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은 어떻게 결정되나 (상) - 국제유가

얼마 전 땅콩회항 사건이 크게 회자되었을 때, 왜 사람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더 큰 문제에는 둔감하면서 눈에 보이는 작은 사건에만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반성하는 글을 보았다. 아주 대단한 직관력을 보이는 문장은 아니었지만 누가 뒤통수를 슬쩍 쳐주는 느낌이었다. 그래 우리가 그랬구나. 초등 6년, 중고등 6년에 심지어 대학교육 4년을 거치고도, ‘땅콩’, ‘갑질’과 같은 단순한 소재들이 던져주는 간단명료함이 없으면 우리는 분노할 줄 모르는구나.

‘유가’라는 문제에 부딪칠 때에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세계 석유 권력 재편에 힘입어 국제유가가 요동치고 세계 경제를 뒤흔든다 해도, 우리에게 깊이 다가오는 울림은 그다지 없다. 국제유가가 1% 오르면 GDP의 몇 %가 더 떨어지고, 물가가 몇 % 오른다 하지만, 내가 그 원유를 직접 캐는 것도 사는 것도 아니기에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현실로만 여겨진다. 오히려 주유소의 리터당 가격 50원, 100원에 목숨 걸고, 티슈 한장 주지 않는 야박한 주유소 인심에 더 가슴 아플 뿐이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인 이 국제유가가 도대체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누군가 우리 몰래 못된 꿍꿍이를 하면서 가격을 흔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몇 달 새 공급량과 수요량이 크게 변할 리 만무한데, 가격이 이렇게 요동친다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혹시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가 너무 쿨하게 외면했기 때문에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석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상품 중 하나다.
석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상품 중 하나다.ⓒ민중의소리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원유

‘국제유가’는 ‘석유’라는 상품의 ‘국제가격’이다. 석유의 단위는 배럴(159리터)이고, 화폐표시단위는 결제통화인 달러다. 보통 국제유가라고 칭할 때에는 통상적으로는 ‘국제원유의 가격’을 의미한다. 석유시추선에서 캐낸 원유는 다시 정제해서 휘발유, 경유, 난방유, 항공유, 아스팔트 같은 석유제품을 생산하고, 염료, 합성세제, 플라스틱 등의 석유화학원료도 생산한다. 참고로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수출 효자 품목이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인 까닭은 원유를 수입해와 정제해서 수출을 하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수출 2위 품목은 석유제품(512억 달러), 5위는 석유화학(483억 달러)으로, 휴대폰이나 선박보다도 더 많이 수출했다.

국제유가가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핵심 축 가운데 하나인 이유는 가장 거래 규모가 큰 원자재 품목이기 때문이다. 원유 거래량은 석탄이나 천연가스보다 2배 이상 많고, 철의 10배가 넘는다. 세계 에너지 소요의 1/3을 담당하는 대표적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수입액에서도 약 1/5 가까이를 원유가 차지한다. 무엇보다 유가가 너무 올라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많은 발전소, 공장들이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유가는 늘 경제 운용의 주요 변수로 등장한다.

수요·공급 곡선으로 설명되지 않는 국제유가

경제학에서 가격 결정의 기본 요인은 수요와 공급이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고,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가격은 내려간다. 원유도 상품이니 기본적으로는 이 논리에 따른다. 이론적으로도 국제유가를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수요 부분이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들이 많아지면 원유 수요가 늘어나 가격이 오른다. 공급 역시 유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특히 원유는 탐사하고 개발해 생산하는 데까지 매우 오랜 시일이 소요되는 자원이어서,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처럼 공급량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국제유가를 설명하는데 더 핵심적인 부분은 수요와 공급보다는 생산자 담합과 금융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다른 품목들과 석유를 구별짓는 가장 큰 요소기 때문이다. 먼저 생산자 담합을 이해하기 위해선 석유 생산의 역사를 조금 살펴봐야 한다. 석유가 세상에 선보인 것은 불과 15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 1859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에서 증기기관을 이용한 시추방식으로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인데, 이때부터 약 1960년대까지 석유시대는 미국 정유회사들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특히 1940년대 이후 Anglo-Persian Oil Company(오늘날 BP), Gulf Oil, Standard Oil of California, Texaco(이상 오늘날 Chevron), Standard Oil of New Jersey, Standard Oil of New York(이상 오늘날 Exxon Mobile), Royal Dutch Shell 등 메이저 7대사들이 형성돼, 미국을 넘어서 중동지역의 석유까지 생산하면서 실질적으로 근대 석유산업을 지배했다. 이들은 1970년대초까지 자기들끼리 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세계 시장과 생산지역을 분할하고 유가를 조작하면서 세계 석유자원의 85%를 장악했다. 때문에 이 시대의 국제 유가는 7대 메이저들이 스스로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산자 담합으로 점철된 석유사

