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춘 칼럼] 피음사둔(詖淫邪遁)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문

피음사둔(詖淫邪遁)

지난 12월 19일 선고된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의 보충의견에는 흔히 사용되지 않는 어려운 사자성어가 등장한다. 필자도 처음 들어본 말이다. 피음사둔(詖淫邪遁). 치우칠 피(詖), 음란할(도리에 어긋날) 음(淫), 간사할 사(邪), 숨을 둔(遁) 자이다. 말 그대로 치우치고, 도리에 맞지 않으며, 간사하고 회피하는 말이라는 뜻이니 그것이 옳지 못함을 안다 또는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보충의견을 쓴 두 재판관(안창호, 조용호)은 맹자로부터 유래하는 이 성어를 사용하면서 그 뜻이 ‘번드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한다’는 것이라고 해설까지 친절하게 붙였다. 두 재판관이 이 성어로 의도한 뜻이야 다르지만, 이 결정문을 읽어본 느낌은 피음사둔이랄까. 그럴 듯한 논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번드르한’ 수사에 불과하기에.

번드르한 용어들:실질적 해악, 구체적 위험성, 비례원칙

헌법재판소 결정의 법정의견은, 정당해산결정은 정당의 이념을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론의 장에서 영구히 추방시키는 매우 극단적 조치로서 매우 제한된 상황 속에서만 활용되어야 하며, 그 요건인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단순한 위반이나 저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사회의 불가결한 요소인 정당의 존립을 제약해야 할 만큼 그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우리 사회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하여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는 경우’를 가리킨다고 하고 있다. 또한 정당해산결정에는 그 결정이 비례원칙에 부합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하여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면서도, 1)해당 정당의 위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대안적 수단이 없고, 2)정당해산결정을 통한 사회적 이익이 이로 인하여 초래되는 정당활동의 자유 제한과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중대한 제약 등 불이익을 초과할 정도로 커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요건을 허물어뜨리는 한 방이 있으니 바로 남북한의 대립에서 비롯되는 안보논리이다.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대한민국과 북한은 아직도 냉전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면서 “대한민국은 북한이라는 현실적인 적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으로 선포되고 있고, 그로부터 체제전복의 시도가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당해산심판에는 입헌주의의 보편적 원리에 더하여 ‘대한민국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 ‘우리 국민들이 공유하는 고유한 인식’과 ‘법감정’들의 존재를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념대립의 상황은 오늘날 세계의 보편적인 상황과 상충된다”고 하므로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다는 것은 결국 입헌주의의 보편적 원리의 상당한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고유한 인식’이라는 것도, ‘법감정’이라는 것도 재판관들의 자의적 판단을 정당화시킬 소지가 있고 또 그 결과도 그렇다고 보인다. 따라서 ‘실질적 위험성’이나 ‘구체적 위험성’ 또는 ‘비례원칙’도 겉만 번드르한 수사에 지나지 않게 된다.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

헌법재판소 법정의견에 나타난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인식은 아직 냉전시대에 머물고 있다. 스스로 대한민국과 북한은 냉전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고, 그러한 증거로서 무력도발, 테러사건 등을 예시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현실적인 적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고 체제전복의 시도가 상시적이라고 한다. 그러한 인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인식이 과연 객관적이고 냉철한 현실인식에 기초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남북한 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노력이나 국제정세의 변화, 경제력과 군사력의 차이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여전히 냉전시대의 인식과 논리를 그대로 펼치는 것은 이 결정의 전제 자체에 대해 근본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빨간색 렌즈를 끼운 색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이 붉게 보인다. 이처럼 법정의견은 전제 자체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재판관들이 가진 관점에서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해도 이를 다르게 보는 관점이 있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하였어야 한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사진공동취재단

증거법칙이 무시된 사실 인정

헌법재판소가 범하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는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결론을 내리는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의 인정에서 증거법칙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형사소송에서 요구되는 증거법칙이 아니더라도 사실의 입증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험칙에 비추어 모든 증거를 종합 검토하여 어떠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고, 그 판정은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다.

