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창의 철학산책] 애국주의 코스프레

애국주의가 의무인가?

수년 전부터(내 기억으로 아마 유시민의 ‘애국가 제창론’에서부터) 애국가 타령, 국기 타령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더니, 급기야 어느 통신사에서는 애국가 조례를 한다고 한다. 영화 ‘국제시장’에 감명 받아서인가 아니면 박정희 독재 시대의 애국주의의 향수를 즐기려 하는 것인가? 이 때다 해서 애국주의의 코스프레가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심지어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국회의원들조차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격 자세를 취한다.

박정희 시대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비국민으로 취급되었다. 아마도 머지않아 애국주의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비도덕적이거나 심지어 반국가, 반체제주의자들로 낙인찍힐 모양이다. 그러면 생각해 보자. 과연 애국주의가 시민에게 하나의 도덕적 당위이고 의무인가?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 중 애국가가 나오자 태극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선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 중 애국가가 나오자 태극기를 향해 가슴에 손을 얹고 선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국제시장 스틸컷

애국주의가 사랑하는 대상은 국가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사회계약론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국가가 시민들 사이의 사회적인 계약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사회계약은 시민들에게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다. 바로 이 계약의 산물이 헌법이며, 국가는 이 헌법의 구현체이다. 철학적으로는 헌법 제정권력이니 개정권력이니 하면서 국가가 헌법을 초월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가가 헌법에 종속하는 것인지에 대해 논의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국가와 헌법은 동일한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사회계약 이론은 로마시대로부터 흘러내려오는 계약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이 계약이론은 서로 간에 자유롭고 공정한 교환이 이루어지면 이를 정당한 계약으로 인정한다. 계약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법적인 관계이다. 계약은 도덕적 관계는 아니다. 도덕은 시대나 사회마다 다 달라지겠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를 기초로 한다. 쉽게 말하자면 계약관계는 서로 쿨(cool)한 관계이다. 도덕은 반면 서로 핫(hot)한 관계라 볼 수 있다.

계약관계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의무를 다해야 하며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처벌을 받는다. 이런 계약관계에서 각자는 의무를 다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그의 자유이며, 법적 의무에 더해서 도덕적 태도인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 마음으로 우러나와서 계약관계의 상대방을 사랑하려 한다면 그거야 그의 마음이다. 그러나 그런 사랑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는 없다. 설혹 사랑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이를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항상 표시해야 하는 의무는 더더욱 없다.

예를 들어 계약 관계로 맺어지는 회사를 보자. 회사원이 자기 회사에 대한 근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기의 의무를 넘어서 회사를 사랑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그가 회사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회사의 상징을 몸에 달고 다녀야 하거나 어디에 가서나 자기 회사를 자랑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런 회사원을 본다면 사람들은 그를 아무리 자기 동료라고 하더라도 ‘꼴불견’, ‘찌질이’라고 하거나 심지어 윗사람에게 아부하는 정도로 취급할 것이 틀림없다.

마찬가지이다. 시민은 국가에 대해 자기의 의무를 다하면 된다. 세금을 내라면 세금을 내고 군대에 가라면 군대에 가면 된다. 거기에 덧붙여 국가를 사랑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사랑하는 마음이 나쁠 리야 없겠지만 그런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애국주의자들의 실상

그런데 지금 애국주의를 목이 터지도록 외치는 사람들을 보자.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역의 의무를 마쳤던가?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무위원 대부분이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장관이 되기 위해 청문회에 나오는 대부분이 다운 계약서 작성, 위장 전입 등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갖가지 지랄을 펼치고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이 애국주의를 주장하면서 영화 ‘국제시장’을 들먹거릴 때 많은 시민들은 그들을 의심한다. 솔직히 그들은 국가에 대한 자기의 불성실을 감추기 위해 저러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시민들은 병역을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길을 몰라 병역을 마쳤다. 대부분 시민들은 나처럼 세금을 평균 세금징수율(아마도 70% 정도?)에 따라서 내고 싶었지만 세금을 떼먹는 방법을 몰라서 마지막 원 단위까지 빠짐없이 냈다. 시민들이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의무를 수행한 것은 아니니, 애국주의자들은 이런 시민들을 비국민으로 간주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애국주의자들에게 나는 칸트가 한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칸트는 의무를 의무로 다하는 것이 진정으로 도덕적이라 했다. 하기 싫은 것을 의무이기에 다 하는 것이니만큼 남들보다 더 힘든 일을 수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국주의자들의 눈으로는 비국민으로 보이거나 말거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의무를 다했다. 그러니 굳이 국가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국가에 대해 “국가, 과연 너는 무엇을 했는가?”하고 물어볼 권리를 가진다. 다른 것들 모두 다 제쳐놓자. 선량한 시민을 심지어 남의 나라 공문서를 조작해가면서까지 보안법으로 감옥에 집어넣은 짓을 한 게 누구였던가? 소위 국가 중의 국가인 국정원이 아닌가? 세월호가 침몰 직전 배속에 갇힌 학생들을 구해야할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자기는 구난기관이 아니라면서 구난의 의무를 회피했던 청와대가 국가로서 의무를 다했다고 보는가?