그런데 1970년을 정점으로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감소세로 전환되면서 미국의 지위가 약화되고 유가 결정 주도권이 산유국으로 넘어갔다. 때맞춰 중동에서는 서방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면서 석유 민족주의를 내걸고 OPEC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OPEC은 1960년 중동, 남미의 산유국들이 미국의 유가 인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해 결성한 정부간 기구다.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 베네수엘라 등 5개국이 초기 결성에 참여했고 이후 카타르, 리비아, UAE, 알제리, 나이지리아, 에콰도르, 앙골라 등이 가입해 현재는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OPEC은 석유 가격 하락과 회원국들의 수익 감소 저지를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끼리 잘 합의해서 쓸데없이 생산량을 늘리지 말고, 가격도 높이 받아서 수익을 챙기자는, 이른바 생산 카르텔을 형성한 것이다. OPEC은 세계 원유 생산에서 51%(1973년)까지를 담당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OPEC은 최근까지도 세계 원유 생산의 40% 내외, 세계 수출에서는 60% 내외를 차지하고 있어, 지난 40여년동안 세계 석유시장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OPEC 역시 원유 판매 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예를 들어 OPEC 총회에서 기준 유종인 사우디 A/L원유 가격을 결정하면, 나머지 유종의 가격은 이 기준 유종과의 품질 차이 등을 고려해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같은 원유라 해도 유종, 즉 원유의 종류는 300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지만 이렇게 기준 유종을 정하고, 그 가격을 ‘콱’ 정해 공시해 버리면 나머지 유종들도 대략 자기 처지에 따라 가격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 효과가 있기 때문에 큰손들이 모여 카르텔을 만들고 가격을 담합하는 것이다.

선물시장 등 금융시장 통해 투기꾼들 진입

사실 OPEC까지는 교과서에도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이기에 큰 저항감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중동 산유국들이 OPEC을 통해 석유 가격을 쥐락펴락하며 오일 머니를 긁어모은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꽤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이야기가 조금 구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산유국보다 더 무서운 금융자본들이 석유시장에 뛰어들면서 주도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원유 수요가 정체하고 비OPEC 국가들의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OPEC의 시장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원유 거래시장이 성장하면서 원유도 다른 상품처럼 시장수급에 의해 결정되는 시스템이 정착하게 되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는 석유 텍사스 중질유(WTI)가, 런던 ICE 거래소에서는 북해산 브렌트유가,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는 중동에서 나는 두바이유가 거래되면서 거래 유동성과 가격 투명성이 높아졌다.

어떤 품목이든 거래 시스템이 정착하게 되면 주식 거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거래가 되는 것이 현물이냐, 선물이냐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물 거래는 실제 석유를 배럴 단위로 직접 사고 파는 것이고, 선물 거래는 장래 일정 시점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매매할 것을 현재 시점에서 사고 파는 것이다. 이른바 파생상품의 일종으로, 콩이나 밀, 옥수수 같은 농산물이나 금, 철광석, 원유 등과 같은 원자재들도 모두 이 선물 거래를 통해 많이 거래되고 있다.

