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숙 칼럼] 박원순 시장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반하는 태도를 보며

2014년 11월 28일 ‘서울시민 인권헌장’이 채택됐다. 서울시는 6월 15일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며 인권헌장이 있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이나 광주시와 다르게 서울시 인권헌장은 시민들이 직접 만드는 것이 차별점이라고 홍보했다. 그런데 서울시는 인권헌장이 채택되자마자 “11.28(금) 19시, 6차 인권헌장제정시민위원회에서 합의 도출 실패, 사회적 합의를 통해 헌장을 제정코자 하는 당초 취지와 달리 사회적 갈등 확산”이라는 보도자료를 11월 30일 배포하며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아니 공식적으로 부인하기 전에도 인권헌장 채택을 위한 회의를 폭력적으로 방해했다. 28일 인권헌장 50개 조항 중 미합의된 5개 조항을 표결하는 회의 진행 중 서울시 인권담당관이 인권위원의 마이크를 뺏을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폭력적으로, 발 빠르게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것일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거부하고 있는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무엇인가? ‘'서울시민 인권헌장'’은 50개 조항이고 미합의된 5개 인권조항은 동성애 차별금지가 들어있다. 차별금지 사유를 구체적으로 언급할 것인가 아닌가가 핵심이었다. 논란이 됐던 4조는 아래와 같다.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4조 서울시민은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출산, 가족형태·상황, 인종, 피부색, 양심과 사상,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학력, 병력 등 헌법과 법률이 금지하는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구체적 차별사유를 숨기는 것 자체가 차별

11월 28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인권단체 회원과 시민 등이 인권헌장 제정 촉구 및 성소수자 혐오 규탄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
11월 28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인권단체 회원과 시민 등이 인권헌장 제정 촉구 및 성소수자 혐오 규탄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뉴시스

시민위원들은 만장일치가 안 된 미합의 5개 조항을 표결했고, 압도적 표결로 구체적적인 차별금지 사유를 명시하기로 했다. 동성애 차별 금지 사유를 반대하던 일부 극우 기독세력을 포함한 세력들을 의식해 ‘서울 시민은 누구나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포괄적 문구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구체적인 차별 금지 사유가 명시된 안으로 확정됐다.

언뜻 생각해보면 차별사유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도 차별금지이니 괜찮지 않나 착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권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보장되는 내용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인권은 공허한 장식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권의 역사에서 인권의 목록은 점점 구체화되고 늘어났다. 1966년에 만들어지고 1976년에 발효된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유엔 사회권 규약)에서는 물에 대한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물 민영화로 필리핀 등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얻지 못해 건강권과 식량권이 위협을 받자 2002년 유엔사회권위원회는 물에 대한 권리라는 일반 논평을 발표해 물에 대한 권리가 인권이며 모두에게, 즉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차별 사유가 구체적인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겠는가.

비슷한 일은 2007년에도 있었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을 권고한 차별금지법에는 차별금지사유가 구체적으로 열거되었는데 법무부에서 발의한 차별금지법에는 7개의 사유가 삭제됐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반발했고 7개 사유(성적 지향, 출신국가, 병력, 언어, 가족상황 및 가족형태, 범죄경력에 관한 항목, 학력)가 삭제된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차별조장법이라고 비판했다. 이를 국제사회에 알렸고 2008년 유엔인권이사회 국가별인권상황 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 이하 UPR)에서 여러 국가가 한국 정부에게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 사유가 포함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2012년 UPR 2차 심의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에게 권고했고 정부는 검토 중이라 대답했지만 아직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숨김은 차별이라는 것은 성소수자 차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을 가족들이 창피하다며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했는가. 아니 지금도 왜 불편한데 집에 있지 밖에 다니냐며 빈정대고 있는 현실이다. 동성애 혐오를 공공연하게 하는 세력들의 ‘동성애를 차별하려는 게 아니다. 동성애라고 떠들고 다니지 말라는 거다’라는 말은 조용히 숨어 살라는 주문이다. 구체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차별을 묵인하고 방조하는 일이다. 인권헌장이 법은 아니지만 명문화된 공적 선언이라는 점에서 차별 사유가 가시화되는가(드러나는가), 비가시화되는가(숨겨지는가)는 해당 집단이 공동체 내에서 어떤 취급을 받아야하는지를 공포하는 일종의 공동 기준이다. 따라서 차별사유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차별의 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더구나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명시된 차별금지 사유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명시된 것이기에 추상적으로 차별금지라고 선언한다면 그것은 기존 인권의 가치와 잣대가 뒤로 후퇴되는 것이다. 물론 동성애를 혐오하는 세력들은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도 개정하겠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법 2조 정의
3.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 조건, 기혼ㆍ미혼ㆍ별거ㆍ이혼ㆍ사별ㆍ재혼ㆍ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정한 사람(특정한 사람들의 집단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ㆍ개정 및 정책의 수립ㆍ집행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이하 “차별행위”라 한다)로 보지 아니한다.

인권은 착취당하고 차별받는 자의 입장에 서야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인권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게 인권이라면 그 인권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근대 최초의 인권선언이라는 프랑스인권선언도 부르주아지들의 이해를 중심으로 봉건제도로부터 착취당하는 현실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부르주아지의 인권을 넘어선 선언들이 프랑스대혁명 당시 무수하게 많이 만들어졌고 바를레의 인권선언이나 로베스피에르의 인권선언은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넘어 민중의 입장에 서 있다. 보편적 인간의 권리를 선언하고자 할 때 보편에 포함되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보편의 형식을 띠더라도 보편적 인권이 아닌 것이다. 1948년 선포된 세계인권선언도 전쟁 중 나치의 유대인학살을 경험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듯 인권은 구체적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도출된다. 인권은 존엄함을 부인당한 현실, 부인당한 사람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성소수자, 이주민, HIV/AIDS 감염인을 공공연하게 차별하고 모욕하는 현실에서 그 현실을 담지 못하는 인권헌장은 인권일 수 없다.

