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티브 |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면 저들은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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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면 저들은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새해 인터뷰]한국의 ‘해방신학 선구자’ 성염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면 저들은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절대 공포를 가질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공포에 젖어있는 것은 저들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으면 저들은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허수아비입니다.”

‘낙인’은 두려운 법이다. ‘빨갱이’라는 딱지는 ‘종북’이라는 낙인으로 진화를 거듭했고, 한국 사회에는 ‘종북몰이’의 광풍(狂風)이 몰아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어머니와 아버지들, 그들과 함께한 종교인들,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리지 않는다. 1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당원으로 있던 통합진보당은 강제 해산됐고 서슬 퍼런 ‘공안 광풍’의 칼날이 번뜩인다.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 “그들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비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숱한 변명들이 공간을 메운다.

수천 년 동안 세상은 한센병(나병) 환자들에게 ‘문둥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돌팔매질을 가하고 그들을 사회적으로 배제시켰다. 그들과 가까이 하는 이들에게도 같은 낙인이 찍혔다. 이 땅에서 기득권 체제에 도전하면서 민주주의를, 통일을 얘기했던 사람들도 ‘문둥이’가 됐다. ‘종북’은 ‘문둥이’의 다른 이름이다.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나자렛 예수도 ‘문둥이’들을 어루만져서 낫게 했다는 이유로 ‘문둥이’ 취급을 당하고 부정탔다면서 사람 사는 마을로 들어가지 못한 적이 있다. 저들의 논리라면 예수를 향해서도 역시 ‘종북’이냐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성염(72, 세례명 돈보스코)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당부했다. “박근혜 정권의 핵심은 공포라고 봅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상실할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그 공포 때문에 무슨 짓도 감행할 수 있다는 파렴치함. 공포의 정권들이 원하는 건 국민이나 젊은이들이 두려워하는 겁니다. 두려워해야 자기들의 위력이 발휘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쪽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면 저들은 세력을 잃어버려요.”

한국에 ‘해방신학’을 전한 원로 신학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성염 전 대사는 한국에 ‘해방신학’을 전한 원로 신학자이다. 70년대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고, 1977년 ‘해방신학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남미 출신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신부의 저서 『해방 신학』을 번역해 한국에 전했다. 80년대에 교황이 세운 로마 살레시안대학교에서 6년간 유학하면서 라틴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8년부터 2003년 6월 주교황청 한국대사 부임 전까지 한국외대와 서강대에서 서양 중세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학문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과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힘써왔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성염 전 대사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로 알려진 민주화 운동가 고 윤한봉(2007년 작고)씨를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미국 망명을 도운 인물이다. 그는 최근에는 헌법재판소 결정 전 열린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2차 원탁회의’에도 참가해 ‘종북’ 낙인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교황마저도 ‘순빨갱이’ 소리를 들었지요”

“하필 (대선 2주년인) 12월 19일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결정이 나왔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사법살인의 추억을 되살린 사건이죠. 인혁당, 조봉암을 비롯해 무수한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간첩으로 유죄판결을 받아 영어의 생활을 수십 년간씩 해왔는데, 이번에 대한민국 사법부가 저질러 온 사법살인의 역사가 전국민에게 다시 한 번 각인된 사건입니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사건은 그 자체로 유신독재 시대를 감내해 왔던 이들에게는 과거의 악몽을 끄집어내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인식이 커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종북'이라는 낙인 효과에 따른 두려움 역시 상당하다.

성염 전 대사는 ‘종북’이라는 낙인이 통합진보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하고 있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또는 용기 있는 주교들뿐만 아니라 보수 인사로 평가되는 염수정 추기경 역시 우익세력들의 낙인찍기 대상을 피해갈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형태의 독재’로 규정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순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는 염수정 추기경은 보수라고 알려졌는데도 이석기 의원 재판을 공평하게 하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우익 단체에서는) ‘종북 추기경’이라고 했어요. 교황마저도 『복음의 기쁨』이라는 문서로 신자유주의와 정면으로 대결하자 미국 언론인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퓨어 맑시스트(pure Marxist)’, ‘순빨갱이’라고 했습니다.”

성염 전 대사는 “남북이 분단되고 나서 지난 60년의 역사는 적어도 남한 측에서는 크리스천들도 기득권에 편승하여 돈이라는 우상숭배를 하면서 겸연쩍으니까 언제나 가면을 써왔다. 반공이라는 가면을 쓰고 모든 사회악을 자행해 왔다”며 “한반도에서 기득권 체제에 도전하면서 정의를, 공평을, 남북한 화해와 통일을 얘기했던 사람은 전부 ‘빨갱이’라고 낙인찍히고, 이 사회가 ‘문둥이’ 취급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종북몰이’의 광풍이 불고 있지만, 그래도 성염 전 대사는 “민주주의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 겨레가 한반도에서 반만년을 살아남기 위해 했던 투쟁도 있고, 우리 국민도 지난 60~70년에 걸쳐 꾸준히 독재에 저항해 왔다”며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의식 속에 숨어 있다. 나는 한겨레의 강한 의지를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절망하거나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세월호는 우리가 쓰고 있었을지 모를 가면을 벗겨버렸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비탄에 젖어들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세월호 참사와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무능·무책임한 정부의 행태, 진실을 어떻게든 은폐하고자 하는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들을 공격하는 우익 세력들의 모습은 분노를 넘어 이 사회에 대한 회의감마저 자아냈다. “이게 국가냐!”는 울부짖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염 전 대사는 “기득권자들이 가면을 벗어버렸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서북청년단’까지 동원해 세월호 가족 농성장에 나타나서 행패를 부렸겠어요? 자식 잃고 우는 엄마들한테, ‘엄마부대’라는 사람들이 와서 행패를 부렸고. 자식 잃고 가슴이 에이는 어버이들이 울부짖는데 ‘어버이연합’이란 것이 나타났어요. (기득권자들은) 그들의 뒤에서 박수치고 그들의 행동을 비호해 주고요. 이 나라 기득권 세력이 얼마나 사악한 집단인지 드러났죠. 세월호는 자칫 우리가 쓰고 있었을지 모를 가면을 벗겨버리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과 가족들의 울부짖음에 공감하며 ‘진실 규명’을 위한 행보에 지지·성원을 보내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곳곳에 노란 리본이 물결을 이뤘고,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와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가 국회에 입법청원한 세월호 특별법안에는 400만 명이 동참했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이라는 이름이다. 성염 전 대사는 “타인의 고통을 묵살하고 정권의 이득을 무조건 비호하려는 집단,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자들이 민낯을 드러냈지만, 타인의 고통을 함께하는 겨레의 본모습도 선명하게 드러났었다”고 말했다.

