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수 특별법을 찬성할 수 없는 일곱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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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영선 의원, ‘이학수 특별법’을 발의하다
  2. 민사몰수는 언제 쓰는 칼일까
  3. 이건 불법이지 세습이 아니다
  4. 이해당사자보다 더 진정일 수 있을까
  5. 작지만 효과적인 VS. 크지만 어설픈
  6. 커다란 담론 VS. 작은 성공 경험
  7. 대한민국 정부가 이재용씨에게 소송을?
  8. 그들에게 돈보다 무서운 것
  9. 그럼에도 의미있는 ‘이학수 특별법’
  10. (참고) 국가에 의한 민사 몰수
이상민 객원기자 최종업데이트 2015-02-17 00:06:07
  • CARD 1/

    박영선 의원, ‘이학수 특별법’을 발의하다

    ‘이학수 특별법’이 발의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이 내놓은 이 법의 정식 명칭은 ‘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안은 횡령·배임 범죄로 50억원 이상의 재산상 이익을 보거나 제3자에게 이익을 취득하게 할 경우 국가가 그 수익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회의실에서 불법이익환수법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회의실에서 불법이익환수법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뉴시스

    국가가 범죄수익을 ‘형사’적으로 몰수하는 것과는 다르다. 법무부 장관이 나서서 횡령이나 배임을 통해 만들어진 재산을 몰수할 것을 법원에 ‘민사’적으로 청구하는 형태다. 요약하면 50억 이상을 횡령하여 생긴 재산을 국가가 몰수하겠다고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 삼성의 이학수 전 부회장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이 전 부회장이 지난 199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헐값으로 이재용씨 등 삼성가 3남매에게 넘겼던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이 전 부회장은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삼성SDS 주식을 헐값으로 얻은 이재용씨 3남매는 최근 삼성SDS의 상장으로 5조원이 넘는 재산을 만들었다. 범죄의 결과로 얻은 수익인 셈이다.

    이처럼 명백하게 유죄로 확정된 범죄와 관련된 재산을 국가가 환수하는 것은 당연한 사회 정의가 아닐까?

    매우 안타깝게도 나는 이 법에 대해서 마냥 찬성할 수 없다. 김용철 변호사 양심선언 대책 모임의 실무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옛 통합진보당의 ‘재벌해체 공약’을 작성한 사람으로서, 이학수 특별법에 대한 비판 글을 쓰자니 서글픈 마음까지 든다. 하지만 올바른 재벌지배구조를 위해서는 이학수 특별법을 비판할 수 밖에 없다. 반대의 논거로 소급입법이나 시효문제는 언급하지 않겠다.

  • CARD 2/

    민사몰수는 언제 쓰는 칼일까

    민사몰수 제도는 미국, 영국, 호주 등 영미 국가에는 이미 존재하는 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는 마약, 테러 등 조직범죄 때문에 도입되었다.

    마약 등을 밀매하는 조직이 있다. 범죄혐의를 잡아서 형사처벌을 하려고 한다. 누구를 처벌할 수 있을까? 보스? 아마 보스가 아니라 실제 마약을 운반했던 조직의 ‘똘마니’ 한 둘 정도나 처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똘마니의 가족을 잘 보호해 주는 조직은 되레 번창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러한 조직범죄를 소탕하는데 형사처벌보다 더 유용한 것은 민사몰수다. 돈을 몰수해 버리면 그 조직은 망한다.

    예를 읽어보니 오히려 민사몰수 제도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그럼 다음 예를 보자.

    내가 친구랑 동업을 해서 빵 가게를 차렸다. 나는 제빵을 맡았고 친구는 카운터를 맡았다. 그런데 친구가 카운터에서 돈을 횡령해서 자기 아들한테 주었다. 부도덕한 범죄행위인가? 물론이다. 그럼 그 횡령한 돈을 국가가 가져가야 할까?