인권은 착취당하는 자의 입장에선 것이기에 합의의 영역이 아니다. 인권은 양보하거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이러한 뜻이다. 인권을 다수가 합의해서 정한다는 발상은 인권이 시혜와 동정에 머물 수 있기에 불가능하다. 다만 그 인권의 가치와 잣대를 사회구성원들에게 설득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인권교육에 대한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해당 사회에서 무엇이 인권인가에 대해서는 자신의 처한 위치, 처한 조건에 따라 감도(感度)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당 사회구성원이 무엇이 인권이고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논의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인권에 대한 무수한 논의는 환영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그 논의는 인권의 역사에서 만들어온 그 가치에 기반해야 한다.

서울시 인권토론회 규탄하는 동성애 혐오 보수단체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권중심 사람 앞에서 서울시가 추진 중인 서울시민인권헌장에 동성애 옹호 조항 포함을 반대하며 서울시가 주최한 인권 토론회 진입을 시도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에 맞서 인권활동가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야

사실 필자는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았다. 꼭 있어야 하는 인권운동의 과제로 보지 않았다. 특히 많은 인권 관련 제도들이 운동으로부터 만들어지지 않을 때, 특히 정치인들이 만들 때 치적 쌓기로 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민 인권헌장’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반대하는 동성애혐오세력의 조직적 움직임을 보며 ‘서울시민 인권헌장’에 동성애자 차별금지 조항이 들어가도록 하는 운동에 함께 했다. 혐오세력에게 굴복하지 않는 현실적 최선은 헌장에 구체적 차별금지 사유가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차별을 공고히 하는 인권헌장을 막는 것은 인권운동의 과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5개 합의조항이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이기에 합의되지 않은 것이라 했다. 민주주의를 형식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다수결보다는 만장일치가 더 높은 합의의 수준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지기까지 1천 4백회의 투표가 이루어진 것도 그 까닭이다. 물론 다수결로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결정하겠다는 방식을 정한 사람들도 시민위원들이기에 다수결로 결정한 것이 민주주의에 반하지는 않는다. 또한 서울시가 인권헌장 폐기를 선언하는 보도 자료에 썼듯이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논란과 갈등이 없었던 적이 있는가. 논란과 갈등 속에서도 방향을 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87년 대통령 직선제와 헌법 개정은 엄청난 갈등과 투쟁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오히려 정부가 해야할 것은 갈등과 논란을 피하며 민주주의에 직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민주주의의 내용을 사회구성원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후속조치들을 해야 하는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형식화된 이해만을 강조할 때 현실은 진짜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문제를 낳는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제도나 형태로 이해할 때 민(民)이 주인이 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차별의 구조를 간과하게 돼 결국 힘 있는 자들, 주류의 사람들만이 포괄되는 제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평등을 향한 열정, 민의 운동이며, 평등을 향해 끊임없이 경계를 뚫는 일이다. 따라서 다수결이든 만장일치이든 그 내용이 민(民),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당사자들을 포괄하지 않을 때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더구나 서울시는 시민위원 150명을 추첨으로 뽑고 제정에 함께 전문위원 30명을 포함 180명의 시민위원들이 4개월 동안 6번의 회의를 하고, 두 차례의 권역별 토론회, 9번의 인권단체 분야별 간담회, 그리고 공청회까지 거쳐서 만든 헌장을 그냥 폐기했다. 아니 박원순 서울 시장이 혐오세력으로부터 공격받지 않기 위해서 폐기했다. 150명의 시민위원을 뽑으면서 제안한 역할은 ‘헌장제정 초기부터 헌장 선포까지’라고 했으나 선포의 권한을 서울시가 강탈했다. 이제 더 이상 박원순 시장에게 인권과 민주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공식 선언한 셈이다.

혐오세력에 맞선 운동을 시작할 때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성소수자들은 동성애 혐오세력들로부터 수없이 모욕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기 힘든 차별과 편견의 현실에서 더더욱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어려운 현실임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가슴이 아프다. 이제 학교에서, 직장에서, 집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하면 받을 모욕을 떠올리며 존재를 숨기게 될 것이다. 나아가 성소수자들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공공연하게 지지하기보다는 속으로 지지하게 될 것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은 후퇴되었다. 나아가 혐오세력의 조직적 움직임으로 인권의 가치는 흔들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언제든 다른 소수자들도 공격받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혐오세력에 맞서 인권의 의무를 지켜야할 지방정부가 인권을 내동댕이치는 현실에 분개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이 인권운동은 혐오세력에 맞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실천을 펼칠 것이다.

더 이상 우회할 수 없다. 2008년 즈음부터 발호한 극우세력들이 동성애 혐오를 기반으로 세력화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북 게이’라는 그들의 혐오발언에서 보여지듯 그들이 정치적 조직적 성장을 해온 두 가지 코드- 종북과 동성애-를 우회해서는 풀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많은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무지와 악의적 성서 해석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정치적 지지를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의 보수화만이 아니라 인권의 후퇴로 직결되기에 우리는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성소수자 혐오세력에 맞선 운동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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