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 칼럼] ‘땅콩 리턴’과 ‘민주 리턴’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숙인 조현아
'땅콩리턴'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17일 오후 울 마포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위해 출두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김철수 기자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부터 우리사회의 몰이성을 두려워했다. 조현아 부사장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항상 죄를 다룰때는 죄에 타당한 벌을 주어야 한다. 지은 죄에 대한 생각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분노에 기반한 벌칙부여는 위험한 것이다.

비정규직과 해고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행기 사무장이 겪었을 참담한 심정에 감정이입을 해서 조현아 부사장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된다. 노동계급이 살아가면서 겪는 상사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대해서는 이해는 한다.

그러나 법집행은 무엇보다 조심해야 한다. 그 조심해야한다는 생각은 법관이 세상의 모든 일을 알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판단을 했던 본디오 빌라도와 같이 손을 씻으며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정약용은 그의 흠흠신서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또 죽이기도 하니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목민관이 또 그 중간에서 선량한 사람은 편안히 살게 해주고, 죄지은 사람은 잡아다 죽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다.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하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만한 일도 세밀히 분별해서 처리하지 않고서 소홀하게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또는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태연히 편안하게지낸다.( 중략 )

사람의 생명에 관한 옥사(獄事)는 군현(郡縣)에서 항상 일어나는 것이고 목민관은 항상 마주치는 일인데도, 실상을 조사하는 것이 언제나 엉성하고 죄를 결정하는 것이 언제나 잘못된다. 옛날 우리 정조 시대(正祖 時代)에 감사(監司)와 수령 등이 항상 이것 때문에 관직에서 물러났으므로, 차차 경계하고 삼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근년에 와서는 다시 제대로 다스리지 않아서 억울한 옥사가 많아졌다(서문 19면).”

감정적으로는 사람을 수십번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하지만 무엇보다 조현아부사장의 죄에 대해서만 언급을 해야한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법은 개인의 감정에 기반하지 않고 - 당시 비행기 사무장의 감정이 아닌 - 철저히 조현아 부사장의 위법사실에만 주목해야한다. 조현아 부사장의 뉴욕공항에서의 위법사실인 항공법위반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그 외의 그의 인간성과 그의 됨됨이는 부차적인 것이다.

조현아 부사장보다 더 심하게 부하직원을 다루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왜 그들한테는 그와 같은 판결을 내리지 않았던가? 그냥 조현아 부사장에 대한 그간의 여론의 행태를 보면 우리 사회 모두 누구 한명 넘어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있다가 놀부같이 ‘넘어진 아이 주저앉히기’행태에 다름 아니다.

이것은 사회의 올바른 정서가 아니다. 나는 이러한 감정을 갖는 국민들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감정을 이용하여 다른 사건을 은폐하려는 음모를 경계한다.

정당해산 강력하게 규탄하는 통합진보당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선고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당원들이 집회를 열고 해산 판결을 규탄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통합진보당 해산에 대한 헌법재판소판결에 대해 국민들의 지지가 60%이상이 넘는다는 뉴스를 보며 우리사회의 중심이 없음을 두려워한다.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숨은 목적을 가지고 내란을 논의하는 회합을 개최하는 등 활동을 한 것은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것이 헌재의 해산다수의견이었다. 나는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고 그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배웠다. 북한으로부터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 그것을 헌법적 질서라고 주장하며 국민을 핍박해왔던 과거의 정권에 대한 기억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강하다.

그리고 우리 법은 쿠데타로 세운 정권은 민주적 질서에 부합해서 우리나라의 정부로 인정했다는 말인가? 소수자의 권리는 무참히 짓밟는 법치는 더 이상 법치일 수 없다. 법은 공평정대할 때만이 법으로서 가치가 존재한다. 과거 우리 법치는 얼마나 힘있는 권력편에 서서 나약한 개인과 또 반대집단에 대한 폭거를 휘둘러왔던가? 그 법이 다시 소수자의 권리를 옥죄이는 이 순간을 경계한다. 이는 경제 살리기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공평정대한 법이 없는 한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행위하는 경제에도 올바른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마유라 왕조 아소카왕의 아들인 아라하트 마힌다의 무덤인 폴로나루와의 석비에 새겨진 문구를 상기해보자.

“하늘을 나는 새들과 정글에 사는 들짐승들도 자기 원하는 어디나 살수 있는 왕 당신과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국토는 국가의 모든 사람들과 그곳에 거주하는 모든 것들의 것이고 당신은 국토의 수호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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