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언련 종북’ 비방이 이유 있다는 법원 판결

언론운동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을 ‘종북’이라고 비난한 방송사와 출연자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법원이 상식 밖의 판결을 내렸다. 민언련의 고소를 기각한 것이다.

지난해 5월 종편인 채널A의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한 종북좌익척결단 대표 조영환씨는 민언련을 ‘종북세력 5인방’으로 꼽았다. 민언련은 정정보도 및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법원에 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5민사부(부장판사 장준현)는 14일 “조씨 등이 민언련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도 “민언련의 활동 등을 종합하면, 조씨가 민언련이 ‘종북’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민언련을 ‘종북’이라고 규정한 것이 명예훼손이긴 하나 이 단체의 활동을 봤을 때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북’이란 북을 추종했다는, 즉 북의 조종을 받아 북의 이익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과연 법원은 어떤 근거로 언론운동단체가 북을 위해 일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일까? 일부의 주장이 북의 주장과 같고, 관련 인사가 북과 관계됐다는 식으로 ‘종북’을 규정한다면 시민단체 중 해당되지 않는 곳이 어디 있는가.

이미 조씨는 ‘종북세력 5인방’으로 민언련과 한국진보연대, 전교조, 우리법연구회, 통합진보당을 지목했다.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이 기준대로라면 정치권조차 ‘종북 의심자’가 한둘이 아니다.

재판부는 ‘종북’이라는 공격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즉 피해자의 피해 정도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분단과 전쟁의 상흔이 여전한 대한민국에서 ‘종북’은 정상적 토론을 봉쇄한 채 상대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이념적 폭력이다. 누군에겐가 ‘종북’이라는 의심받고 공격당할 때, ‘나는 아니다’라고 입증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종북’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폭력이며 마녀사냥이다.

이미 법원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를 ‘종북’으로 비방한 변희재씨나 이재명 성남시장을 비방한 정미홍씨 등에게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누군가를 흉기로 찌르는 것이 행동의 자유일 수 없는 것처럼 종북으로 낙인찍고 비방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판례로 확립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이런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검찰이 정권의 수족으로 전락한 현실에서 법원마저 시류에 편승해 고무줄 잣대로 판결을 내린다면 국민의 지탄과 역사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법원이 정의와 진실의 편에 서서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폭력을 막는 소임을 다해줄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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