    당연히 아니다. 국가가 몰수해 가는 것이 아니라 횡령한 돈은 빵집 카운터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물론 빵집 카운터에 토해 내는 ‘민사적’ 처분과 별도로 징벌적 의미의 ‘형사적’ 벌금을 부과할 수는 있다. 액수가 크면 징역형을 사는 경우도 있다.

    박영선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거액의 횡령, 배임 등의 범죄에 따른 수익은 국가가 반드시 환수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해, 국가의 기강과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고…”라고 표현하였다.

    이제 무엇이 이상한지 분명해졌다. 범죄에서 발생한 수익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으로 국가로 들어가선 안된다. 그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미국가에서는 민사몰수된 돈조차 범죄 피해자 지원 기금으로 쓰인다. 그렇다면 삼성SDS 사건의 피해자는 누굴까? 그 피해자에게 돌아갈 몫을 국가가 몰수하는 건 정의로울까?

  • CARD 3/

    이건 불법이지 세습이 아니다

    박영선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세습 자본주의’라는 말을 수 차례 썼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 가족의 불법행위는 세습 자본주의가 아니다.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사건이나 삼성SDS사건은 세습 자본주의가 아니라 그냥 반(反)자본주의적 불법행위다.

    이 사건들에서 이건희 회장은 자신의 막대한 부를 재용씨에게 세습해준 것이 아니다. 단지 삼성이라는 회사 카운터에서 돈을 빼서 자기 자녀들에게 줬다. 이것은 범죄행위다. 자기지분이 절반인 빵 가게에서 돈을 횡령한 동업자는 최소한 횡령한 돈의 50%는 자기 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돈을 횡령한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 ‘세습’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삼성SDS사건은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BW)를 이재용씨 남매와 가신 등에게 헐값에 나눠준 사건이다. 당시 장외가가 약 55,000원인 삼성SDS 주식을 살수 있는 권리를 이재용 씨 등에게 단돈 7,150원에 판매한 것이다. 그 후 일감 몰아주기로 회사를 키우고 최근 상장을 했다. 이제 그 이익 규모가 5조원을 넘었다.

    2008년 6월 12일 오후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의혹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08년 6월 12일 오후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의혹 사건의 첫 공판이 열린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뉴시스

    그럼 삼성SDS사건의 피해자는 누굴까? 바로 삼성SDS회사와 주주들이다. 그럼 이재용 남매가 회사에 손해배상을 해야 하나? 정답은 ‘그렇다’이다.

    주식회사의 본질은 동업하는 빵 가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업자가 많아지면 주식이라는 형태로 그 지분을 표시해주는 것만 다른 것이다.

    혹시 이재용 남매가 회사에 손해 배상을 하는 것보다 국가가 몰수 하는 것이 더 화끈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삼성이 이건희요, 이건희가 삼성이니 회사에 손해 배상을 한 들 그게 다 이건희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희=삼성’은 그 동안 이건희 회장 측이 일관되게 내세운 논리였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이건희 일가의 배임, 횡령행위가 터져 나와도 집행유예가 끝이었다. 그마저도 바로 사면 됐다. 여기에는 전경련과 일부 언론이 만들어낸 ‘죄는 밉지만 삼성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동정론(?)’이 일반 국민은 물론 판사들까지 먹혔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을 단죄하자는 것은 삼성의 돈을 총수 일가가 횡령하고 배임해 가는 것을 처벌해서 더 이상 삼성에 피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을 위해서’ ‘삼성의 돈을 횡령한 사람을 봐주자’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논리라기보다는 이미지)를 아직까지 떨치지 못하고 있다.

    재벌 총수와 그 기업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재벌총수의 불법 재산은 국가가 몰수할 것이 아니라 회사에 토해내야 한다.

    과연 회사에 토해내게 하는 수단이 있을까? 있다. 바로 주주대표소송제도다.

  • CARD 4/

    이해당사자보다 더 진정일 수 있을까

    주주대표소송은 주주라는 이해당사자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사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다. 승소하게 되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자는 그 이익을 회사에 토해내야 한다.

