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순 칼럼] 화학물질관리법은 ‘희망의 판도라 상자’ 될까

올해 1월1일부터 개정된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이 시행되었다. 정부는 안전한 화학물질관리가 가능해졌다며 주요언론을 통해 이번 화관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여론화하고 있다. 더구나 시행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부터 기업활동의 위축을 걱정하는 내용이 추가되고 있어 생색만 내고 시간이 지나면 규제완화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만 하다.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이하 감시네트워크)는 언론사로부터 몇 차례 인터뷰요청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화관법을 통해 지금까지 지적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을 거라는 입장인데 가능하다고 보는지, 부정적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화관법 주요내용 중 화학물질 사고예방과 대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국민알권리와 사고대응체계 부분에서 몇 가지 문제의식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이 화관법은 2012년 구미불산 누출사고 이후 2013년 87건, 2014년 103건으로 증가한 화학물질사고의 심각성으로 인해 개정된 법이다. 때문에 당연히 기존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하 유관법)보다는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화학물질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와 사고시 대피시나리오 등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경북 구미산업단지 불산 가스 누출로 말라 죽은 가로수
경북 구미산업단지 불산 가스 누출로 말라 죽은 가로수ⓒ대구환경운동연합

화학물질 정보공개의 한계는 그대로 남아있다

화관법 제12조(화학물질 조사결과 및 정보의 공개)에 따르면 기존 유관법에서 공개대상이 아니었던 4년 주기의 유통량조사결과를 2년 주기의 통계조사결과(사업장별 취급량과 유통량)로 바꿔 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최대한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기존 유관법은 기업이 자료보호 요청한 자료는 심의없이 비공개되었다는 점에서 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공개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배출량조사결과만 공개되었던 지금까지보다는 좀 더 확대된 정보가 공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존 유관법에서 환경부와 기업의 정보공개 거부이유가 되었던 내용이 화관법 제12조와 제52조(자료의 보호)에 그대로 유지된 만큼 실제 얼마나 공개될 지는 미지수다. ‘기업의 자료보호 요청이 있을 경우, 국가와 공공질서 또는 공공복리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 기업의 영업비밀일 경우’는 공개에서 제외될 수 있다. 또한, 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공개가 결정 난 자료라도 화관법 시행령 제21조(자료보호기간 등)에 의해 기업은 재차 보호요청한 자료를 최소 5년에서 10년 동안 비공개할 수 있다.

법을 추진한 환경부는 기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감시네트워크가 기존 유관법범주에서 진행하고 있는 화학물질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환경부와 경총을 비롯한 몇몇 기업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를 보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취급량과 유통량 공개요구에 대한 피고측(환경부) 공개거부 근거자료>

➀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제51조 제1항(비밀의 보호를 위한 자료의 보호를 요청한 자료) 등 다른 법률 또는 법률에서 위임한 명령에 따라 비밀이나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된 정보에 해당하여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법’) 제9조 제1항 제1호 따라,
➁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여 법 제9조 제1항 제2호에 따라,(북한 등 반국가단체나 이로부터 사주를 받은 자, 사회 불만세력 등으로부터 원점 테러대상이 될 경우)
➂ 공개될 경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여 법 제9조 제1항 제3호에 따라,(북한 등 반국가단체나 이로부터 사주를 받은 자, 사회 불만세력 등으로부터 원점 테러대상이 될 경우)
➃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해당하여 법 제9조 제1항 제7호에 해당하여 비공개 결정을 합니다.

위의 표는 2014년 취급량과 유통량에 대한 정보공개요구에 환경부와 경청이 법원에 제출한 공개거부 근거자료이다. 이대로라면 바뀐 화관법이 화학물질 정보공개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감시네트워크는 화학물질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 사고예방과 대응체계마련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현재 미약하게나마 공개되고 있는 전국 3,200여개 사업장 위험정보를 ‘우리동네 위험지도 앱’으로 제작하여, 2월 중으로 무료보급할 계획이다. 화학물질 정보공개의 전환적 계기가 되길 바란다.

더불어, 환경부에 화학물질 정보공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한 가지를 제안한다.

화관법이 모델로 삼은 미국의 지역사회알권리법에서는 기업비밀은 오직 화학물질의 명칭과 고유번호에 국한하며, 정보의 비공개를 할 수 있는 것은 구체적인 저장위치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에서 그 이외의 정보는 모두 공개 대상이다. 때문에 현재 화관법 제21조(자료보호기간 등) 2항처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료」에 기업의 비밀이 될 수 없는 것을 나열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비밀이 될 수 있는 것을 정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옳다. 그래야만 정보공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환경부의 주장에 맞는, 국민의 알권리를 존중하는 적극적 태도일 것이다.

2014년 9월 25일 구미불산 누출사고 2주년을 맞아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와 세월호 참사대책위가 위험을 멈추는 시민행동으로 물음표를 만들고 있다
2014년 9월 25일 구미불산 누출사고 2주년을 맞아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와 세월호 참사대책위가 위험을 멈추는 시민행동으로 물음표를 만들고 있다ⓒ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사고 시 가장 중요한 주민의 알권리 보장이 여전히 부족하다

먼저, 화관법 제42조(위해관리계획서의 지역사회 고지)에 따르면 사고대비물질 취급사업장은 ‘유해성정보와 위험성, 사고 시 조기경보 전달방법, 주민대피요령’등의 정보를 지역주민에게 고지하도록 되어있다. 국민들은 ‘이제 뭔가 되겠구나’ 하시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내용은 기존 유관법에도 자체방제계획서라는 이름으로 있었던 조항이다. 구미불산 누출사고 이후 200여건의 화학물질사고 중 지역주민에게 이러한 정보가 사전고지되거나 계획서대로 주민을 대피시킨 사례는 거의 없었다. 때문에 실제집행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또한, 화관법 제43조(화학사고 발생신고 등)에 따르면 화학사고가 발생하면 즉시 관계기관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또한 기존법에 있었던 것으로 감시네트워크가 ‘화학물질관리와 지역사회알권리법안’을 발의하면서 수차례 제기한 신고기관에 학교, 어린이집, 병원 등 공공기관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요구는 빠져있다. 또한, 지역주민들에게 신속히 알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 시행령, 시행규칙 그 어디에도 없다는 점은 큰 문제이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이상 사고위험은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시행된 화관법이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의 ‘판도라의 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과 기업, 지역주민의 소통이 장이 마련되고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감시네트워크는 전 세계 화학물질 사고예방과 비상대응에서의 교훈이 ‘주민의 알권리와 참여가 보장된 지역관리체계 마련’에 있다고 강조해 왔다. 하루빨리 ‘지역사회알권리법과 지자체알권리조례’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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