그럼에도 법정의견에서는 ‘진정한 목적’ 또는 ‘은폐된 목적’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제출된 증거를 이 점에 기초하여 설명하고 있다. 반대의견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결론적으로 증명되어야 할 것이 참임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을 북한식 사회주의 건설이라고 하고 제시된 단편적 사실을 그 맥락에서 읽어내고자 하는 것은 통합진보당을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법원에서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진 일도 큰 의미를 갖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은 법원의 기본권 침해에 대해 견제하는 기능도 수행하여야 하므로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판결에 반드시 구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헌법재판의 사실인정이 헌법과 법률의 규정을 무시하고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김영환의 진술에 대해서는 관련 당사자의 반박의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았다.

이러한 논리는 남들은 잘 몰라도 나는 안다는 식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법정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도 나타나는데, 두 재판관은 “피청구인 주도세력과 북한의 각종 전술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 없이 그들의 글을 읽고 주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공안검사의 주장으로서도 법원을 설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법원이 설득될 리가 없는 것이다. 구체적 증거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심정적 주장만 전개하고 있을 뿐이므로. 하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는 심정(心情)형법이라 할 주장이 버젓이 법정의견으로 등장하고 있다.

실질적, 구체적, 비례적?

법정의견은 정당해산에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우리 사회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하여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는 경우에 한정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일반적 요건으로서 옳다. 그러면서 법정의견은 통합진보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실질적 해악이나 구체적 위험은 그저 말로만 실질적 해악이 있다고 해서 또는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해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를 미칠 수 있는 정도가 (매우) 높아야 그 해악이 실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이란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피해를 미칠 수 있는 정도가 클 것을 요하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있을 수 있는 위험의 인식 이상으로 위험 발생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상당한 정도로 존재하여야 구체적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사실(이조차 제대로 증명이 된 것이라고 보지 않지만)만으로 도대체 어느 정도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이 있을 것인지, 또한 그 위험이 구체적인지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도 두 재판관의 보충의견에 나타난 표현을 인용하자면,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사태의 흐름을 알고 사태의 실마리를 보고” 그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법정의견에서 말한 실질적 해악이나 구체적 위험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작은 싹’이나 ‘사태의 실마리’만으로 해악이나 위험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구체적 증거에 의하여 정당해산이라는 국가의 개입에 의하여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정도의 해악과 위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법정의견에서는 피청구인의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로 가려는 주장은 반헌법적인 것이고 인류보편의 가치를 거스르는 시대역행적 현상’이며 ‘시대착오적이라고 하고 있다. 다수가 보기에 시대역행적 행태라고보거나 시대착오적이라 하는 주장이 어찌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이 있겠는가? 여기서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을 감지하는 사람은 일반적인 사람보다 천배는 예민한 촉수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법정의견을 집필한 재판관도 그렇게 예민하지는 않은지 나치당과 같은 일이 “향후에 다시 결코 발생하지 않을 일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스스로 그러한 위험이 그렇게 크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코’ ‘않을 일이라고’‘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니, 최소한의 발생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정도의 뜻이 아닌가. 이게 추상적 위험이 아니고 뭘까? 시대착오적 또는 시대역행적 현상이나 주장은 말뜻 자체가 스스로 정당의 문제가 정리될 것이므로 굳이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니 비례원칙에 따라 판단하면 해산은 과도한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비례원칙을 말하면서도 도대체 뭐가 비례적이라고 심사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이 헌법의 근본가치를 무력화 혹은 약화시키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그 위험성을 섬세하게 감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상 말만 비례원칙에 의한 심사를 할 뿐 전혀 객관적 기준에 의하여 비례원칙에 의한 심사를 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나아가 법정의견에서는 ‘정면으로 반한다’느니 ‘명백하다’느니 하고 있지만 이 또한 화려한 수사에 불과할 뿐이다. 정면으로 반하다고 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 되었다고 보기도 어려워 명백하지도 않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행위가 피청구인의 행위인가?