    실제로 삼성특검에서 에버랜드가 형사상 무죄를 받은 것과는 별도로 주주대표소송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친 것이 인정되어서 제일모직에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에버랜드 사건에서 주주대표소송이 승소했으니 삼성SDS사건도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승소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현재는 시효(10년)가 지나서 어렵다. 만약 2009년 이전에 주주대표소송이 제기 되었다면 승소했을 것이다.

    그럼 왜 승소할 수 있는 주주대표 소송이 10년이 지나도록 제기되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요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주주대표소송은 말 그대로 주주가 제기하는 소송이다. 그런데 상법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주주의 요건은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이다. 소송을 제기하자고 결의하는 주주를 1%이상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소송의 결과로 소송 당사자가 직접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다. 불법을 저지른 경영진이 회사에 돈을 토해내는 것으로 회사가치(주가)가 올라간다는 ‘간접적’인 이득만을 누릴 뿐이다.

    더구나 삼성SDS는 당시 상장도 되지 않았다. 상장되지 않은 회사의 주주를 모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재벌총수 일가가 지분을 많이 보유한 비상장 회사는 총수 일가의 불법행위가 벌어지는 주무대가 된다. 여기에도 방법은 있다. 비상장회사인 삼성SDS의 주식을 보유한 상장회사의 주주가 대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이중대표소송’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는 이중대표소송제도가 없다.

    결국, 가장 시급히 도입해야 하는 제도는 이학수 특별법보다 이중대표소송 등 주주대표소송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다.

    사회정의를 외치는 사람보다 이해당사자가 더 진실되고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 어떠한 활동가도 밀양의 할머니만큼 진실된 투쟁을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사회정의를 위한 ‘국가 환수’ 제도보다 이해당사자인 주주가 제기하는 ‘주주대표소송’을 통한 해결이 더 바람직하다.

    “그래, 이중대표소송 도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겠어. 그러나 이미 삼성SDS시효가 지난 마당에 이것은 국가가 몰수하는 이학수 특별법도 만들고, 별도로 이중대표소송제도도도 만들어서 두 개 다 통과시키면 좋지 않을까?”

  • CARD 5/

    작지만 효과적인 VS. 크지만 어설픈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여론조사를 통해 이완구 총리인선을 하자고 주장했다. 그 다음 날 동아일보 1면 톱기사 제목은 “총리인준도 여론조사로 하자는 문재인”, 그리고 사설 제목은 “여론조사로 총리 인준하려면 국회가 왜 필요한가”이다. 문재인 대표 발언 직전의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만신창이 이완구 후보자, 총리가 돼도 문제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끝없는 의혹과 비열한 언론관은 보수 언론도 입을 다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가 여론조사를 통해 총리 인준을 결정하자고 말하자, 보수 언론의 공격 대상은 이완구 후보가 아니라 문재인 대표의 발언으로 바뀌었다.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이건희 회장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밝혀질 만큼 밝혀졌다. 그런데 ‘국가 몰수’라는 법적으로 엉성한 ‘이학수 특별법’이 발의가 되면 어떤 논쟁이 생길까? 논쟁의 쟁점이 삼성의 불법행위에서 슬며시 이동해 ‘이학수 특별법’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이건희 회장의 불법행위에 대한 유일한 변명은 ‘삼성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틀린 도그마다. 이를 불식하자면 ‘삼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건희 일가의 불법행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워야 한다.

