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2년,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어떻게 변화했나

포털사이트에서 ‘박근혜’라는 키워드에 딸려 나오는 검색어는 ‘박근혜 지지율’이다. 주요 여론조사 기관에서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발표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포털사이트의 주요 검색키워드로 ‘박근혜 지지율’이 나온다. 여론조사 결과는 현대정치에서 국정운영을 비롯 각종 정치 행위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청와대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박 대통령 재임 2년 동안 국정지지율은 요동쳤다. 여론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따라 격하게 반응했다. 지지율 상승과 하락에는 큰 사회적 쟁점이 자리했다. <한국갤럽>으로부터 제공받은 지난 2년간의 여론조사 데이터와 역대 대통령 지지율 데이터를 분석해 국정지지율 등락의 원인을 짚어봤다. 데이터는 월간 조사를 기반으로 분석됐으며 더욱 자세한 데이터는 한국갤럽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바로가기를 누르시면 광고를 빼고 그래프를 키운 뉴스 페이지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지난 2년간 박 대통령 지지율 등락은 크게 3번의 변곡점을 그린다. 취임 직후 다소 낮게 출발해 2013년 9월 63%로 최고점을 찍고 이후 조정기를 거쳐 정체하다 2014년 5월 급락해 50%선이 무너졌다. 이후 40%대를 유지하던 지지율은 2014년 12월 40%가 무너지면서 급락기를 맞이해 2015년 1월에는 33%를 기록했다.

○1시기:2013년 3월~2013년 9월
키워드:인사파동, 대선공약파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방미방중 외교 행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취임 직후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42%로 대선 지지율(51%)보다 낮게 출발했다. 인수위 시절부터 장차관급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낙마하는 등 인사파동을 겪었고, 대선공약을 뒤집으면서 기존 지지층이 이탈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인사파동과 대선공약파기 논란이 진정되면서 지지율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2013년 5월 미국, 6월 중국 등 적극적인 외교 행보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상승하던 지지율은 2013년 7월~8월사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 기간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시기였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도 촛불집회를 이어가며 진실규명을 촉구했다. 9월 들어 지지율이 반짝 상승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이었다. ‘반북여론’이 들끓어 오르면서 지속적으로 반북캠페인을 벌여왔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상승했다.

○2시기:2013년 10월~2014년 4월
키워드:외교행보 지속, ‘대선개입 의혹’ 타 국가기관 확대, 검찰 외압, 시국미사, 철도파업

2014년 9월 잠깐 상승했던 지지율은 다시 추락했다. ‘대선개입 의혹’이 국정원에서 국방부 등 국가기관 전반으로 확대되고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윤석열 팀장 직무 배제 등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에 외압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지율이 하락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비롯해 대선개입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도 번져갔다. 2013년 12월과 1월 사이에 진행된 철도파업을 전후로 ‘민영화 논란’이 사회를 뒤덮으면서 지지율은 다시 추락했다.

하지만 2013년 4월 이후 50%선을 넘어선 지지율은 각종 논란 속에서도 50%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2014년 집권 2년차로 접어들면서 지지율은 상승기류를 탔다. 같은 시기 지난 두 대통령의 지지율보다 훨씬 높게 나타나면서 ‘탄탄한 지지층’이 있다는 박 대통령의 장점이 부각되기도 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주목할 점은 ‘부정의견’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집권 초반 국정에 대한 의견을 유보했던 국민들이 ‘부정’을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처하는 청와대의 모습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부정의견이 처음으로 30%선을 넘은 2013년 10월은 청와대 검찰 외압 논란이 한창이던 때다. 그해 12월과 2014년 1월 다시 부정의견이 높게 나타나는데, ‘민영화’ 논란이 확산되면서 정책적 반대의견이 정착해 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3시기:2014년 5월 ~ 2014년 11월
키워드:세월호 참사, 인사파동, 복지축소 논란

2014년 4월 터진 세월호 참사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에 여론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50%대를 유지하던 지지율은 2014년 5월 추락해 다시는 50%선을 회복하지 못했다. 2014년 5월부터 7월까지 지지율은 하락세를 유지하는데, 이는 ‘사진연출 논란’ ‘세월호 가족 면담 거절’ ‘세월호 특별법 논란’ 등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과 이후 안대희, 문창극 총리 후보의 연이은 낙마, 이른바 ‘관피아’ 논란이 확산되면서 지지율은 상승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전후 치솟았던 ‘부정평가’는 100일이 지나면서 40% 중반에서 정체된다. 이 기간 2014년 8월부터 11월까지는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를 앞선 채로 유지됐다. 또한, 관망층은 10%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그간 관망하던 국민들이 부정평가로 접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4시기:2014년 12월~2015년 1월
키워드: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담뱃세 인상, 연말정산 논란

40%중반에서 정체를 유지하던 지지율은 2014년 12월 처음으로 30%선 아래로 추락했다. 2014년 11월 터진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은 그동안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던 ‘노령층’과 ‘영남권’의 지지층 이탈을 불러왔다. 이 기간 60대 이상 지지율이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대구경북은 2015년 1월 처음으로 50% 이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담뱃세 인상, 연말정산 논란이 이어지면서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추락했다. 또한 부정평가가 급격히 치솟아 올랐다. 40%대였던 부정평가는 2014년 12월 50%, 2015년 1월 57%를 기록하면서 가파르게 상승했다. 관망층은 여전히 10%였다. 긍정평가가 줄어들고 부정평가가 늘어난 이유는 긍정평가를 하던 국민들이 부정평가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이후 한국은 ‘세대갈등’이라는 말이 자리 잡을 정도로 세대별 의견차가 뚜렷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이는 대통령 지지율에서도 확인된다.

