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욱 칼럼] 청도 할매들의 치유를 향한 마실길

11월 11일 저녁,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집회를 했다. 그 때 청도 할매들은 처음으로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면했다. 이심전심,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분들은 그냥 서로 부둥켜 안고 한참을 계셨다. 그리고 할매들은 삼평리 조끼에 유가족이 달아준 노란리본을 지금도 소중히 달고 계신다.

할매들이 말씀은 안하지만, 깊은 정신적 상처가 있다. 아니 싸우느라고 본격적인 아픔은 잠시 유보되어 있을 뿐이다. 처음 ‘한전놈들’이 공사한답시고 삼평리에 진군한 2009년 3월, 또 멧돼지같은 체구의 용역깡패들을 앞세워 쳐들어왔던 2012년 7월, 그리고 군사작전하듯이 꼭두새벽 동도 트기 전에 삼평리에 들이닥친 2014년 7월 21일.

할매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연속해서 한전과 공권력에 스트레이트 강펀치를 두들겨 맞았다. 평생 자식과 땅농사 밖에 몰랐던 할매들은 그로 인해 평범한 일상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할매들의 정신도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지금도 할매들은 "국가가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는 탄식과또 "한전 이 도둑놈들" 하는 말이 일상어가 됐다. 열아홉, 스무살에 삼평리에 시집와서 죽도록 고생만 한 할매들, 노년에 자식봉양 받으며 편안한 여생을 보내게 됐다며 자족하던 할매들에게는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밀양 주민들 경찰 돈배달 사건 철저히 수사하라
상경 투쟁에 나선 경남 밀양과 경북 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전탑을 둘러싼 청도 돈 봉투 사건을 계기로 송전탑을 둘러싼 비리 구조를 철저히 수사를 촉구했다.ⓒ김철수 기자

하지만 하늘은 공평하다

하지만 하늘은 공평하다. 덕분에 할매들은 이전에 몰랐던 신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내가 종종 할매들을 위로할 때 쓰는 말, 권력과 자본이 일으키는 세상의 이치를 깨치셨다. 할매들의 입에서 동지니 연대니 투쟁이니 하는 말이 나올 줄 누가 알았는가. 그리고 한전의 공작에 체념하여 마을의 미래를 넘겨준, 그전에는 너나 없었던 이웃주민들로부터 받은 상실감 대신에, 삼평리 현장을 찾아오는 무수한 연대자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린다. 오기만 하는가? 할매들이 그동안 찾아간 현장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만큼 숱하다.

11월 상경투쟁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하루코스가 아닌, 2박 3일 일정이 할매들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나도 힘들었을 만큼 빡빡한 강행군이었다. 당초 계획대로 일주일 여정이었으면 모두들 병날 뻔 했다. 유독 차멀미가 심한 조봉연 할매는 지금도 그 여독이 다 안 풀렸다. 오죽 힘들었으면 죽다 살아났다고 하실까. 그렇지만 죄송해 하는 우리에게 당신이 힘들었다는 것이지, "그런 일은 뭐하러 하느냐, 꼭 그렇게 멀리까지 가야 하느냐" 라는 말씀은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상경투쟁 때, 할매들이 찾아간 곳은 동병상련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한겨울 옥외광고판 위에서 농성하는 씨앤엠 노동자들을, 코오롱 본사 앞에서 단식하는 최일배 동지를 만났다. 또 11월 13일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무효소송 대법원 선고가 있는 날이었는데, 그 슬픔의 현장에도 함께 했다. 그렇게 지친 몸을 싣고 청도로 돌아가는 길, 할매들은 이구동성으로 말씀했다. "어찌 이리도 어려운 곳이 많은고"라고.