법정의견은 “그 정당에 속한 유력한 정치인의 지위에서 행한 활동으로서 정당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행위들은 정당의 활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고, ‘정당에 속한 개인이나 단체의 활동’도 ‘활동을 한 개인이나 단체의 지위 등에 비추어 볼 때 정당이 그러한 활동을 할 권한을 부여하거나 그 활동을 독려하였는지 여부, 설령 그러한 권한의 부여 등이 없었다 하더라도 사후에 그 활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등 그 활동을 사실상 정당의 활동으로 추인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있는지 여부, 혹은 사전에 그 정당이 그러한 활동의 계획을 알았더라도 이를 정당 차원에서 지원하고 지지했을 것이라고 가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정이 있는지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 전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물론 정당 대표나 주요 관계자의 행위라 하더라도 개인적 차원의 행위는 정당의 활동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도 친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피청구인 주도세력의 강령상 목표가 폭력에 의한 진보적 민주주의 실현, 최종적으로 사회주의 실현이며, 이석기 등 내란관련 사건에서 수령론과 선군사상 찬양발언이 있었음에도 이들을 당에서 제명하는 등 적극적인 차별화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오히려 당 조직을 투쟁본부로 전환하고 전당적 차원에서 이들을 옹호하고 정부를 비난하고 있으며, 피청구인주도세력이 피청구인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결국 피청구인주도세력의 목적과 활동은 피청구인의 목적과 활동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증은 헌법재판소가 개최한 세계헌법재판회의의 실질적 주체인 베니스위원회의 정당해산에 관한 지침에도 어긋난다. 베니스위원회 지침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공적 활동 및 정당활동의 영역에서 정당에 의해 권한을 부여받지 않은 구성원들의 개별적 행위에 대하여 전체로서의 정당에 대해 그 책임을 물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 권한의 부여는 객관적 근거에 의하여 뒷받침되어야 한다. 법정의견에서는 “그 정당에 속한 유력한 정치인의 지위에서 행한 활동으로서 정당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행위들은 정당의 활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여 유력 정치인이 정당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다고 해도 정당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하는 행위는 “사후에 그 활동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등 그 활동을 사실상 정당의 활동으로 추인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있는지” 또는 “사전에 그 정당이 그러한 활동의 계획을 알았더라도 이를 정당 차원에서 지원하고 지지했을 것이라고 가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정이 있는지”에 따라 정당의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하여 정당으로부터 권한을 부여 받지 않은 개별당원의 행위도 추후 정당의 사실상의 행태에 따라 정당의 행위가 될 수 있는 여지를 확대하여 정당의 해산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더구나 정당이 권한을 부여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당원에 대한 보호 또는 다툼이 있는 범죄사실에 관하여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이를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고 정부에 대하여 반대하는 조직을 결성할 경우 이를 이유로 일부 당원의 행위를 정당의 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정당 당원의 행위를 정당의 행위로 확대하는 시도의 매우 나쁜 결과라 할 수 있다. (유력한) 당원이 일정한 범죄 혐의로 기소되면 무죄추정의 원칙과 상관 없이 제명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당 차원의 조력을 한다면 그 당원의 행위가 유죄로 확정되었을 경우 당원의 그러한 행위를 정당의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인가. 이석기 의원 등이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라고 하기도 어렵고 또 이들이 정당 전체의 의사를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러한 결과를 막고자 한 것이 베니스위원회의 지침의 제정 목적이라고 한다면 헌법재판소 법정의견은 이러한 베니스위원회 지침에 위배되는 논리를 담고 있다.

참으로 순진한 믿음인가

헌법재판소는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통합진보당이 다원적 세계관에 입각한 우리 민주헌정에서 보호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일 뿐 민주주의의 후퇴나 진보정당의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이 우리의 정치영역에서 배제됨으로써 그러한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 진보정당들이 이 땅에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하고 있다. 참으로 순진한 믿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진보정당에서 또는 어떠한 정당이라도 북한과 관련된 의제를 논의하고 방안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일단 통합진보당이 해산되는 경우 특히 진보정당의 강령이나 정책이 북한과 같은지 또는 유사한지,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대체정당은 아닌지 하는 논의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보정당의 활동을 얽어매는 족쇄처럼 작용할 것이고 진보정당은 이러한 혐의를 피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수고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진보정당이 성장할 토양을 생각했다면 한국사회의 이념갈등을 내세운 냉전논리를 비판하고 이에 바탕을 둔 판단을 보여줬어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기다리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선고기일인 19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법의 왜곡:항의집회가 왜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인가?

