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자본의 손’ 들어준 대법원 판결,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눈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무효소송 최종 판결이 있던 13일 오후 2시. 대법원 앞은 50여 명의 쌍용차 노동자들과 그 보다 더 많은 취재진들로 북적였다. 초겨울 들어 처음으로 영하까지 떨어진 기온과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 때문인지 노동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대법원 판결을 기다고 있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법원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만큼 노동자들은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며 기대에 찬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대법원 안에서 들려오는 한탄 섞인 흐느낌에 곧바로 깨졌다. 판결을 기다리던 해고 노동자들은 굳어진 표정으로 법정 출입문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5분 뒤 눈물을 흘린 듯 충혈된 눈의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이 법원 밖으로 나왔다.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듯 울먹이는 김 지부장의 입에서 "원심 파기 환송"이라는 말이 나오자 '설마'라며 불안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던 몇몇 해고 노동자들도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그들이 느끼는 슬픔과 분노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정리해고 유효 판결 취지 대법원 판결에 눈물 흘리는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
13일 오후 서초구 대법원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는 판결을 내리자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과 주봉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대법원을 나서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이날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노모(41)씨 등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국제금융위기와 경기불황에 덧붙여 경쟁력 약화, 주력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세제 혜택 축소, 정유가격 인상에 따른 판매량 감소 등 계속적·구조적 위기가 있었다"면서 "해고를 단행할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존재했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의 적정 규모는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만큼 경영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사후 노사 대타협으로 해고인원이 축소됐다는 사정만으로 사측이 제시한 인원 감축 규모가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회사가 정리해고에 앞서 부분휴업과 임금 동결, 순환휴직, 사내협력업체 인원 축소, 희망퇴직 등의 조치를 한 만큼 해고회피 노력도 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쌍용차 정리해고 소송의 핵심 쟁점은 ▲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는지 ▲ 회사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 했는지 등 근로기준법 24조를 준수했는지 여부였는데 해고된 이후 고통 속에 살아온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사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44년 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날이자 쌍용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파업을 시작한지 2002일째 되는 날이었다.

대법원 나서는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
13일 오후 서초구 대법원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과 조합원들 변호사가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김철수 기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예상치 못했던 판결…그래도 끝난 건 아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예측하며 인터뷰를 약속했던 해고 노동자 이계진(39)씨는 전혀 예상치 못한 판결 이후 말없이 담배만 태웠다. 누구보다 애타게 이번 상고심 판결을 기다려온 이씨는 "사회 정의는 죽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늘 대법원 판결이 있기 일주일 전부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드디어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제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소주를 3명이나 마시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어요."

이씨는 판결 전 기자와 나눈 대화에서 대법원이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밤마다 잠을 설쳤다"는 이씨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마냥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희망찬 대화가 오간지 채 30분이 지나기도 전에 이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오히려 충혈된 두 눈이 차마 말 못하는 이씨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지난 6년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누구도 상상하기 힘들 만큼 많은 아픔을 겪어왔다. 이들은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자살이나 질환 등으로 25명의 동료와 가족들이 죽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동시에 생계를 걱정하며 일거리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그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복직'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기대를 단숨에 꺾어 버렸다.

"오늘 아내에게 소주 한 잔 하고 들어갈 거라고 말하고 나왔어요. 아내도 회식이 예정돼 있었든요? 결과가 좋으면 자기도 술 한 잔 할 거라고 했죠. 아내와 방금 통화를 했는데 힘이 많이 빠졌더라고요. 솔직히 지금 저도 아내도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 기대했던 결과가 너무 황당하고 예상치 못하게 나왔으니까요."

이씨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며 다시금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고 한숨을 내쉬며 대법원 건물을 바라봤다.

"그래도 다 끝난 건 아니죠. 그냥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해요. 물론 쉽지 않겠죠. 1심을 2심에서 뒤집었고 그걸 다시 대법원이 뒤집은 거니까요. 힘든 싸움이겠지만 지부 결정에 따라 제가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최선을 다해 봐야죠."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계진 씨
13일 오후 서초구 대법원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는 판결을 내린 가운데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계진 씨 담배를 피고 있다.ⓒ김철수 기자

"반드시 승리해 공장으로 돌아가겠다. 쌍용차 노동자 잊지 말아 달라"

대법원을 빠져나온 쌍용자동차지부는 오후 2시 30분께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은 "많은 해고자들이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 했다. 6년간 벼랑 끝에 서 있는 노동자들에게, 대법원은 오늘 대못을 박았다. 사측은 대법관 출신을 포함한 19명의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렸고 '전관예우'라는 관행이 발목을 잡았다"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사법부가 친자본, 반노동 입장으로 우리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 모는 것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또 김 지부장은 "판결 직후, 주변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이는 분노의 눈물이자, 6년을 버텨왔던 것처럼 또 다른 행동을 결단하기 위한 투쟁의 눈물로 봐 달라”며 “빠른 시일 내에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또 다른 결단을 하겠다. 반드시 승리해 공장으로 돌아가겠다. 우리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원고측 법률대리인인 김태욱 변호사는 “모든 재판에는 입증 책임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소송 중에 유형자산 손상차손 과다계상문제와 인력구조조정 문제 등의 입장이 계속 바뀌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에서 회사 측 주장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파기환송이 되더라도 심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관계를 밝혀낼 경우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 특히 고용안정협약을 위반한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법원 판시가 있다"며 "이번 재판에서는 노조가 고용안정협약 부분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에는 회사가 내팽개친 고용안정협약 문제를 중심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쌍용차지부는 조만간 회의를 통해 향후 투쟁 계획을 수립·발표할 계획이다. 노동자의 고통은 덜지않고 자본의 입장만 대변한 판결에 눈물 흘린 노동자들은, 서로 보듬고 눈물을 닦아주면서 2003일째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쌍용차 대법원 판결 입장 밝히는 김득중 지부장
13일 오후 서초구 대법원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내는 판결을 내리자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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