  • CARD 6/

    커다란 담론 VS. 작은 성공 경험

    “그래, ‘이중대표소송’ 등 주주대표소송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야. 그래도 이미 이중대표소송의 시효가 지났다면, 삼성SDS의 불법 경제적 이득 5조원은 특별법 형태라도 환수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정치적으로 ‘이학수 특별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구태여 반대한다는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론조사를 통한 이완구 총리 인준을 새누리당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있다면 문재인 대표의 발언을 비판하지 않을 것처럼.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학수 특별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건희 총수 일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들은 ‘이학수 특별법’이 지닌 문제만 되풀이 할 것이고, 이건희 총수일가를 단죄하고자 하는 반대편은 분열되어서 논쟁하게 될 것이다. ‘이학수 특별법’에 반대하는 사람은 정의롭지 못한 사람으로 편가르기 대상에 편입될 것이다.

    물론, 커다란 정의로운 담론도 필요하다. 마치 노무현 후보가 부산에서 계속 낙마했던 것처럼. 비록 노무현 후보는 낙마했지만 ‘지역주의 타파’라는 담론은 전파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 후보의 선거 과정을 숨죽여 지켜본 이유 중 하나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도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당선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유시민 후보가 대구에 출마하고 떨어지는 과정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커다란 담론보다는 작은 성공의 축적이다. 커다란 담론도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만 유의미하다. 실현가능성이 없는 ‘이학수 특별법’이 거론될수록 더 중요한 입법과제는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더 중요한 입법과제가 무엇이냐고?

    ‘이학수 특별법’보다 오히려 이재용 씨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법이 이미 발의 되어 있다. 이종걸 의원이 작년에 발의한 보험업법이다. 이재용 씨가 편법적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법인데 법 논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반대할 근거와 명분조차 없다.

  • CARD 7/

    대한민국 정부가 이재용씨에게 소송을?

    그래도 국가가 5조원이 넘는 불법 이득을 환수하지 않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불공정한 시장을 규제 하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진보파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러나 진보진영이 꿈꾸어야 하는 것은 강한 ‘국가규제’가 아니라 ‘국가의 공공성 증대’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제적 강자가 시장의 룰 자체를 바꾸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공공성을 증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규제 자체를 믿을 필요는 없다.

    ‘이학수 특별법’에서 민사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주체는 대한민국 정부, 구체적으로 말하면 법무부 장관이다.

    대한민국 정부, 구체적으로 법무부 소관의 검사는 그 동안 무엇을 했을까? SDS사건만 해도 참여연대 등이 십 여년 동안 무려 15차례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법무부 소속 대한민국 검사는 불기소, 각하 처분으로 일관하였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 선언 이후 정치적으로 힘을 얻은 삼성특검이 비로소 기소하였으나 대한민국 사법부는 무죄, 면소 등 법정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썼다. 결국 에버랜드를 무죄로 하는 대신에 SDS만 제한적으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이 민사몰수 청구를 법원에 제기하고 법원이 합당한 몰수 판결을 내릴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해당사자를 통한 해결 방안이 있는데 ‘민사적 국가 몰수’를 하자는 것은 국가 공공성의 증대라기보다는 ‘국가부권주의’(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며 권위주의적이고 강제적 개입을 추구하는 사상)의 강화아닐까. ‘국가부권주의’를 우려하면서 경제적, 사회적 약자가 공평하게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국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진영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 CARD 8/

    그들에게 돈보다 무서운 것

    서두에서 ‘민사적 몰수’는 마약, 테러 등 조폭범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전됐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런데 조폭범죄 소탕에는 효과가 좋은 민사적 처방이 이건희 총수 일가의 범죄 소탕에도 효과가 좋을까?

    미국의 담배회사를 생각해보자. 담배회사는 천문학적인 민사적 손해배상을 하지만 타격을 받지 않는다. 대마초보다 건강에 해롭다는 담배산업을 유지할 수 만 있다면 돈 몇 푼 주는 것은 담배장사를 합법적으로 영위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이건희 총수 일가가 왜 그렇게 회삿돈을 가져갔을까? 생활비가 필요해서?

