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우 칼럼] 비정규직 문제 해법, 유럽연합의 노동법에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심각하지만 유럽연합(EU)처럼 근본적 처방이 나오지 않고 있다. 국내 어느 정당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기초적인 원칙을 관철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1천 만 명 시대가 되면서 결혼 및 출산 기피, 자살률 급증 등의 심각한 사태가 줄을 잇고 있는데도 정당이나 정부 등은 손을 놓고 곁가지 정책만을 제기하는 한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의 '동일 급여' 선언, 국내 기업도 의무 이행 해야

유럽연합이 소속국가들의 공존공영을 위해 역내 노동자의 합리적 취업을 법제화 한 것처럼, 기업이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동일 직장에서 동일한 노동을 할 경우 동일한 급여와 근무 시간, 보험 등 제공 등을 의무적으로 이행토록 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다.

유럽연합은 28개 소속 국가 노동자들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국적, 성, 종교 등의 차이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고 인권을 보장받으면서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는 제도를 이미 완비해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와 경제적 착취 등의 고통에서 해방돼 있다.

'미생의 장그래' 없는 세상을 위한 오체투지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비정규직법 제도 완전 철폐를 촉구하며 23일 오전 서울 동작구 대방동 대방역 인근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이번 오체투지 행진은 지난 22일부터 기륭전자 농성장을 시작으로 오는 26일 청운동사무소까지 이어간다.ⓒ정의철 기자


유럽연합 창립 목적은 유럽 내 단일시장을 구축하고 단일통화를 실현하여 유럽의 경제·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유럽시민권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회원국 국민의 권리와 이익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노동자 권익 보호, ‘자유·안전·정의’ 실천을 공동의 목표로 실천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노동자 인권 보호를 위해 국제노동기구(ILO)가 1951년 만든 ‘동일 급여’ 선언을 유럽연합 인권 헌장과 노동법에 포함시켜 ‘유럽 연합 소속 국가 노동자들은 유럽연합 내 어느 곳으로든지 이동해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노동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했다.

유럽연합 노동법은 노동 현장에서 능력, 성, 종교와 신념, 연령 등을 이유로 차별받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법은 고용주가 동일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의 작업장소를 빈번하게 바꾸는 것도 금지했다.

그 결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동일 직장에서 동일 시간을 노동할 경우 고용 기간만이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급여 제공 등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 규정은 유럽연합 회원국이나 기업간의 불공정 경쟁을 막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2002년 제안됐지만 영국, 독일 등은 2008 - 2010년에야 수용했다.

비정규직 외면한 정치, 노동권 보장에 앞장서야

한국의 비정규직이 당하는 엄청난 고통과 손실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상태지만 거대 여당, 야당은 물론 진보정당조차 유럽연합의 관련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치열한 노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국민의 가장 아픈 곳을 외면하고 있으니 정치에 대한 염증이나 혐오감이 심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은 25일 고용노동부의 2009∼2013년 임금현황 자료를 분석, 최근 5년 사이 300인 이상 기업의 상용직 노동자(정규직)와 임시일용직 노동자(비정규직)간의 월평균 임금격차가 3.5∼4.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노동현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신분 차이는 심각한 인권 침해와 함께 신종 노예계급의 양상과 고착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해 현재 비정규직은 정부 통계로 6백만 명이 넘어섰지만 비공식적으로 1천 만 명 선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7년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마련했지만, 비정규직은 더욱 늘어나 7년 동안 비정규직이 37만여 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비정규직 전환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다.

OECD가 16개 나라를 대상으로 비정규직이 1년 뒤에 정규직이 되는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최하위였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기업, 노동자 모두에게 적절치 않고 부작용만 커지고 있다. 기업 경영악화에 따른 정리해고 등을 고려할 경우 비정규직의 처우를 유럽처럼 고용 기간만 차이가 있을 뿐 정규직과 동일하게 맞추는 것이 최상책이다.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는 출산·육아 휴직한 비정규직 여성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사업주에게 주는 계속고용지원금을 늘려주는 정책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무기 계약직도 정규직과는 신분상 차이가 있어 노동자간 괴리감의 해소를 통한 인권 보호와는 거리가 있다.

유럽연합의 경제 공동체 추진이 가능했던 것은 회원국 노동자들의 인권 보호, 경제 정의 실현 등이 첫 걸음이 된 것처럼 한국 노동시장의 정상화는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살인적 2중 구조를 해소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경제적 이유만으로 생명과 인권이 경시되는 사회, 기업 이익 보장을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는 자살률, 이혼률, 출산율이 심각해지는 참상을 모두가 목격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는 유럽공동체의 노동권 보장이 한국에서 시급히 실천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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