그럼 이와 같은 거래시장에서 거래가 오갈 때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말할 것도 없이 수요와 공급으로 정해진다. 그럼 다시 경제학개론에서 이야기하는 깔끔한 가격 결정 형태로 돌아간 게 아닌가 묻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거래 시장이 형성됐다는 것은 이 거래로 돈이 오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돈이 오가는 곳에는 반드시 금융 자본들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2000년대 국제 에너지 자원시장에 나타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비상업 매수, 즉 투기자본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국제 원유 시장과 같은 실물시장은 전통적으로 해당 상품을 실제로 사고 파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거래의 대다수를 차지해 왔다. 그런데 2008년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나빠지자 금융시장의 자본들이 금융 이익을 보기 위해 에너지 자원시장에 몰려들면서 원유를 포함한 국제 원자재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자본들은 같은 상품들을 여러 번 되팔면서 거래 숫자를 늘려 거래 비용을 상승시키고, 가격 변동 시기에는 변동 폭을 늘리는 식으로 이익을 챙긴다. 원유에서도 똑같은 방식을 취했다. 특히 2008년 국제 유가 급등 때 미국에서 골드만 삭스 등 투기 자본들이 대량으로 가격 상승 쪽으로 투기하면서 국제 원유 가격이 급격히 상승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도 하다. 2000년대에는 원유 수요와 공급이 아주 타이트하게 맞물렸기 때문에 여기에 금융 투기꾼들이 조금만 장난을 쳐도 종종 비정상적인 유가 급등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한 회사의 펀더멘탈이 크게 변하지 않는데 투기꾼들이 달라 붙어 주가가 급등락을 오가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프에 마우스를 갖다대거나, 터치하면 자세한 데이터를 볼 수 있으며, 구간을 드래그하면 해당 구간만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미국발 셰일가스 혁명이 최근 유가 하락 견인

최근 이슈는 국제 유가가 이례적으로 급락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2014년 상반기까지 100달러 선을 넘었던 유가가 최근 50달러 이하 반토막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근래 가격 하락은 미국이 셰일가스 생산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서 대량으로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을 생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셰일가스는 그 존재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온 자원이지만 채굴이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어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미국 중심으로 신기술이 개발되면서 원유를 대체할 수 있는 셰일오일의 대규모 생산이 가능해졌다. 셰일오일 생산 확대에 힘입어 미국의 원유 생산은 최근 3년 동안 50% 이상 증가했고, 이로 인해 OPEC의 시장 점유율이 축소되면서 최근의 유가 하락이 견인되었다는 평가다.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이기 때문에 자국에서 자급하는 원유가 조금만 늘어도 국제 유가가 출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OPEC은 시장 원리와 상관없이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어서 그 지위가 한 순간에 몰락할 가능성은 적다. 특히 아직도 OPEC은 배럴당 생산원가가 20달러 아래여서 충분히 가격을 올리고 내릴 키를 쥐고 있다. 최근의 경우는 셰일오일 생산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공급량을 쭉 유지하는 바람에 유가 하락이 더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 감산을 해서 시장 점유율을 줄이기보다는, 저마진을 좀 견뎌서라도 시장점유율을 계속 확보하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뭐 산유국들마다 사정은 있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언제든 감산을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순간에 영향력이 쪼그라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셰일혁명으로 미국이 조만간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원유 생산국이 될 것이란 전망이 다수라는 사실이다. 석유 권력을 쥐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대규모 생산량이다. 가장 싸게, 가장 많이 석유를 캘 수 있는 나라가 가격 결정권을 쥐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국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은 1973년 아랍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금지에 대한 대응책으로 1975년부터 국내에서 생산된 원유에 대해서는 수출을 금지하고 있지만, 최근 유럽으로의 일부 수출이 허용되는 등 조만간 세계 시장으로 미국산 석유가 풀릴 수도 있다.

이런 사정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최근 유가는 크게 떨어졌지만, 패권 구도가 다시 자리잡게 되면 가격은 또 어떻게 춤추게 될 지 알 수 없다. 물론 다자간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 유가가 오히려 하향 안정세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섞인 기대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특정 국가가 패권을 쥐게 될 가능성도 높은 게 사실이다. 패권을 쥐는 자가 있다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위험을 불러 일으키곤 한다. 게다가 그 대상이 미국이다. 월가에서 투기로 장난치는 것도 무서운데 거기에 공급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다면 아찔한 미래가 펼쳐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래 저래 유가는 또 우리 눈 밖에서 결정되지 싶다. 그래도 모르고 속는 것과 알고 속는 것은 다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고 싶다.

Copyrights ⓒ 민중의소리 & vop.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