“정치가들이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우리 겨레가 갖고 있는 고유한 정, 동정이라는 뿌리가 이번 기회에 되살아난 것 같아요. 우리 국민이 한겨레로서 자기를 다시 한 번 각성하는 해였습니다. 제가 경남 함양에 사는데 그 옆의 실상사(전남 남원)에서 세월호 천일기도를 하고 있어요. 기도가 각 종단에서, 특히 천주교에서는 각 교구로 이어지고 있지요. 우리 겨레가 얼마나 선하고 타인과 더불어 고통을 함께 나누는 민족인지 알게 됐습니다.”

“교황은 묻는다. 타인의 고통을 동정할 수 있느냐고”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세월호로 시작해 세월호로 마무리됐다. 서울공항에 도착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난 교황은 “꼭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며 그들을 위로했다. 십자가를 지고 900km를 걸은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세례명 프란치스코)씨에게 직접 세례를 베풀기도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십자가는 교황청으로 옮겨졌다.

8월 16일 광화문 시복미사 직전에는 카퍼레이드 중이던 차에서 내려 34일째 단식 농성 중이던 고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씨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김영오씨가 전한 편지는 품 안에 고이 간직했다. 방한 일정 내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던 교황은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었다”는 말을 남겼다.

성염 전 대사는 “교황의 방한으로 한국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 전 세계 인류가 직접 바라보는 사건이 됐다”며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해결하든, 한국 언론이 어떻게 은폐하고 왜곡하든, 전 인류는 한국의 세월호 해법을 지켜보고 있다.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그는 전 세계에 이른바 ‘프란치스코 충격’을 안겨줬던 교황의 ‘근본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잔학한 군부독재를 감내해야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3년 『복음의 기쁨』이라는 문서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해 ‘사람을 죽이는 경제’로 규정하며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 배경에 대해 성염 전 대사는 “아르헨티나 정권은 가톨릭 신자들의 정권이었지만, 사실은 자기 기득권, 돈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하는, 돈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였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돈에 대한 우상 숭배의 징후로 나타나는,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현상, 이른바 ‘무관심의 세계화’에 대해 날을 세웠다. “교황은 우리더러 타인의 고통에 동정할 수 있느냐 묻고 있다”고 성염 전 대사는 설명했다. 특히 교황은 “늙은 노숙인이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건 뉴스가 안 되지만, 주식시장이 단 2포인트라도 떨어지면 뉴스가 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물음도 던진다. 이것은 가톨릭 신도들뿐 아니라 세상 모두에게 던지는 ‘근본 질문’이다.

성염 전 대사는 방한한 교황의 진정한 메시지를 은폐하는 일부 언론들의 행태도 비판했다. “교황 방문은 100년 전에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수의 백성이 학살됐던 사건이 뒤집힌 것인데, 어떤 종편 방송은 그 시간에 교황의 이름을 팔아서 1시간 반 동안 반공 특강을 하고 있었죠. 교황은 착한 사람인데, 이분의 방문 기회에 포격 연습을 하는 김정은은 얼마나 나쁜가 하고 말입니다.” 그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 손을 잡아주는 건 방송하지 않고, 증오와 분열과 반공의 분위기만 극도로 조성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절망과 공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성염 전 대사와의 인터뷰는 세종시 정하상 교육회관에서 진행됐다. 참고로 정하상(세례명 바오로)은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순교한 인물로 1984년 성인에 올랐다.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 정약종의 둘째 아들이다. 이곳에서 성염 전 대사는 부인 전순란 여사와 함께 단식 피정 중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새해에는 희망이 있느냐’고 물었다. 제한된 낙관과 견고한 비관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그는 “새해에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며 “절망과 공포, 이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숙주로 삼는 소수의 기득권 집단이 가져야 할 질병”이라고 답했다.

성염 전 대사는 마지막으로 교황이 언급한 ‘타인에 대한 동정’을 다시금 강조했다. “세월호 사건을 잘 해결하고, 우리 겨레의 가장 큰 자랑인 타인에 대한 동정과 공감이 정치적으로, 사법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땅의 ‘문둥이’들을 감싸주다가 해산당한 정당이라든가 ‘종북’으로 몰리는 종교인들, 그들과 고통을 나누고 있는 민주인사와 시민들에게 항상 따뜻한 시선과 마음을 보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최명규 기자
최종편집 : 2015-01-01 1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