고 대학생 기숙사건립 등이란다.

물론 중소기업 정책자금지원이나 지방 대학생을 위한 기숙사 건립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것이 우리경제와 사회의 시급한 과제가 맞냐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긴급히 필요한 정책적 과제가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부자증세 등과 같은 소득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재정조달방식의 아쉬움이야 그렇다 치고 재정활용이라도 소득불평등개선에 맞춰져야 하는 것 아닌가?

경제를 살린다? 누구의 경제를?

인천 세가족의 자살소식은 앞으로 DTI, LTV 규제완화를 통한 부채에 기반한 초이노믹스의 결과를 미리 보여준다. 물론 인천 세가족의 자살이 직접적으로 초이노믹스 때문에 야기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갈 것이다.

중산층 샐러리맨의 부채를 통한 욕망해소과정에서 경기가 어려워지면 진행될 극단적으로는 정리해고의 불확실성의 존재는 점점 우리의 삶을 옭아매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아파트 구입에 따른 담보대출, 자동차 구입 대출, 육아 및 교육비용 등은 직접적인 소비에 해당된다. 그 외에도 여행이나 문화생활 등도 무시할 수 없는 지출비용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번다.

하지만 점차 이러한 노동은 삶의 총체적 과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리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아울러 현대인의 노동은 상대적으로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사회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의 경우 즐거운 행위가 아니라 마지못해 하는 힘든 고통이 되고 있다. 그렇게 되는 결정적 이유는 임금격차 혹은 자본창출의 규모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처럼 부동산이나 주식 등을 통해 자본을 획득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행하고 있는 일상적 노동행위는 점차 가치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는 일반론적 이야기지만 초이노믹스는 노동가치의 하락을 통한 서민경제 죽이기, 다시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을 부채로 옭아매기, 빨간딱지의 사회로 되돌리는 것이다.

과연 초이노믹스에 의한 내 삶은 안전한가를 반문하며 경제수장으로서 최경환장관의 성장지향경제정책에 딴지를 걸어본다. 이제는 빨간 딱지의 경제를 벗어나서 서로의 삶이 행복한가를 확인할 수 있는 경제를 열어젖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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