    이건희 총수 일가에게 돈이라는 개념은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삼성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도구라는 데 있다. 경영능력을 인정받지 않은 이재용 씨가 삼성생명, 삼성전자 둘 다 지배하자면 회사의 지분(돈)이 필요하다. 설령 천문학적인 돈을 배상하더라도 계열사를 계속 지배만 할 수 있다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삼성 가신인 이학수 씨는 특검에서 들통난 수 조원이 넘는 차명 재산을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도”를 찾아 보겠다는 약속을 대신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판결 이후에 이건희 회장은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특검을 통해 밝혀진 차명재산은 지금 이건희 회장 명의로 전환된 상태다. 지금 새로운 법을 만들어 국가가 민사적으로 몰수하기에 앞서, 삼성측이 스스로 한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결국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배구조 개선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총수의 자녀가 삼성 계열사를 편법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삼성이 흔들리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정말 중요하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총수의 자녀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삼성전자를 지배하다가 나라가 망하면 어찌할 텐가?

    삼성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은 이미 여럿 나와 있다. 이미 언급한 이종걸 의원의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18대 국회에서 이정희 의원이 내놓은 금융지주법 개정안도 있다.

    현재 제일모직(구 에버랜드)이 금융지주회사가 아닌 이유는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제일모직(19.34%)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20.76%)이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의 최대 법인주주인 제일모직이 삼성생명이라는 금융회사를 지배하는 금융지주회사로 인정되는 순간,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결국, 이재용 씨는 제일모직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없게 된다.

    이재용 씨가 더 두려워하는 법안은 이런 것이 아닐까?

  • CARD 9/

    그럼에도 의미있는 ‘이학수 특별법’

    그럼에도 ‘이학수 특별법’이 지닌 의미는 작지 않다.

    인하대 김진방 교수는 “화이트칼라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더 큰 틀에서 접근했어야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논쟁이 꼭 커다란 정치적인 싸움으로 번질 필요는 없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가 즐겨 쓰는 말대로 “거대 담론보다는 작은 성공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것은 삼성 지배구조 개혁에도 의미 있는 말이다.

    ‘이학수 특별법’이 지닌 정의로움이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발전하기를 빈다.

  • CARD 10/

    (참고) 국가에 의한 민사 몰수

    근대국가와 전근대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은 민사와 형사의 분리다. 즉, 전근대국가에서는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는 자의 손목을 자른다” 뭐 이런 식으로 민사적 사건에 국가가 형벌로 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국가의 이상은 민사적 사건에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자유로운 사적자치를 보장하는 데 있다. 다만, 공공질서를 위한 형사적 사건에만 국가가 개입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의 정서로는 민사와 형사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 흔히 교통사고가 나면 서로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경찰관 앞에서 주장한다. 그러나 경찰은 민사적 분쟁에 개입할 권한도, 의무도 없다. 오직 교통법규 위반 등의 형사적인 잘못만 관여할 뿐이다.

    경찰서에 걸려오는 전화의 절반 이상은 떼인 돈 받아달라는 식의 민사적 다툼에 대한 처분을 바라는 전화라고 한다. 법 체계에서도 이런 흔적은 남아있다. 최근에야 사라진 ‘혼인빙자간음’, 아직도 사라지고 있지 않은 ‘간통죄’ 그리고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업무방해죄’ 등등의 민사적 다툼의 영역이 우리나라 형법조항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이해관계자들끼리 자유롭게, 토론을 하거나 여론이나 정치적으로 해결을 하거나 또는 스스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국가의 역할은 이해관계자들끼리 민사적 다툼을 해결하는데, 강자와 약자가 공평하게 조율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이제 이해관계자를 대신해서 스스로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어색하다. ‘국가부권주의’정도가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나라 법무부가 민사소송까지 개입한다면 약자를 대변할까? 아니면 강자를 대변할까? 민사의 영역인 업무방해죄가 노조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까지 떠올린다면 좀 오버인가?

    민사몰수는 민사소송이 잘 발달된 영미법 체계 국가에서 발달된 제도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륙법 체계에서는 국가에 의한 민사몰수보다는 역시 이해관계자들의 민사재판이 더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