20대에서 30대까지는 박 대통령 집권 2년 동안 50% 이상의 지지를 보낸 적이 거의 없는 반면 60대 이상의 지지율은 단 한 차례도 6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최고점을 찍었던 2013년 9월 60대 이상은 85%의 경이로운 지지율을 기록했고, 2014년 2월에도 84%를 기록했다. ‘콘크리트’라 불리는 박 대통령 지지율 유지의 비결 중 하나다.

50대는 60대 이상 지지율 추이와 약 10~15%포인트 차이를 보이며 비슷한 추이를 유지했다. 반면 최근 지지율 급락 시기로 접어들면서는 60대보다 훨씬 낙폭이 컸다. 2013년 3월을 제외하고 줄곧 50% 이상, 대부분 기간에 60%대를 유지하던 50대의 지지율은 2015년 1월 무려 41%로 떨어졌다. 경제 이슈에 민감한 세대답게 ‘담뱃세 인상’과 ‘연말정산’의 여파가 다른 세대보다 훨씬 컸다고 볼 수 있다.

지지율 낙폭이 가장 큰 세대는 40대였다. 40대는 2013년 9월 6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가 2015년 1월에는 26%로 떨어졌다. 상승할 때는 크게 상승하다 떨어질 때는 크게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20대와 30대는 대체로 비슷한 추이를 보였으나 뚜렷하게 갈리는 시점이 있다. 2013년 8월에서 9월로 넘어가는 시기다. 2013년 8월에는 20대가 42%, 30대가 41%로 거의 같은 수준이었으나 9월 20대는 55%로 상승한 반면 30대는 42%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 시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슈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으로, 20대가 큰 영향을 받은 반면 30대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당시 30대를 제외하고 모든 세대에서 지지율 상승이 벌어졌는데, 20대의 상승폭이 가장 컸으며 전 기간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5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반면 20대는 ‘비선개입 의혹’이 한창이던 2014년 11월과 12월 사이에 다른 모든 세대에서 지지율 하락을 보였음에도 지지율이 유지됐다. 19%로 워낙 지지율이 낮았던 탓도 있지만 ‘비선개입 의혹’에 이 세대가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후 ‘연말정산’과 ‘증세 복지’ 논란이 벌어진 2015년 1월에는 지지율이 더 하락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전 세대에 걸쳐 급격한 지지율 하락이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30대와 40대의 낙폭이 가파르게 나타났다.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과 비슷한 세대임을 감안하면 자연스런 결과로 볼 수 있겠다.

한국 정치를 설명하는 고전적 키워드는 ‘지역’이다. 박 대통령 국정지지율에서도 지역별 편차는 크다. (그래프에서는 지역별 버튼을 누르면 전국 지지율과 비교가 가능하다.)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은 전국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은 반면, 광주전라와 서울은 전국 평균에 비해 낮다. 전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이며, 서울은 전국 평균에 3~5%포인트 가량 낮게 나타났다. 경기인천, 강원, 대전충청세종은 지지율 상승세에서는 전국 평균에 비해 높고 하락세에서는 낮게 나타났다. 영남과 호남이 고정적이라고 봤을 때, 정치권이 경기인천, 강원, 충청권 민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구경북과 부산울산경남 모두 전국 평균보다 높긴 하지만 대구경북이 전국 평균에 13~18%포인트 차로 큰 격차를 보이는 반면 부산울산경남은 3~8%포인트 정도의 격차를 유지하고 있었다. 부산울산경남이 전국 평균에 월등히 높은 지점이 2013년 9월 ‘내란음모’ 정국과 2014년 5월 ‘세월호 참사 정국’이었다. 각각 11%포인트, 10%포인트의 격차를 벌렸다. 전자는 반북캠페인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고 후자는 ‘영남에 대통령 동정 여론’이 있다는 일각의 분석에 힘이 실리는 수치라고 볼 수 있겠다.

한국 정치에서 성별과 정치성향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 지지율에서도 성별은 이렇다 할 의미를 갖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지지율이 높게 나타났다. 적게는 1%포인트에서 많게는 9%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비슷한 격차를 유지하던 성별 지지율은 2014년말, 2015년초에 들어 급격한 차를 보였다. ‘담뱃세 인상’과 ‘연말정산’ ‘복지 논란’ 등 경제이슈가 한꺼번에 터진 이 시기, 남성은 여성보다 훨씬 가파른 지지율 하락세를 보여줬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 지지율과 박 대통령 지지율 추이를 비교해 보면, 박 대통령 지지율 추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와 가장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집권 초반 약간의 상승세를 타가가 집권 1년차 3분기에 최고점을 기록한 뒤 전반적 하락세를 기록하는 모양새다. (다른 대통령의 이름을 클릭하면 해당 대통령의 그래프를 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집권 초반 개혁드라이브가 큰 반향을 일으켰고 박근혜 대통령은 적극적 외교 행보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내란음모 사건’으로 대변되는 지지층을 향한 ‘반북캠페인’이 힘을 받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2년차 이후 역대 대통령은 전반적으로 지지율 하락을 기록했지만 지지율 반등이 일어난 시기도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총선을 앞두고 민자당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개혁적 인사는 물론 진보진영 인사까지 영입하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집권초반 좀처럼 올라서지 못했던 지지율이 집권 2년차 2분기 이후 상승곡선을 그리는데, 이는 ‘쇠고기 수입’ 논란과 ‘4대강 사업’ 논란 이후 이른바 ‘자원외교’ ‘원전세일즈’가 본격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으면서 가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말 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집권 마지막 분기에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대통령이 됐다.

살펴본 대로 집권 2년차 이후 지지율 반등은 대통령의 ‘정치적 승부’와 연관이 있었다. 집권 3년차로 접어들면서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고 있는 박 대통령은 지지율 반등을 이룰 만한 ‘정치적 승부’를 준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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