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차별금지’에서 막힌 서울시민 인권헌장

서울시가 추진하던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이 사실상 무산됐다.

서울시는 지난 8월부터 안전·복지·교육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서울시민이 누려야 할 인권적 가치와 규범을 담아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추진해왔다. 지역, 성별, 연령 등을 고려해 무작위 공개 추첨한 서울시민 190명을 시민위원으로 위촉, 6차례 회의를 개최해 인권헌장 문안을 만들었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150명 시민위원들이 함께 만드는 인권규범이라 세간의 관심과 기대를 받아왔다. 그런데 그 탄생을 코앞에 두고 무산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시민위원회는 표결로 인권헌장 문안을 최종 확정 짓고자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만장일치 합의가 아니면 선포할 수 없다며 돌연 태도를 바꿨다. 이미 진행한 투표에 대해서도 정족수 운운하며 최종 공포를 미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12월 10일 세계인권 선언일에 맞춰 발표 예정이었던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사실상 폐기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서울시는 합의 방식을 문제 삼았지만 ‘성소수자 차별 금지조항’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인권헌장을 만들겠다는 서울시가 넘지 못한 조항은 바로 ‘차별금지’를 다루는 제4조이다. 인권단체는 ‘성별ㆍ종교ㆍ나이 등 차별금지 사유와 함께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적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소수자 혐오세력은 이 조항을 두고 박원순 시장이 동성애 합법화를 추진하는 것이라는 억지를 펴며 인권헌장 제정 자체를 흔들었다. 이들은 지난 21일에 열린 인권헌장 공청회 행사장에 난입해 “시민헌장 폐기하라”, “에이즈 아웃”, “빨갱이는 물러가라”, “동성애 옹호하는 박원순 물러나라”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결국 성소수자 인권 조항에 부담을 느낀 서울시가 인권을 놓고 흥정을 하는 모양새다. 서울시는 타협의 여지가 없는 인권의 원칙을 저버리고 인권헌장을 만들지 못한 책임을 시민위원회에 미루며 퇴로를 찾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성소수자의 인권도 지켜주지 못하는 마인드로 서울시민 전체의 인권을 논하겠다는 것인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그것도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한테서 말이다.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성소수자들이 사회적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법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에서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 서울시가 성소수자들의 성적 지향을 인정하는 것이 상위법에 위배하거나 상호충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권은 생각과 지향이 다른 것이 틀리다는 의미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조건 죄악시 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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