헌법재판소는 아울러 정당해산으로 인하여 초래될 소모적인 이념논쟁을 우려하고 있다. “과거에 통합진보당 주도세력과 무관했던 피청구인의 일반당원 및 경우에 따라 피청구인과 우호적 관계를 맺기도 했던 다른 정당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이념 공세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고 있긴 하지만, 통합진보당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지도 않은 당원의 행위를 유력한 정치인이라거나 이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의지지 또는 조력 등으로 보아 이를 정당의 활동으로 보는 논리를 내세우는 헌법재판소라면 통합진보당의 활동에 관련된 다른 정당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을 뭐라 할 것도 아니다. 당장 정당해산결정 이후 통합진보당 당원에 대한 고발이 이뤄지고 있고, 결정을 집행하여야 할 법무부는 해산결정 항의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등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관련조항을 곡해하고 있지 않는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에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고, 이러한 집회나 시위를 “선전하거나 선동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항의하고 억울한 처지를 시민에게 알리는 것이 왜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나 시위란 말인가.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려면 그 목적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부분과 관련되는 데 한정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책임지지 않는 정치인들:헌법재판관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사법기관이라고들 한다. 정치적 사안에 대해 다양한 정치적 요소까지 고려하여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규범은 헌법이고 본질은 사법작용이라고 하지만, 헌법재판관의 관점과 견해의 다양성, 가치관이나 종교관, 선입견 또는 편견까지 작용하여 결정이 이뤄진다.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적 한계도 벗어나기 힘들다. 아무리 중립적이고 보편타당한 헌법해석을 한다고 해도 부인할 수 없는 한계이다. 그렇기에 법정의견에서 말하듯이 “정당의 이념을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공론의 장에서 영구적으로 추방시키는” 것이라면 스스로 가지는 논리의 모순과 인식의 한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여야 한다. 다른 나라지만 미국의 예를 들자면, ‘여자는 집안일이나 하는 게 타고난 사명’이라고 하면서 여성의 변호사 등록을 거부한 변호사협회의 결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했던 어느 대법원 판사의 보충의견은 최악의 판결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흑인과 백인의 구별을 당연시했던 시대에 우리 헌법은 피부색에 무관심하다(color-blind)고 했던 단 한 명의 대법원판사가 기술한 소수의견은 50여년이 지난 후 전원일치로 판례변경을 가져왔다.

시민이 참여하는 헌법재판을

재판관들은 임명과정에서 간신히 국민의 대표기관의 선출이나 동의를 거칠 뿐이다. 물론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의 경우는 국회의 청문회도 형식적이니 거의 대법원장에 의한 승진 또는 전보발령이나 다름없다. 이들의 결정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결정의 내용만으로 탄핵소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탄핵심판을 하니 재판관 탄핵결정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그만큼 책임지지 않으면서 중대한 정치적 결정을 하는 게 헌법재판관이다. 이러한 헌법재판관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점차 그 위험성이 노골화되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이나 관습헌법결정이 대표적이다.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도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게 솔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제 헌법재판관의 임명제도를 바꿔야 한다. 다양성과 함께 예민한 인권감수성을 갖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헌법재판이 법률가 또는 학자들만의 전유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마저 되지 않는다면 헌법재판소 폐지도 진지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민주공화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으로 인하여 초래될 소모적 이념논쟁이나 사회적 낙인찍기를 우려하고 있지만, 결정의 내용으로 보아 이러한 말은 사회적 파장으로 인한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언사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이미 사회적 낙인찍기와 매카시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몇 마디 걱정스러운 말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 정당해산결정으로 인하여 다양성과 관용에 기초를 둔 민주주의는 중대한 위기를 맞이하였다. 이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를 만들었으니 이 금기는 모든 정치적 활동을 제약하는 굴레로 작용할 것이다. 이를 핑계로 국가의 정당에 대한 개입 또는 사회단체에 대한 감시와 개입마저 이뤄질지 모른다. 정당해산에 항의하는 집회도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해서 금지하려는 판이니 이후 우리 민주공화국에서는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헌법재판소 뒤로 청와대가 보인다.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헌법재판소 뒤로 청와대가 보인다.ⓒ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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