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랙티브 | “박근혜 정부와의 투쟁, 민주노총이 선두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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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와의 투쟁, 민주노총이 선두에 서겠다”

인터랙티브 인터뷰 -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옥쇄파업이 벌어진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700여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투쟁 중이던 공장 안은 음식물 반입 금지는 물론 단수와 가스 공급 중단까지 이어지는 등 최악의 상황이었다. 매 끼니를 반찬도 없이 주먹밥 한 덩어리로 견뎌야 했고 식수가 없어 에어컨 등 기계설비에 남아있는 물을 끓여 버텨야 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쉴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했다. 잠을 자야 하는 밤, 경찰의 침탈에 대비해 교대로 경계를 섰다. 경찰은 온 밤 내내 방패를 바닥에 내리치며 마치 당장이라도 진입할 것처럼 노동자들을 위협했다. 낮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찰과 용역의 침탈을 우려해 공장 지붕 위에 올라 경계를 서야 했고 그럴 때마다 경찰헬기는 하루 종일 공장 옥상 위를 선회하며 최루액을 뿌려댔다.

경찰과 용역이 공장 안으로 진입하는 날, 평택공장은 전쟁터로 변했다. 공장 안에는 용역들이 새총으로 쏘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볼트와 너트가 날라 다녔고 경찰은 방패와 삼단봉을 들고 폭력적인 진압작전을 벌였다. 새총으로 발사된 볼트와 너트의 위력은 판넬을 뚫고 박힐 정도여서 자칫 심각한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지옥 같던 77일간의 옥쇄파업을 이끈 한상균 전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이제 80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주노총 위원장이 됐다. 민주노총 창립 이래 최초로 치러진 임원직선제 선거에서 당선된 한 위원장은 임기를 하루 앞둔 31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삶과 포부를 밝혔다.

옥쇄파업 이끈 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권력과 자본 향해 '선전포고'

옥쇄파업 당시 상황을 묻자, 한 위원장의 이마에는 가느다란 주름이 잡혔다. 한참을 생각한 한 위원장은 "모든 게 힘들었던 시기였다. 무엇 하나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이 없다. 몸도 마음도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평소 현장에서 봐온 그의 모습이 결의에 넘치고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면 위원장으로서 임기 시작을 앞둔 그의 표정에서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제가 처음 노조를 시작했을 때가 28살 때 쯤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함이 말도 못하게 많았죠. 회사는 매년 적자라는 핑계로 구조조정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숨통을 조여왔어요. 그런 위기감이 결국 한 명의 노동자로서 저를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죠."

민주노총 위원장인 그의 마음은 노조를 만들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아니, 그동안 26명의 동료와 가족들을 떠나보낸 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절망적이고, 그래서 더 절박해졌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제 기억 속에 옥쇄파업은 상처로 남아 있어요. 권력과 자본이 노동자들을 이간질 시키고, 가족들을 이용해 투쟁 중단을 설득했던 건 정말 끔찍한 기억이죠. 인간 개인 개인은 정말 나약하잖아요. 흔들리던 동료들이 '미안하다', '이해해달라'며 밖으로 나가는데 그럴 땐 정말 마음이 아팠죠."

한 위원장은 당시 자신의 맞은 편에서 회사가 쥐여준 쇠파이프를 들고 동료들을 향하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프다고 했다. 사회와 자본이 노동자들의 영혼까지 파괴한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굴뚝 오른 노동자들의 절박함, 민주노총이 함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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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쇄파업을 마치고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죠. 힘든 순간이 많았어요. 함께 했던 동료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들리는데 견딜 수가 없었어요. 3년이라는 시간이 억 겹처럼 느껴질 만큼 초조한 시간의 연속이었죠."

동료들의 비보에 조급해하던 한 위원장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것은 바로 가족들의 사랑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없이 그의 뒤를 든든하게 받혀준 아내와 삐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준 자녀들까지, 특히 연로하신 어머니가 옛날 맞춤법으로 써주신 손편지는 그가 가장 힘들고 절망적이었던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큰 힘이었다고 한다.

가족들의 이 같은 믿음 때문일까. 징역을 살고 나온 이후에도 한 위원장은 '해고자 복직'을 위한 투쟁에 다시 한 번 전력을 쏟았다. 당시 그는 오직 쌍용차 문제를 좀 더 멀리 알리기 위한 방법을 찾았고, 쌍용차 김정우 전 지부장이 벌인 41일간의 단식투쟁의 절박함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송전탑 농성을 결단했다. 그는 쌍용차 공장이 바로 보이는, 송전탑 위로 올라갔다.

"무엇보다 우리의 절박함을 알려야 했어요.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헛되이 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죠. 제가 아니었어도 분명 다른 누군가가 송전탑을 올랐을 거예요."

그의 송전탑 고공농성은 무려 171일간이나 계속됐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대선을 앞둔 상황에 정치권에서도 쌍용차에 대한 입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두 명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다시 굴뚝에 오르기까지 한 상황이죠. 이 추운 겨울 '얼마나 절박했으면 굴뚝에 올랐을까'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요. 이런 투쟁들에 민주노총이 함께 해야죠."

전국 900만 비정규직 향한 한 위원장의 외침 "민주노총이 다 책임질 테니 가입하세요"

한 위원장은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확인하는 방법이 '투쟁'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이유 역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절박한 마음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민주노총이 그런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왕이면 그런 투쟁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위원장에 당선된 것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승리라고 생각해요. 힘 있는 민주노총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인 거죠."

한 위원장은 당선 이후 첫 행보로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반민주 폭주를 막기 위한 총파업 투쟁을 선언했다.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수많은 노동 현안들이 이제 노사간의 관계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박근혜 정부는 정리해고의 문턱을 활짝 열고, 수많은 '장그래'들이 더욱 정규직이 될 수 없도록 하는 노동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이제 정권과 자본을 향한 강고한 투쟁만이 남았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와의 싸움은 이미 선거 때부터 시작된 거예요.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저희는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왜 총파업을 해야 하는지, 우리가 왜 함께 정권, 자본과 싸워야 하는지를 분명히 전했어요. 조합원들이 표로 답해준 거죠. 민주노총의 단결이 필요할 때는 가장 고된 자리에서, 투쟁이 필요 할 때는 가장 앞장서 나아갈 겁니다.”

그 시작은 노동자의 '단결'이다. 한 위원장은 수많은 '장그래'들과 함께하는 민주노총,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전선을 형성해 박근혜 정부와 싸우는 '민주노총'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총파업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거죠. 그 자신감을 만들기 전에 해야하는 것이 '하나' 되는 거예요.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자신있게 말할 겁니다.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을 책임질테니, 다 민주노총에 가입하라고."

인터뷰 내내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던 한 위원장이 활짝 웃었다.

윤정헌 기자
최종편집 : 2015-01-02 17: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