시민들이 이런 국가를 뒤집어엎기는커녕 거꾸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국가에 보답해야 하는가? 더구나 항상 사랑한다는 마음의 표시를 개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다녀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런 관계는 계약으로 치면 너무나도 불공평한 계약, 노예 계약이거나 사기 계약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시민들에게 국가를 사랑하라 한다. 시민들이 국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자기들 애국주의자들이 모르지 않도록 매일매일 조례를 실시해서 감시하겠다고 한다. 웃기는 것은 그들이 시민들에게 그런 사랑하는 마음을 자발적으로 가지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강제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강제로 만들어진 사랑이 믿을 만한 것이기는 한가? 애국주의자들은 시민들이 강제라도 사랑하는 척한다면 만족할까? 하기야 그들도 애국주의를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니 시민들도 그저 코스프레를 하기만 바라는 것인가?

하지만 애국주의자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시민들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 하기 싫지만 그래도 해야 하므로 다했다. 정말 하기 싫은 데도 불구하고 그런 의무를 다했다면 그건 그들 애국주의자들의 코스프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진정한 애국심일 것이다.

애국주의자들과 종북몰이

그런데 이 나라 애국주의자들에게 참으로 이상야릇한 게 한 가지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족애와 애국심은 함께 간다. 아마도 그런 나라들은 민족 단위로 국가를 건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의 애국주의자들은 특이하게도 무한한 애국심을 자랑하면서도 민족에 대해서는 적대감으로 충만하다. 민족이야 죽든 말든 내 알 바 없다는 게 이 나라 애국주의자들의 특징이다.

우선 애국주의자들 거의 대부분은 친일 분자들이고, 친미 사대주의자들이다. 건국의 공로자로서 이승만을 추앙한다는 애국주의자들을 보자. 그들은 이승만이 해방 이후 친일파들을 끌어들여 건국을 했다는 사실은 무시해 버린다. 또한 이 땅의 친미사대주의자들을 보자. 그들은 자기 나라 군대의 자주권조차 두려워한다. 그들은 전시작전권을 환원하자고 하면 발작적으로 흥분한다. 그들은 수십조의 돈이 든다는 미국의 무기, 미군 자신이 그 성능을 실전에서 확인한 적은 없다는 무기 곧 사드를 배치하기 위해서 기꺼이 국가의 옷고름조차 풀어헤칠 자세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입으로 애국주의를 주장한다. 그게 다 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라나?

2010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강원도 동부전선 백두산부대 OP를 방문, 북한지역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0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강원도 동부전선 백두산부대 OP를 방문, 북한지역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뉴시스

그러니 그들 애국주의자들은 원하는 국가는 민족의 국가는 아니다. 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국가는 바로 친일파의 국가이고 친미사대주의의 국가이다. 그들은 말로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친일파를 끌어들이고, 친미 사대주의를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진정한 인과관계는 거꾸로 되어 있다. 그들은 친일파의 국가, 친미사대주의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거꾸로 북한의 위협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국가를 위해 이 나라에 모든 국민은 종북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그리하여 애국주의자들의 최일선은 종북몰이의 전선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종북주의자들과 신나게 싸우니 거울 속의 자기 그림자와 싸우는 사람과 닮았다.

그렇고 보면 애국주의자들이 종북몰이에 앞장 서왔다는 것이 놀랍지 않다. 진보당을 분열시켰던 종북몰이꾼들이 진보당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고 고발했던 사실을 생각해 보라. 또한 NLL을 팔아먹었다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했던 자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하려 했다. 그들은 NLL이 부당하게 점령한 영역이라는 것은 무시해 버린다. 그게 ‘실효적 지배’라나 뭐라나? 그들은 NLL을 평화지대보다는 전쟁의 바다로 만들려 한다. 전쟁을 통해 얻을 것은 친일파의 국가이고 친미사대주의의 국가이다. 전쟁을 통해 죽어나가는 것은 죄 없는 젊은 병사들이다.

이렇게 해서 신성 동맹이 맺어진다. 애국주의자들과 친일, 친미파 그리고 종북몰이꾼 사이의 신성한 삼각동맹은 애국주의가 반민족주의와 결합한 세계사적으로 참으로 기이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런 애국주의자들이 싫어하는 것이 바로 사회계약론과 민주주의이다. 국가란 민주주의라는 제도 속에서 시민의 계약을 통해서 수립되는 것이 원칙이다. 시민의 계약 이전에 미리부터 어떤 전제는 존재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애국주의자들에게서 국가는 반드시 친일, 친미파의 국가이어야 한다. 이는 어떤 민주주의 이전에, 그리고 사회계약 이전에 존재하는 절대명령이다. 민주주의가 이런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한, 민주주의는 인정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친일, 친미사대주의를 위협한다면 그건 민주주의의 잘못이 된다. 민주주의도 헌법(소위 87년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에 있어야 한다는 이런 논리에서 진보도 헌법안에 있어야 한다는 ‘헌법 내 진보주의’가 나온다. 애국주의자들이 단순한 애국주의자가 아니라 파쇼주의자인 것이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나는 애국주의를 부르짖는 친일 친미파에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없는 살림에 세금 내고 병역의무 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애국주의 코스프레는 니들이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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