삼평리 현장에서 공사 출입구 현장 앞에 결연히 또는 처연히 앉아 있는 할매들은 어떤 심사일까. 신의 직장과 연봉에만 매여서, 절규하는 할매들의 호소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한전 직원들을 보면서, 또 한전의 충실한 ‘꼬주봉’ 노릇 하는 경찰을 보면서, 또 노동과 일당에만 골몰하며 모른 체 지나가는 시공사와 하청 노동자들을 보면서, 때로는 왜 우리 일을 방해하냐며 적반하장식으로 대드는 싸가지없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을 조종하면서도 현장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배후의 높은 놈들을 의식하면서, 할매들은 기가 막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기막힌 현장이 자기들만의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체득하면서 할매들은 새로이 투쟁의 기운을 추스린다. 달리 총사령관이 아니다. 전장에서 군사들이 굴하지 않고 싸우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게 사령관의 일 아닌가. 그런 점에서 할매들은 더할 나위 없다.

그래서 또 먼 길을 나선다. 이른바 '연대와 저항의 72시간 송년회'이다. 성경을 통해 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조명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구원의 길에 대해 말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우리를 덮친 현실, 특히 약자들은 그냥 끽 소리 말고 눌려서 살라는 이 참담한 시절에, 약한 사람도 사람의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사람으로 살 길은 무엇인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단결하고 연대하고 힘을 합치는 길뿐이다. 그래서 어둠의 세력을 깨우치고 대항하여, 힘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길뿐이다. 지금은 한참 기울어져 있지만, 기울어진 현실을 체념하지 않고, 평등을 이루기 위해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숱한 현장에서 단결과 투쟁을 외치고 연대하고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만이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깊이 새겨진 아픔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길이다.

이번에 할매들이 갈 곳은 더욱 많아졌고 길어졌다. 12월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다같이 모이는 송년회는 기본이고, 과천의 코오롱 앞 단식투쟁현장, 안산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평택의 쌍용자동차, 영동의 유성기업, 강원도 홍천의 골프장반대 현장, 구미의 스타케미칼을 간다. 마지막 여정으로는 전남 나주로 ‘토낀’ 한전을 찾아가서 우리 나름의 집들이를 해 줄 계획이다. 삼평리에 연대자들이 오면 할매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할매들이 찾아가면, 그들 심정이 어떨지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또 힘받아서 우리는 각자 삶의 자리를 지킨다.

청도송전탑
청도송전탑을 반대하는 고령의 주민이 공사차량을 저지하며 야적장 입구에서 농성하고 있다.ⓒ구자환 기자

연대하는 이들의 잔치, 72시간 송년회

처음에는 자기의 권리를 지키려는 소박한 의식에서 시작한 싸움들이지만, 장기화되면서 그들은 점점 더 우리 사회 기득권세력의 악행과 인간의 탐욕성까지 성찰하는 도인의 지경에 이르렀다. 정혜윤의 책 '그의 슬픔과 기쁨'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 밑바닥까지 봤다. 할매들이 처음에는 송전탑반대활동을 하다가 탈(脫)핵발전소로 지경을 넓히고, 민주주의와 권력과 자본의 문제까지 의식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만약에 밀양과 청도에 연대자들이 오지 않고, 진실한 활동가들이 대책위를 만들어서 함께 하지 않았다면, 또 가는 곳마다 밀양에서 청도에서 왔다하면 한 이름 하는 활동가들과 노동자들이 기립하여 경의를 표하는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분들은 어떻게 됐을까? "연대자와 목사님 아니었으면 우리는 벌써 밟혀 죽었습니다"라는 할매 말처럼, 이분들은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오고 가며 우정을 쌓고 민중끼리 대동단결하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가.

오늘의 이 고통스런 현실을 감안하자면, '잃은 만큼 얻은 것도 있다'는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할매들은 잃은 만큼 얻은 것도 있다. 무엇보다 당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똑같이 마음아파하는 착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이게 어딘가.

처처에서 민중이 고통의 아우성으로 손을 허우적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의 내부에서는 저들끼리 암투나 벌인 것이 드러나서 사람들 마음을 더욱 한심하게 만드는 스산한 연말이지만, 늘 그랬듯이 우리는 우리끼리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어왔다. 이번 72시간 송년회는 또 어떤 식으로 우리가 서로에 대해 놀라고 감탄하고 기뻐할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이 송년회 자리에 여러 민주시민들을 초대한다. 함께 해 주시리라 믿는다.

지난 8월 8일 청도대책위 백창욱 공동대표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지난 8월 8일 청도대책위 백창욱 공동대표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구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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